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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10줄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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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나 Mar 05. 2022

[10줄 문학] 포스트 모더니즘

2022년 2월 28일 ~ 3월 4일

1. 글이 날아갔다! 


써둔 글이 날아갔다. 

1~2천자 정도밖에 되지 않는 분량이었지만 내게는 매우 급급한(?) 글이었기 때문에 나는 매우 당황했다. 

아침에 글을 날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땐 믿을 수 없어 몇번이고 새로고침과 히스토리를 눌러보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글이 돌아오진 않았다. 


디지털 메모장이라는 것은 편리하긴 하지만, 가끔 이렇게 예기치 못한 동기화 오류가 발생할 땐 정말, 답이 없다. 


가장 좋은 건 종이와 펜으로 메모를 해두거나 녹음을 해두는 것이겠지만, 어느 순간부턴가 내 필기 속도도, 말하는 속도도 내 생각의 속도를 전혀 따라가지 못한다.  


그래도 다행히 글을 썼던 게 어제라서, 아직 대부분의 아웃라인은 머릿속에 남아있는 상태이다. 

그러니 어거지로 기억을 되살려 다시 그 2천자를 한 줄씩 한 줄씩 복구해 간다.  

가야 할 방향을 정해놓았으면 글로 다시 채우는 것은 뭐, 해볼만한 일이다.  

하루에 5천자, 1만자씩 척척 써내는 작가들도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힘 빠지는 건 똑같겠지. 


퇴고를 미리 한다고 생각하지 뭐, 하고 최대한 맥 빠지지 않게 생각해보려고 한다. 




2. 웃고 넘어갈 일 


얼마 전, 방에서 컴퓨터를 하고 있는데 현관 도어록이 켜지는 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계속해서 삑삑 연신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공포에 질려 문을 쾅쾅 쳤지만 상대는 가지 않았다. 


결국 내가 겁에 질린 목소리로 '누구세요?'라고 되묻자 그제서야 한 나이 든 아저씨의 목소리가 '아, 잘못 왔네.' 하고 사라져갔다.


그는 미안하다고도 하지 않았다.

주말에 만난 친구와는 혼자 사는 여자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가스총과 집에 설치할 수 있는 방범 장치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했다.


어제는 왓챠에 올라온 영화 <69세>를 보았다. 생각한 것은 단 하나였다.  

보호자가 없는 여자는 젊어도 늙어도 공포에 떨어야 하는구나.


누군가에게는 웃고 넘어갈 일일지 모르나, 누군가에게는 정말 무서운 미래이다. 




3. 인류 멸망 세계관으로 전생해 버렸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학창 시절의 나는 역사를 무슨 일종의 재난 영화처럼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그 전쟁과 역병을 포함한 모든 피튀기는 역사 이야기들을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2000년대의 현실에선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인류는 진보했고, 발전했으며,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역사를 배우는 것이라고 믿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던 나의 오만을 비웃듯이, 2000년에 접어든지 얼마 후인 9월 11일 쌍둥이 빌딩에 비행기가 추락했다. 그리고 2년 뒤에는 전쟁이 일어났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말도 안되는 명분 없는 전쟁이나 누구도 확실히 저지하지 못한다.  


역사 교과서를 탐독하던 10대의 내게는 그래도 세상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지금은 모르겠다. 그냥 하루 아침에 멸망을 목전에 둔 인류 멸망 시나리오로 전생한 것 같다. 




4. 포스트 모더니즘

지난 주, 호텔에서 열린 아트페어에 다녀왔다.


한 갤러리에서 내놓은 그림들을 감상하던 중, 한 작품이 눈에 들어 왔다. 

그 작품은 도시의 한 빌딩을 담고 있었는데, 빌딩에 있는 창문을 통해 그 내부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과 생활을 묘사한 그림이었다. 


캔버스 하나를 꽉 차지한 빌딩의 모양새와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제법 잘 묘사가 되어 있었지만,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내부의 사람들의 모습이 전부 거꾸로 묘사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같이 온 친구에게 그 사실을 알렸고, 이후 우리는 그 그림 앞에서 잠시 담소를 나누었다. 


대체 이 사람들은 왜 뒤집어져 있는 것인지, 이렇게 그림을 연출한 작가에게 어떤 특별한 의도가 있었을지.


그런데... 그 순간 뒤에서 갤러리 담당자들이 당황한 듯 소곤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더니 갤러리 담당자가 다가와 '죄송합니다, 저희가 그림을 거꾸로 걸었네요'하고 사과하는 것이 아닌가.

친구는 나중에 그 일을 이야기하며 그 때 우리 모습이 얼마나 우스웠겠냐고 말했다.

그래도 나는 꿋꿋하게'이런 게 바로 포스트 모더니즘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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