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10줄 문학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리나 Nov 20. 2021

[10줄 문학] 시즈카, 세이코, 아키나

2021년 11월 16일 ~ 11월 19일


1. 시즈카, 세이코, 아키나


즉석사진기 덕후로서, 어릴 적부터 각종 스티커 사진기를 정복해 온 나는 최근까지도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인생네컷이나 포토이즘 부스에서 꼭 인증샷을 남기는 편이다.


이제 30대 중반인 내 친구들한테 저런 데서 즉석사진을 찍자고 하면 "꼭 해야 돼?"라는 반응이 돌아온다. 그러나 나는 항상 강경한 독재자처럼 그들에게 통보한다.


"우리 오늘 모처럼 셋이 모였으니까 '하트 안의 하트' 포즈 해야 돼."


'뭔데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하고 아우성치며 민망해서 맨정신엔 도저히 못찍겠다는 둥, 찍기 전에 술을 마셔야겠다는 둥 투덜대던 그녀들이었지만, 정작 포토 부스에 밀어넣자마자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포즈를 취해 준다.


막상 결과물로 사진이 출력되는 순간, 출력구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기다렸다가 사진을 받아보는 그녀들의 얼굴 표정은 우리 나이가 지금의 반토막이었던 어느 날처럼 천진하다.


어쩌면 나는 친구들의 그런 호들갑스러운 내숭이 귀여워서 계속 이렇게 즉석사진을 찍고자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인화된 사진을 사이좋게 한장씩 나눠들고 근처 코인 노래방에 가서, 오타쿠답게 마츠다 세이코의 푸른 산호초와 나카모리 아키나의 DESIRE를 불렀다.


왠지 나는 우리가 마흔에도 오십에도 이러고 놀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할머니가 되어도 즉석사진기 안에서 셔터를 누르는 순간 만큼은 몇번이라도 해맑은 소녀의 표정으로 돌아갈, 우리는 전기 밀레니얼즈.




2. 광고의 미스테리


"나 인스타그램 앱 지웠어."


그녀는 인스타그램 앱에서 음성 데이터를 수집해 광고에 활용하는 것이 소름끼친다고 했다.


얼마 전 친구들과 만난 자리에서 평소에 전혀 찾아본 적이 없던 상품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 돌아가는 길에 인스타를 켜자마자 그 상품의 광고가 떴다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나도 가끔씩 그런 일이 있긴 했다.


굳이 구글이나 네이버에 검색해보지도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그 날 내가 누군가와 대화했을 때 스치듯 나왔던 소재가 나타나곤 했던 것이다.


나는 내 폰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진짜냐?"


그렇게 나는 시리도 아닌 인스타그램에 말을 건다.


광고를 위해 수집하는 거긴 하지만, 가끔은 너라도 내 말을 항상 들어주고 있다는 게 이상하게 기쁜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소름이 아예 안 끼친다면 그건 거짓말이겠지만!




3. 허리 없..


"3~5년차 경력직 구합니다."


업계 단톡방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이런 소식이 올라온다.


그중에는 심지어 한 두 달 전에 봤던 포지션도 있다.


기업들 입장에선 그야말로 비상 시국이다.


팀장을 만나든, 대표를 만나든 하는 말은 하나같이 다 똑같다.


"허리가 없어, 허리가."


확실히 그런 것 같다.


나 또한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네가 우리 회사의 기둥이 되어야지'같은 소리를 듣다가 직장을 이탈하지 않았나.


위에선 눌리고, 아래에선 처 올라오는 눌린 척추뼈의 슬픔을 그대들은 아냐며.


이러다 한 3년쯤 지나면 대부분의 회사에는 고위 직급과 1,2년차 신입만 존재하게 되지 않을까?




4. 언택트 시대의 점심식사


예전 회사 동기와 오랜만에 만나 점심을 먹기로 했다.


우리는 서로 근처에 살기에 만나는 것 자체가 어렵지는 않았다. 브런치 카페에서 만난 우리는 자리를 잡고 반갑게 안부 인사를 나눴다.


나는 퇴사하고 막 프리랜서로 일을 시작했고, 동기의 회사는 전직원 재택근무를 하는 중이라 했다.


그러나 점심을 함께 먹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우리는 각자 수도 없이 휴대폰을 보았다.


그녀는 휴대폰에 설치된 사내 메신저로 날아오는 상사의 메시지에 바로 응답해야 했고, 나 또한 업체에서 오는 전화를 받고 카톡으로 업무 상황을 피드백해야 했기 때문이다.


뭔가 좀 얘기를 해보려고만 하면 "어, 잠깐만, 나 이것만 좀 보고...미안해" 라는 대화가 난무하던 그 날의 점심식사는 그렇게 어정쩡하게 끝나버렸다.


언택트 시대에 비대면으로 어디서나 일할 수 있게 된 건 좋지만, 그렇다고 해서 눈앞에 있는 사람보다 비대면 소통을 중시하게 되다니.


어쩌면 '언택트'는 이렇게 실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을 끊어서 '언택트'인 것이 아닐까?


자칫 밥줄이 끊길까봐 폰 스택도 제안할 수 없는, 그런 슬픈 시대의 초상...




5. Dear Life


그가 처음부터 자신의 의지로 이 길을 택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몸담았던 그룹은 언더그라운드 아이돌 그룹이었고, 처절히 노력했지만 성공은 하지 못했다.


소속 그룹이 해체된 그 해에 그는 한 오디션 프로그램에 응모했다.


모든 것이 낯설고 매일이 혹독한 환경이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무대가 마음대로 되지 않아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마다 그는 속으로 이렇게 다짐했다.


'어차피 100점을 받는 것은 불가능해. 그러니 그 순간의 MAX(최대치)를 끌어올려 보자.'


오늘, 생일을 맞이한 그는 커다란 무대에 선다.


그는 오늘도 순간의 MAX를 발휘할 것이다.


관객 수보다 멤버 수가 더 많았던 과거 그 어느 날의 공연장을 떠올리며.






10줄 문학 (Instagram) : @10lines.only


※10줄 문학으로 보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DM으로 편하게 소재나 사연 접수해 주세요. 당신의 이야기를 10줄 문학으로 써드립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10줄 문학] 큐티, 퍼니, 호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