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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나 Apr 16. 2022

[10줄 문학] 그래픽, 노블

2022년 4월 11일 ~ 4월 15일

1. 내 나이가 어때서


앞으로 법적, 사회적 나이 계산법을 만 나이로 통일하겠다는 인수위 속보를 봐버렸다.


다들 어쩐지 어려지는 기분이라며 좋아하는 것 같지만, 나는 이 소식이 왜 이리 달갑지 않은걸까.


나는 서른 무렵에 브런치 연재를 시작했다. 내 브런치에는 서른 하나, 서른 둘, 서른 셋, 서른 넷.. 차곡 차곡 쌓인 나이타령 글들이 잔뜩 있다.


스물셋, 스물다섯, 앨범을 내고 노래를 불렀던 가수 아이유까지는 아니어도, 나도 나름 나이먹는 게 내 컨텐츠였단 말이다.


서른 넷 이후 터진 코로나 때문에 한참 현실감은 없었지만, 이제야 겨우 서른 여섯인 나를 받아들이고 있었는데.


인수위의 속보를 보자마자 '헉, 여태까지 써놨던 글들은 다 어떡하지?'라는 생각부터 드는 걸 보니 나는 생각보다 내 나이에 진심이었나보다.


어쩐지 하루 아침에 강제로 나이를 뺏긴 느낌?

내 나이가 어때서. 다시 돌려줘요.......




2. 직녀의 삶


내 컴퓨터 방 책상 발밑에는 발받침이 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사무 의자에 앉아 발받침에 발을 올리면 그 날의 작업 모드가 켜진다.


마치, 천을 짜는 베틀 위에 손과 발을 올려두고 작업에 들어가는 직녀처럼.


나는 손가락을 굴리고 발가락을 까딱이며 머리 속에 있는 실같은 단서들을 엮어 이야기를 짜낸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머리가 좋은 사람은 소설가에 적합하지 않다'고 말했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손은 엄청 많이 가면서 효율은 떨어지는 음침한 작업이라, 머리가 좋은 사람은 이와 같은 느리고 천천한 노력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나 지금 나를 움직이게 하고, 쓰게 하는 원동력은 그의 또 다른 말이기도 하다.


'뛰어난 소설 한 편을 쓰는 것도 사람에 따라서는 그리 어렵지 않다. 간단한 일이라고까지는 하지 않겠지만, 못 할 것도 없는 일이다.'


그 말을 믿으며 오늘도 직녀는 글 베틀에 앉는다.





3. 그래픽, 노블


사람은 자신의 일상으로부터 영감을 얻는다.

그렇다면, 최근의 내 단조로운 일상에서 영감을 주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하루 4,5시간씩 시간을 들여 학원에서 배우는 그래픽 툴- 포토샵, 마야, Z브러시 등-들이다.

그러다 보니 요새 내 글은 점점 더 종잡을 수 없어지고 있다.


얼마 전에는 포토샵의 '오퍼시티(투명도)' 기능에 백수의 불투명한 앞날을 빗댄 칼럼을 썼다.

그저께는 단톡방에서 포토샵 크롭 기능을 쓸 땐 Delete Cropped Pixel 을 활성화하면 안된다는 것을 가지고,

'지금 당장은 필요가 없어서 잘라냈던 어떤 부분이라도 나중에는 불현듯 필요해질지도 모른다'는 철학을 설파했다.


특히 요즘 내가 가장 인상깊게 생각하며 사로잡혀 있는 기능은 마야의 Extrude 기능이다.

2차원의 면에서 3차원의 입체를 생성해내는 과정이 내겐 무척 흥미로워서, 언젠가 이것에 대한 글을 꼭 써야겠다고 항상 생각한다.


아무래도 커리어 전환을 하면서 내 뇌의 구조에 대변혁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이러다가는 언젠가 그래픽 툴의 기능들에 인생을 빗댄 그래픽 에세이..혹은 그래픽 노블이 탄생해 버릴지도?



+

그리고 정말 매거진을 만들어버렸다.↓↓

https://brunch.co.kr/magazine/graphicpoems




4. Sweet Box


최애가 해외 아이돌이다 보니 코시국에 이래저래 포기해야 할 것이 많았다. 한정판 포카나 브로슈어, 광고 상품 같은 것들.


그런데, 어느 날 한 덕친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외퀴인 나를 어엿삐 여겨 내 최애의 포토 티켓 굿즈를 한장 보내주겠다는 것이었다!


주소를 보내고 나서 기다린지 한 3주 쯤 되었을까.


매일 우편함 앞에서만 서성이던 나를 갑자기 경비원이 장기 보관 중인 택배가 있다며 부르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바로 그 분이 보내준 박스였다.


어마어마한 박스의 크기에 놀랐고, 열자마자 빈 공간 없이 가득 차 있는 내 최애의 각종 굿즈들과 과자들에 놀랐다.


덕후들이란 어쩜 이렇게도 스윗한 존재란 말인가. 너무 감동적이고 사랑스러워서 나 또한 평생 탈덕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5. 바람을 묻히고 왔어


며칠 전 서울에 갔는데 바람이 엄청나게 불었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부는 바람을 다 맞으며 대략 1km를 걸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한 내 모습은 당연히 머리도 옷도 다 엉망이었다.

내 모습을 보며 깜짝 놀라는 친구들에게 나는 웃으며 말했다.


"안녕, 바람을 묻히고 왔어."


사실 이 표현은 예전에 한 시인 친구가 가르쳐준 표현이었다. 언제 써도 먹히는 표현이다.


그리고 뭔가 이렇게 말하는 것만으로도 나를 정신없게 휘저어놓는 바람이 그렇게 골치아프게 느껴지지 않는다 해야 하나...


문득 써먹을 수 있는 이런 보물같은 문장들을 많이많이 저장해두고 싶다. 글쟁이에게 아카이빙은 필수니까.






10줄 문학 (Instagram) : @10lines.only


※10줄 문학으로 보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DM으로 편하게 소재나 사연 접수해 주세요. 당신의 이야기를 10줄 문학으로 써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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