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글에도 살짝 언급을 하긴 했지만, 최근 이런저런 심란한 일들이 이어지고 있어 사주를 한번 봤다. 그래도 살면서 5,6번 정도는 사주를 봤던 것 같은데, 이번 따라 유독 귀에 들어오는 말이 있었다.
"부친의 덕이 부족하네요.
부친이 뭐든지 사사건건 컨트롤을 하려고 하니,
부친과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잘 풀리는 사주예요."
듣자마자 들었던 생각은 '의외'라는 것이었다. 물론 아버지와 내 사이를 일반적인 가족의 부녀 관계로 생각하기에는 다소 무리인 점들은 있다. 나의 아버지는 이혼남이었고, 사업에 실패해 도망 다니던 입장이었다. 그랬기에 나는 아버지의 친척에게 맡겨져서 컸다. 30대 중반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시간은 7년 정도밖에 안된다.
그렇지만, 나는 내가 아버지와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더욱 좋지 않다는 말을 섣불리 인정하기 어려웠다. 미우나 고우나 지난 세월 동안 책임감 있게 나를 부양해 온 아버지에 대한 짠함의 정서가 언제나 내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친의 덕이 부족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는 경우라고 한다면 오히려 좀 더 극단적인 경우 아닐까. 자식을 두고 나 몰라라 한다던지, 자식의 등골을 빼먹는다던지. 적어도 나의 아버지는 나를 사랑했고, 같이 살진 않았지만 결코 나를 내버려 두진 않았다. 등골은 오히려 내가 빼먹고 있는 상황이고... 이래저래 납득할 수 없었던 나는 역술인에게 다시 물었다.
"정말 저와 아버지가 그렇게까지 안 좋은가요? 저는 그래도 아버지와 그럭저럭 잘 지내왔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그런 감정적인 부분과는 관계가 없어요. 부친의 덕이 부족하여 초년에 삶이 순탄치 않았을 거고, 서로 가까이 붙어있거나 유착될수록 더 안 좋은 영향을 주니 그냥 가급적이면 떨어져서 각자 독립된 삶을 사는 게 더 좋다는 거예요."
그렇게 얘기하니까 또 뭔가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하고.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고 어머니와 이혼했던 그 시기 이후부터 우리는 한 지붕 아래에서 살아 본 적이 없다. 나는 아버지를 잘 모르고, 아버지는 나를 잘 모른다. 어쩌면 바로 그랬기 때문에 우리는 이 정도의 관계나마 유지하며 오늘날까지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네가 더 늦기 전에 아버지와 꼭 한 번 같이 살아 봤으면 좋겠어."
어느 날엔가, 내게 그렇게 말했던 남자가 있었다. 그는 나를 사랑했지만, 그 사랑에는 어딘지 한 구석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고 했다. 내가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을 부모님과 살아보지 못한 채 컸다는 것이 그는 항상 안타깝다고 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아버지와 같은 집에서 함께 살라고. 나중에 아버지가 나이 드시고, 이 세상에 안 계시게 될 그날이 오면 그때는 가족으로서 긴 시간 동안 함께 살아보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 분명히 후회하게 되는 날이 올 거라며. 이런 권유를 하는 자신의 진심을 알아달라고 했다. 그렇지만 '왜 꼭 같이 살아야만 해? 우린 이렇게 평생 떨어져서 살아왔고, 이게 더 편한 가족도 있어.'라는 나의 대답은 그를 이해시킬 수 없었다. 얼마 후 우리는 헤어졌다.
아버지와 같이 살지 않아도 아버지를 이미 내 아버지로 충분히 받아들이고 있는 이 마음을 그에게 어떻게 설명했어야 했을까? 한 집에 살며 지지고 볶고 싸우지 않아도, 딸인 나를 위해 그 자신의 삶을 견뎌낸 것만으로도 충분히 존경하고 사랑할 수 있는 이 마음을. 난 비록 부모와 한 집에서 커 온 자녀들의 부모에 대한 마음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들이 부모에게 품는 감정의 결이 어떠할지는 대략 짐작할 수 있다. 그들 또한, 나와 같은 형태의 가정환경에서 커왔던 이가 부모에게 품는 감정을 완전히 이해할 순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같이 살지 않았고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내지 않는다고 해서 이게 그들이 부모에게 품는 사랑과 같은 감정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제 나는 내게 아버지와의 동거를 권했던 그 남자의 말의 진의를 어느 정도는 이해하지만, 당시의 나는 그가 그런 말을 했다는 이유로 그를 오래도록 미워했다. 헤어지고 나서도 한동안.
