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10줄 문학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리나 Jan 16. 2022

[10줄 문학]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

2022년 1월 10일 ~ 1월 14일

1. TMI


내가 삼성 헬스를 완전히 세팅한 것은 꽤 최근의 일이다.


워치를 사고 이것저것 세팅하다 보니 생각보다 편해서, 생리 주기까지 써서 넣은 게 얼마 전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제 밤, 워치에 알림이 떴다.


"오늘부터 임신 가능일입니다."


순간 놀라 눈이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요즘 세상이 하도 좋아져서 이런 것까지 알려주는구나 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했지만 그래도 그 알림 메시지 문구 자체가 소름끼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긴, 뭐 딱히 돌려 말할 말도 없겠지만서도.


한편으로는 나야 상관 없는 일이니 그냥 보고 넘기지만, 난임 부부들은 이런 알림 하나에 얼마나 마음 졸일까 싶어서 안쓰러운 마음도 들더라.


그래도 다행히 이 설정은 삼성 헬스의 '여성 건강' > '상세 설정'에서 끌 수 있다.


가급적 디폴트값은 X로 설정하고, 유저가 처음에 날짜 입력을 할 때 '가임기 예측 기능을 켜시겠습니까?'라는 

팝업창을 띄웠다면 아주 훌륭한 UX였을텐데.....





2.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


최근, 소설을 쓰고 있다. 


공모전에 내려고 쓰는 거라 꽤나 궁서체다.


설령 이 시도가 실패할 지라도, 나는 웃으며 말할 것이다.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의 나카무라 퍼슨처럼.


"괜찮아, 어차피 중년의 50%는 실패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하고 엄지 손가락을 척 치켜올리면 좀 멋질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중년의 반절이 실패라면, 선불로 미리 땡겨 썼다고 생각해야지.


그러면 중년의 남은 반 중에서 가끔은 성공할 때도 있을테니까.


만약 이번에 쓴  소설이 당선되지 않으면 내 브런치에 올릴 예정이다.


고로, 당신은 조만간에 그 글을 보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지 않을까.




3. 전장의 판도라


얼마 전 <전장의 피아니스트>라는 영화를 보았다. 이 영화는 전쟁터로 변해버린 시리아의 세카라는 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반쯤은 폐허가 되어버린 그들의 도시는 거대한 판도라의 상자와 같다. 온갖 재앙과 질병, 전쟁과 불행이 넘어설 수 없는 경계에 막혀 안에 있는 사람들을 피말려 죽이고 있으니까.


사실 그 모든 것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동시대에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우리와 같은 '다른 세계'의 사람들은, 그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이 영화를 본다. 호기심에 상자를 연 판도라처럼.


관객들은 영화를 보는 내내 상자가 펼쳐놓은 끔찍한 재난들에 압도당하고 말지만, 결국 영화가 다 끝나고 나면 깨닫게 된다. 그래도 저 상자 안에 아직 '희망'은 남아있다는 것을.


다 망가지고, 무너지고, 죽고, 사라져도 끝끝내 새것처럼 고칠 수 있었던 하나의 피아노처럼.






4. 게으른 자들이 성공한다


내가 매우 좋아하는 책 중에 <에르메스 길들이기>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이베이 구매대행으로 에르메스 스카프를 판매하여 떼돈을 번 청년 사업가의 이야기이다.


내가 이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저자가 이베이 구매대행을 시작한 동기에 너무도 극공감을 했기 때문이다.


"침대에 누워서도 돈을 벌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그렇게 그는 인터넷으로 할 수 있는 구매대행 사업을 생각해내게 되고, 결국 진짜로 침대에서 일하는 삶을 이뤄낸다.


세상은 성실함과 책임감을 미덕으로 생각하고, 게으름은 배척해야 할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게으른 사람들은 어떻게든 계속해서 게으르게 살 수 있기 위한 방법을 개척해 나간다.


어찌 보면 우리 삶 속에 많은 피곤하고 귀찮은 일들이 자잘하게나마 개선되는 이유는, 저렇게 손 하나 까딱 하기 싫은데 까딱해야 하는 게 짜증이 나는 게으름뱅이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결국 게으름뱅이들이야말로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혁명가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니 오늘도 열심히 놀 궁리를 하고 있는... 나를 포함한 이 시대의 모든 게으름뱅이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5. 중년 여성 헤어 스타일의 관념적 정의


3년 전 '인생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미친 히피펌을 한 이후로 머리에 뭘 한 한 적은 없다. 


짧은 객기와 긴 후유증을 거쳐 히피펌의 흔적을 다 잘라냈을 때에는 코로나19가 창궐했다.


방역에 유리한 머리를 하겠답시고 단발로 싹둑 자른 이후로는 단발 기장을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아버지로부터 '이젠 좀 중년 여자다운 머리를 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을 들었다.


평소 같으면 그냥 웃어버렸겠지만 어쩐지 이번에는 그 말이 되게 마음에 남더라. 


대체 '중년 여성 다운 헤어스타일'이란 게 어떤 걸까 호기심이 생겼다.


인터넷에 이런저런 중년 여성 헤어스타일을 찾아보기도 했지만,그 중 어떤 것도 딱 '이거다' 싶을 정도로 와 닿는 중년 여성의 머리는 없었다.


중년 여성의 헤어스타일을 대체 관념적으로 어떻게 정의를 해야 한단 말인가.


생각해봐도 잘 모르겠어서 일단은 다시 히피펌을 하려고 한다.


아버지가 좋아했으면 좋겠다.




Cover Image 출처 : 세미콜론 블로그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isHttpsRedirect=true&blogId=semicoloni&logNo=220111035194


10줄 문학 (Instagram) : @10lines.only


※10줄 문학으로 보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DM으로 편하게 소재나 사연 접수해 주세요. 당신의 이야기를 10줄 문학으로 써드립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10줄 문학] 77년생 이은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