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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나 Oct 17. 2021

[10줄 문학] 진라면 라거

2021년 10월 12일 ~ 10월 15일


1. 그냥 하지 말라?


어제 오늘 <그냥 하지 말라>를 읽었다.

이 책은 데이터 분석가 송길영 바이브컴퍼니 부사장이 펴낸 핫한 신간이다.


이 책의 제목이 나는 참 묘했다.

그냥 하지 말라(Don't Just Do It)라니.


그럼 Just Do It의 나이키는 어떡하나요.

<하기나 해(Just Do It)>을 부른 랩퍼 그레이는요.


그런 것보다도 그냥 하지 말라가 어쩐지 '그냥, 하지 말라'같아서.

좋은 책이긴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개구리인 나는 여전히 '그냥 하는' 사람이고 싶다.


항상 생각이 너무 많고 앞서나가는 나로서는 그냥 하지 않으면 아예 아무것도 못할 거 같아서...

뭐 이러다 도태되든 말든 나는 여태 하던대로 스스로의 직관을 믿고 그냥 하는 사람으로 쭉 살아갈란다.




2. 화분을 비우다


침실에 두었던 커다란 떡갈 고무나무는 이미 한참 전에 죽어 있었다.

볕이 잘 안 드는 북향 집이라서였을까, 원래 유독 성격이 까탈스러운 종이었던 탓이었을까.


어찌 됐든 나무는 죽었고, 나는 그 유해를 수습해야만 했다.

이 집에 화분을 들여놓기 시작한 이후, 2할 정도는 죽곤 했지만 이렇게 큰 화분을 비워야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바싹 말라버린 나무 몸통을 뽑고, 비닐봉지를 옆에 단단히 붙인 나는 삽으로 흙을 퍼내기 시작했다.


화분은 생각보다 크고 깊었다. 흙을 퍼내면서 나는 진짜 땅이 아닌 이 곳이 세상의 전부인 양 뿌리내리고 살았을 떡갈 고무나무의 삶을 생각했다.


결국 나는 여러 봉지에 나눠 담아 여러 번 흙을 버리러 왔다갔다 해야 했다. 흙덩어리로 가득 찬 쓰레기 봉지는 무척 무거웠다. 그 속엔 분명 내가 책임지지 못했던 생명에 대한 죄책감의 무게도 더해졌을 것이다.






3. 진라면 라거


단톡방에 사진이 하나 올라왔다.

진라면 봉지 색인데, 맥주캔 형태인 그것은 '진라면 라거'라는 기묘한 혼종이라고 했다.


'이런 콜라보 왜 하는지 모르겠다, 맛이 이상할 것 같아' 라며 경악에 찬 대화를 나누던 중 누군가 이런 제안을 했다.


'우리 사다리타기 해서 진 사람이 저거 먹어보고 어떤지 말해주기 할래?

단, 의견 제시 없이 추천/비추천만 말할 수 있음.'


나는 궁금해서 물었다.


'왜 의견은 제시하면 안되는 건데?'


그러자 돌아온 답변이 기가 막혔다.


'신비감이 있어야지.
A little bit of space는 인생에 spice를 더하는 비결이라네.'




4. 사인



어릴 때부터 난 왠지 언젠가는 내가 유명한 사람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사인해줄 일도 없으면서 괜히 멋진 사인을 만들었다.


초등학생 때 만든 To. 메시지도 넣고, 별도 넣은 그 부끄러운 사인을 나는 30대 중반이 되도록 잘 써먹고 있다. 유치하게 들어간 별 모양은 의도적으로 조금 흐리면서 말이다.


어쨌든 나는 유명인은 되지 않았고, 가장 최근에 한 사인은 퇴사 서류였다.


그저께쯤 내 책이 서점에 깔렸다는 소식을 듣고 교보문고에 갔다.


무심한 책더미 속 내 책을 구출하는 심정으로 한 권 들고, 다른 책을 한 권 꺼내 계산하러 가는 길에 핫트랙스 펜 코너가 눈에 띄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처음으로 나는 이 펜 저 펜을 써보며 신중하게 펜을 골랐다.


혹~시라도 누군가에게 내 책에 사인해줄 일이 있을까 싶어서...

정말 세련된 클릭형 네임펜으로 새로 장만해 버린, 설 작가의 설레발.






10줄 문학 (Instagram) : @10lines.on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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