모르겠다. 한 때 아버지에게도 나와 함께 살고 싶어 했던 시기가 있었을지. 30대에 나를 낳고, 30대가 끝나기 전에 사업에 실패했으며, 40~50대는 길바닥에서, 남의 집에서 보냈던 그에게도 언젠가 번듯한 '우리 집'을 만들어서 함께 살고자 하는 꿈이 있었을지. 설사 그에게 그런 꿈이 있었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에 대해서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다. 우리는 각자 살아남기 바빴다. 그렇기에 우리는 한 두 달에 한 번씩 서로의 안부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인생을 살아왔다. 아버지에 대해서는 나는 사춘기의 반항도 제대로 겪질 못했다. 워낙 가끔 봤기 때문에, 아버지를 보는 모든 순간에는 반가웠던 기억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함께 살았다면 서로 부대끼며 짜증을 내기도 하고 정말 보기 싫어했던 때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따로 살았던 우리에게는 정말로 매 순간이 애틋하고 좋았던 기억밖에 없다.
그러나 참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가족에게 닥쳤던 위기들을 극복하고 뒤늦게나마 경제적으로 안정을 찾은 이때. 보고 싶으면 언제라도 볼 수 있고, 매주 한 번씩 주기적으로 얼굴을 맞대고 꼬박꼬박 한 끼의 식사를 나누는, 우리 가족의 역사상 가장 자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 시기에 우리는 오히려 서로에게 더 많은 짜증을 내고 더 자주 인상을 쓰고 있다. 만날 때마다 내가 못마땅한 듯 잔소리를 하는 아버지와 마주 앉아 있자면 앞에 아무리 산해진미가 놓여있다 한들 목구멍으로 잘 넘어가지도 않는 것 같다. 20년 전, 한 달에 한 번 겨우 서로의 얼굴을 볼까 말까 했던 그때엔 함께 있는 모든 시간이 아깝고 애틋해서 감히 싸울 생각도 못했는데 말이다.
작년 이맘때쯤, 아버지와 크게 다투어 거의 인연을 끊을 뻔한 적이 있다. 당시 나는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었다. 아버지와 가족이라는 사실이 미친 듯이 괴로웠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와 인연을 끊어내지는 못했다. 정말 인연을 끊으려는 결심을 내비친 순간, 다시는 상대의 얼굴을 볼 수 없을까 봐 더욱 두려워하는 쪽이 나의 아버지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의 아버지는 내가 그렇게 시야에서 사라지는 순간 존재의 이유를 잃고 시들어 갈 것이었다. 아무리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있다지만, 정말로 나의 아버지는 결국에는 항상 내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뭐 어쩌겠나.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보다, 아버지가 나를 더욱 사랑한다는데.
예전에 친구로부터 어떤 커플의 흥미로운 싸움 목격담을 들은 적이 있다. 그 커플은 대로변에 잠시 비상 깜빡이를 켜고 세워둔 차 밖에서 한창 싸우고 있었다. 서로가 니 탓이네 내 탓이네 헤어지네 마네 죽기 살기로 싸우다가 결국 차를 비켜줘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러자 여전히 서로에게 짜증을 부리는 와중에도 둘의 몸이 자연스럽게 움직이더니 남자가 여자가 서있는 조수석으로 가서 차 문을 딱 열어주더란다. 여전히 싸우면서. 그런데 여자는 또 자연스럽게 남자가 열어주는 문 안쪽으로 차에 타더란다. 여전히 말로 되받아치면서. 그렇게 남자는 여자와 말다툼을 하면서도 차 문을 열어주고 여자를 태우고 다시 닫고 운전석으로 가서 시동을 켜고 홀연히 사라졌다고 한다.
요즘 들어 아버지가 내게 화를 내고 잔소리를 하는 순간들마다 나는 속으로 친구에게 전해 들었던 저 커플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떠올린다. 친구이든, 연인이든, 가족이든, 진정으로 서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다툼의 모습은 저렇게 닮아 있다. 아무리 모진 말을 내뱉고 서로에게 인상을 쓰고 있어도, 몸에 배어 있는 사소한 행동 하나가 무심코 나보다 상대를 먼저 생각해 버린다. 죽기살기로 싸울지언정 그 관계를 저버릴 생각은 없다. 그렇기에 남자는 여자를 차에 태우고, 여자도 차에 탄 것이다. 그토록 미친 듯이 싸우는 상황에서도 둘 중 누구도 서로가 함께 타는, 그들이 함께 사는 집으로 돌아갈 차를 버릴 생각은 하지 않았다는 것. 표면적인 말이나 표정보다도 그런 무의식적으로 배어 나오는 행동에서 보이는 어떤 것. 나 또한 이제는 그런 것에서 사랑을 투시해낼 수 있는 능글맞은 어른이 되었다.
