마츠야마의 밤
마츠야마의 밤
한국에서 마츠야마로 향하는 비행기는 오후 3시가 넘어서야 출발한다.
그렇다 보니 마츠야마 공항에 내릴 즈음이면 이미 해가 지는 시간이라 이미 여행을 시작하는 날의 일정은
집에서 공항으로, 공항에서 다시 여행지로 그렇게 느끼는 하루가 전부처럼 느껴질 수 있다.
마츠야마의 도고온센을 숙소로 정한 이유이기도 했다.
황금 같은 시간을 그저 그런 일본의 비즈니스호텔에서 보낼 수 없었기에 마츠야마로 향하는 비행기표를
예약하자마자 도고온센에서도 전통적인 느낌이 가득한 료칸을 찾고 또 찾았다.
마츠야마는 물이 좋기로 유명한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는 온천마을이 있다.
우리나라의 도고온천과 이름이 같기도 한 도고온천. 일본의 발음으로는 도고온센이지만 역시 도고온천이라는
표현이 더 익숙하다.
버스에서 내려 눈을 사로잡는 화려한 불빛들이 가득한 도고온센으로 향하는 아케이드의 입구.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배경이 되었다는 이 온천마을이 궁금해지기 시작하며
설레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커다란 캐리어를 한 손에 쥐고 반짝반짝한 거리를 바라보고 있자면
어떤 여행이 시작될까 두근거림으로 가득해진다.
마츠야마의 밤이 딱 그랬다.
여행의 시작하는 곳이었으니!
이 밤이 아쉬워 서둘러 숙소를 찾았고, 힘겹게 예약한 료칸이라며 둘러볼 틈도 없이 서둘러 그 거리고 나가고 싶었다. 겨울이지만 유카타를 입고 걷는 것만으로도 춥지 않았고 발에 익숙하지 않은 나무로 된 슬리퍼를 신고 걸을 때마다 딸깍 딸깍 나는 소리도 좋았다. 그렇게 유카타를 꺼내 입고 저녁으로 우동을 먹고 온천을 기대하던 밤이었다.
밤의 마츠야마는 어느 도시의 밤과 달랐다. 시끌벅적 이라기보다는 고요함 속에 소란한 느낌이었고
어디선가 찾아온 사람들로 가득한 느낌이었다. 다른 얼굴의 비슷한 표정을 한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는 그 느낌이 좋았다.
마츠야마의 밤이 더 좋아진 이유는 작은 선술집 하루의 역할도 컸던 것 같다.
식사를 하려고 들어갔던 가게는 여섯 명 남짓 앉을 수 있는 바가 전부였고 그 작은 가게 안에 문을 열고 들어온 우리와 가게 안의 사람들 모두 당황했다. 문을 열고 멍하니 바라보던 우린 생각보다 작은 가게에 당황했고 우리와 마주한 가게안의 사람들은 멍하니 바라보던 우리가외국인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당황한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이자카야?"
하고 물으니 그렇다고 하신다.
나중에 다시 찾겠다고 작은 가게를 떠났다.
그리고 늦은 밤, 하루를 다시 찾았다.
잠시 문을 열어본 게 전부지만 작은 가게의 소박하면서도 따뜻함이 가득한 하루의 느낌이 좋았다.
하루의 문을 다시 열었을 때는 처음의 당황스러움보다는 '다시 왔군요' 라며 반겨주는 느낌이 들었다.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읽을 수 없는 메뉴판을 붙잡고 번역기를 이용해 주문을 하고 맥주 한 잔도 시켜 이자카야에 있음을 실감하고 있었다. 메뉴가 다 나올 즈음 하루의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부족한 일본어와 부족한 한국어를 도와주는 번역기와 함께. 번역기를 통한 대화를 불편했음에도 사장님과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대화를 나누었다. 여느 여행자에게 흔히 할 수 있는 질문들도 있지만 우리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그런 질문과 아직은 외국인이 많지 않을 이 도시를 찾은 이유과 일정 같은 것들을 이야기하며 그렇게 한참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에게는 낯선 여행지이지만 이 곳이 익숙한 그분들에게는 우리의 여행이 무척이나 궁금하기도 했을 것 같다.
익숙함이란 그런 것이니까!
"몇 살이죠?"
"27살 이예요."
"결혼은 했나요?"
"아직이요."
"왜 결혼하지 않아요?"
. . .
"아직 어린것 같아서요."
...
"우리 딸도 27살인데 5살 아들이 있어요!"
결혼을 하지 않은 이유를 물으셨을 때, 머릿속으로 그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뾰족한 대답이 없어 한참을 고민하다 어려서라고 대답하자 사장님은 잠시 갸우뚱하시며 우리와 동갑인 딸의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 말씀에 우린 또 한참을 웃었다. 그렇게 시시콜콜한 대화였다. 낯선 곳에서 처음 만나 낯선 사람과 이렇게 즐겁게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날이 있을 줄이야!
여행이 내게 준 가장 큰 변화이기도 했으며 여행의 즐거움이기도 했다.
어쩌면 마츠야마의 밤이 이렇게 특별하게 느껴지는 건,
작은 선술집 하루의 분위기가, 은은한 조명 밑에서 온 몸으로 대화를 나누었던 그 순간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다시 만남을 기약하지 않는 여행지에서의 낯선 만남이지만,
두고두고 잊히지 않을 만남이며 내 여행의 에피소드를 더할 특별한 만남들이기 때문에!
그런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만남이 있기에 우리의 여행은 더 즐거울 수밖에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