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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10줄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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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나 Jan 09. 2022

[10줄 문학] 77년생 이은식

2021년 1월 3일 ~ 1월 7일

1. 납작복숭아


일반인의 엉덩이가 복숭아같은 모양이라면, 내 엉덩이는 납작복숭아같이 생겼다.


여러 연구 결과에 의하면, 실제로 납작한 엉덩이는 건강에 매우 안좋다고 한다.


그랬기에 한 5년 전쯤부터 열심히 운동을 하기 시작했을 때, 내가 목표로 했던 것은 오로지 힙업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스쿼트를 해도, 아무리 런지를 해도, 고양이가 굽는 식빵처럼 네모진 나의 엉덩이는 좀처럼 둥그런 형태를 띌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랬기에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내 엉덩이를 포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최근 들어 그 포기의 대가를 치르는 중이다.


퇴사 후, 대부분의 시간을 사무실 지정석의 안락한 의자가 아닌 카페나 학원, 지하철의 딱딱한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보내다 보니 날이 갈수록 궁둥뼈는 물론 요추 척추까지 아파오는 느낌이다.


그런 의미에서 공부도 글도 '엉덩이로 한다'는 것은 실로 의미있는 말이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체력은, 바로 어딘가에 앉았을 때 궁둥뼈가 바닥에 닿지 않는 통통한 엉덩이로부터 오는 것이었다!


그러니 새해의 목표는 납작복숭아 탈출로 하겠다.




2. 77년생 이은식


한때 그의 별명은 '파주 슈퍼개미'였다.


그가 동진세미캠에 1천억이 넘는 시드를 몰빵하여 단숨에 지분 공시를 했을 때, 세상은 깜짝 놀랐다.


막강한 자금력을 가진 개인 투자자가 혜성처럼 등장하자 시장은 혼란에 빠졌다.


사람들은 그의 사주까지 뜯어 보면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 뭐하는 사람인지 추측했다.


'대형 식당을 여러 개 운영하는 요식업자다, 주식이랑 부동산으로 자산을 불려온 것 같다'는 이런저런 추측들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밝혀진 그의 정체는 중견기업에 재직 중인 부장님이었다.


그의 막대한 시드는 그의 회사로부터 횡령한 것이었고,  대범한 범행이 세상에 알려지자 그는 도주하여 잠적했다.


너도나도 부의 추월차선을 넘어야 한다고 종용하는 시대다. 그렇지만, 추월하더라도 자기 차를 타고 추월해야지 남의 차를 훔쳐서 추월하려고 하면 안되는 것이다.


투자의 시대가 되어 근로 의욕이 떨어져 퇴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은 알았는데, 그게 또 이런 식으로(?) 영향을 줄줄은 몰랐다.


직업과 명예보다는 일신의 영달을 추구하는 한탕주의가 만연하는 2022년의 대한민국에서, 기업을 운영하는 것은 점점 어려운 일이 되어가고 있다.




3.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요즘 눈뜨면 제일 먼저 접속하는 SNS(?)는 바로 제페토이다.


처음 제페토를 시작했을 때까지만 해도 내가 이렇게 제페토를 열심히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런데 지금은 제페토 아바타로 인스타그램 계정을 하나 생성할까 고민할 정도다.


다만 제페토 세상을 즐기는 데 있어서 한 가지 걸림돌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내 나이다.


제페토를 하다보면 진짜 초등학생 같은 애들이 메시지를 보내서 '몇 살이냐'고 물어오곤 하는데, 이게 생각보다 참 당황스럽다.


실생활에서는 초등학생한테 '님 몇 살이에요?'라는 질문을 들을 일이 전혀 없지 않나.


'친하게 지내자'면서 다짜고짜 선물을 보내오는 문화도 당황스럽다.


웬만한 애들은 내 나이의 반토막도 아니고 1/3토막일텐데, 그런 애들한테 선물을 받는 게 좀 양심에 찔려서 다 거절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내 주변의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들에게 열심히 제페토를 전파하고 있다.


주 고객층인 초등학생들은 별로 달가워하지 않겠지만, 제페토 노령화에 기여하고 있는 자..그게 바로 나다.




4. 대퇴사두근의 시대


지난 한 달 동안 컴퓨터학원에서 해부학을 배웠다. 3D 아이템을 제작하는데 해부학이 무슨 관련이 있나 싶겠지만 알고 보면 다 필요한 지식이란다.


처음에는 근육도 뼈의 명칭도 다 어렵고 너무 배우기 싫었는데, 하다 보니까 미친 모범생 기질이 발동했는지 그럭저럭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나는 모든 것을 전지적 해부학 시점으로 본다.


길가는 사람들의 몸이나 자세를 보면 마치 증강현실처럼 다 관절 부위가 동그라미인 졸라맨으로 보일 정도다.


연예인들의 이런저런 전신사진을 참고용으로 저장하고, 웹툰이나 일러스트를 볼때 무심코 흉쇄유돌근을 찾는다.


집에서 홈트를 할 때도 거울을 보면서 뼈나 근육이 움직이는 걸 유심히 관찰한다.


초심 잃은 연예인의 ㅅ자 입꼬리를 보면서, 입꼬리내림근이 디폴트로 작용하는 삭막한 세상에 굳이 입꼬리당김근을 써서 미소를 보여주는 행위는 얼마나 가치있는 것인가 새삼 깨닫는다.


너무 과몰입한건지, 최근 트렌드인 '대퇴사의 시대(The Great Resignation)'라는 단어를 보고 나도 모르게 무심코 대퇴사두근을 떠올릴 정도다.


대퇴사의 시대든 뭐든간에 그냥 지금의 내게는 대퇴사두근의 시대일 뿐이다.




5. 나의 눈부신 친구에게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에는 평생에 걸쳐 서로를 사랑하고 질투하는 두 여자가 나온다.


릴라와 레누의 공통점은 서로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볼 때마다 자기 자신의 가장 비참한 점을 비춰본다는 것이다.


살면서 겪어온 수많은 관계 속에서, 나는 때때로 릴라이기도 했고 레누이기도 했다.


오늘 짐 정리를 하다 몇 년 전, 오래되고 연이은 실패로 좌절하던 한 친구의 편지를 발견했다.


나는 그녀를 몹시 아꼈고, 그런 만큼 그녀는 내가 먼저 다가가고 말을 거는 몇 안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렇지만 나는 그녀를 다시는 볼 수 없었다.


서운하지도, 속상하지도 않았다.


그저 릴라에게 레누가 그랬듯, 레누가 릴라에게 그랬듯, 그 일은 자연히 일어난 것이다.


그 일시적인 시기에 우리 둘 중 한 명은 적당히 불행했고, 한 명은 너무도 불행했기에.


그 때의 우리는 서로에게 단지 눈부신 친구였을 뿐이다.




※Cover Image 출처 : 머니투데이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2010316584855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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