이제는 안다. 매주 얼굴을 볼 때마다 따박따박 귀에 꽂히는 아버지의 잔소리가 사실은 전부 나에게 외치는 '난 널 그냥 이대로 내버려 둘 수가 없어! 난 널!! 사랑하니까!!!'의 다양한 변주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나는 가끔가다 할 얘기가 생겨서 글 한 편 쓰는 것도 이렇게 기가 빨리는데, 매번 다양한 레퍼토리로 잔소리를 하는 내 아버지의 열정과 에너지의 근원은 무엇이겠는가. 바로 남다른 집착광공인 우리 아버지의 나를 향한 넘치는 사랑 때문일 것이다. 그도 그럴게, 평소에 백날천날 어마어마하게 다양한 각도와 측면에서 나를 걱정하고 오직 생각의 포커스가 나에게만 맞춰져 있지 않고서야 매번 이렇게 양질의 잔소리를 쭉쭉 뽑아낼 수는 없다.
한 해 한 해 갈수록 아버지의 말이 더욱 길어지고 장황해지는 것을 나는 이해해 보려고 한다. 지난 20여 년 간 함께 살지 못했던 우리 부녀에게 부족했던 대화의 간극을 이렇게 한꺼번에 몰아서 채우려는 거 아닐까. 성장기에 함께 있지 못했던 만큼 나에게 해줄 말이 많은데, 이제 와서 이야기하자니 잔소리 효율이 떨어지는 것 같고... 그러니 아버지 입장에서도 자꾸 말이 세고 과격하게 나와버리는 것이다.
사실 나도 30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나부터가 약간 주변에 잔소리를 많이 하게 되는 게 있어서...(어쩌면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그런 잔소리의 일환이려나) 앞으로 '삶에서 남은 시간이 점점 줄어든다는 압박이 말을 많이 하게 만드는구나'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래서 이제 웬만하면 뭐 이해.. 하려고 하지만 그래도 받는 스트레스는 자체가 막 획기적으로 줄어들지는 않는다.
그래도 뭐.. 그럭저럭 참아낼 수는 있을 것 같다. 아버지의 잔소리가 정말 내가 못마땅하고 싫어서가 아님을 알기에. 사실은 그게 다 '우리 딸, 아빠가 이만큼 사랑해'라는 낯간지러운 말을 할 수 없어서 대신 내뱉는 상남자의 허세라는 것을 너무 잘 알기에.
그렇기에 매번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온몸과 마음을 다해 잔소리를 늘어놓으면서 나를 답답해하는 아버지를 볼때면 나는 그냥 이렇게 생각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래, 사랑은 못 참지.'
새어 나오는 재채기와 사랑을 숨길 수 없듯이, 아버지는 그저 잔소리를 못 참는 거다. 잔소리 밑에 숨겨진 오로지 나에 대한 걱정만으로 가득한 그 절절한 사랑을 도저히 숨길수가 없는 거다. '우리 아빠는 날 대체 얼마나 좋아하는 거야?' 그렇게 생각해보면, 뭐 그래도 그 시간과 상황이 조금은 더 견딜만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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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술인이 말한 사주의 '부친의 덕이 없다'는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남들에 비해 비교적 어릴 때부터 본인 스스로 알아서 삶을 꾸려왔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솔직히 맞는 말이긴 하다. 초등학생 때부터 부모가 나를 정서적으로 돌봐주지 못해 철이 빨리 들어야 했으니까. 그래도 그 사실에 대한 번뇌와 불만은 없었다. 그러니 뭐 완전 틀린 건 아닌 것 같다. 어쩌면 사주에 나온 대로 나는 아버지와 떨어져서 컸기에 더 잘 풀린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평생 아버지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이런 방식으로 살아가는 게 더 잘 맞을지도 모르고.
그리고 뭐 어떻게 내가 갖고 태어나지 않았다는 부친의 덕까지 염치 불고하고 바라겠나. 이 나이 먹도록 아버지의 근심 덩어리로서 등골을 쫙쫙 빼먹고 살고 있는 내 입장을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다. 만약 반대로 아버지가 그의 입장에서 사주를 보면, '자식의 덕이 부족하여 아무래도 자식 덕은 보고 살 수 없을 팔자이니, 평생 소처럼 일하라'는 사주가 나와도 나는 할 말이 없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