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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10줄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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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나 May 07. 2022

[10줄 문학] 올려치기

2022년 5월 2일 ~ 5월 6일


1. 올려치기



아빠는 남들 앞에서 늘 나를 깎아내린다. 성격이 별로라는 둥, 여즉 시집을 못 갔다는 둥. 돈도 못 벌고 여성스럽지도 못하다고.


내가 살면서 공부해서 대학을 간 것도, 대학원에 간 것도, 취업을 한 것도 아빠에게는 큰 성취가 아니었다. 그랬기에 또 후려쳐졌다.


그런 아빠가 딱 하나 올려치기 하는 게 있는데 바로 내 나이다.


10년 전, 내가 한 26살 무렵부터 '네 나이가 서른이다'를 시전하길래 그 때도 꼬박꼬박 '아직 4년 남았거든?' 이라는 대답으로 받아쳐왔는데.


이제 36살이 되니 또 '너도 이제 마흔인데' '이제 너도 중년'이라는 의문의 올려치기가 시작되었다!


유리한 건 내려치고, 불리한 건 올려치다니.


일관성을 좀 가져줬으면 좋겠다.




2. 인생은 배라


며칠 전 만난 지인과 이런 이야기를 했다. 인생은 마치 고통의 뷔페같다고.


어차피 살면서 고통은 누구에게나 피할 수 없이 닥쳐오는 것이다. 그리고 누구나 안고 있는 고통의 종류는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르다.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눈앞에 차려진 고통의 뷔페에서 그나마 내가 견딜만한 것들을 고르는 것 뿐이다.


회사에 다니면서 받게 되는 고통과, 혼자 불안정한 상황에 대해 받게 되는 고통 중 하나를 선택하거나.


눈앞에 차려진 고통의 뷔페에서 우린 그나마 견딜만한 고통을 고르며 살아간다. 마치 배스킨라빈스에서 아이스크림을 고르듯이.


행복은 막연하여 마음대로 고를 수 없지만, 고통은 구체적이라 그나마 선택권이 주어진다는 것은 얄궂은 일이다.


그래도 결국 마지막에 절망에서 나를 구원하는 것은  '어쩌겠어, 이거 다 내가 선택한 건데.'라는 명백한 사실일 것이다.





3. 노마스크 데이



이틀 전 큰 일이 있었다. 돈이 꽤 들어 있던 돈봉투를 흘려 잃어버린 것이다.


떨군 돈은 당연히 찾을 수 없었고 지극히 절망한데다 당장 돈나올 구석도 없었던 나는 일단 한달간 극단적인 절약을 하기로 했다.


다음 날, 학원 수업 사이 점심시간이 되었을 때 난 테이크아웃 전용 매장에서 3500원짜리 핫도그를 하나 샀다. 근처에 앉아 먹을만한 벤치가 없어 공원까지 좀 걸었다.


멍하니 앉아 싸구려 핫도그를 우적우적 씹는데 안이 덜 익어서 차가웠다. 그래도 순식간에 다 해치우고 나는 오랜만에 바깥바람을 맞으며 립밤을 발랐다.


햇빛이 쨍쨍한 푸르른 공원을 멍하니 바라보며 당근마켓에 판매글을 올리는데 갑자기 눈물이 또르르 났다.


나는 눈물을 훔치며 중얼거렸다

하 씨발, 망할 꽃가루.





4. Kinnetic Birthday


내 인생 드라마인 QAF의 브라이언 키니는 늘 30세가 되느니 차라리 죽겠다고 말해왔다. 이후 마침내 도래한 그의 30번째 생일에, 친구들은 관짝과  비석 케이크를 준비해준다.

"Happy Deathday!"


친구들의 외침 속에 그는 분노가 폭발한다.


마침 그는 꿈꿔오던 뉴욕으로의 이직이 좌절된 참이었다. 그런데 30번째 생일이라니, 그야말로 최악에 최악이 더해진 상황이다.


서른이 지난 후로는 매번 생일이 될 때마다 브라이언을 떠올린다. 마지막 시즌, 바빌론에서 혼자 남아 춤추던 그의 모습을 보며 그의 늙어감을 슬퍼하던 나는 이제 그를 과거에 남겨두고 앞질러 나이들어간다.


'생일은 스스로 이뤄낸 성취가 아니기 때문에 기념하지 않는다'는 그의 말은 내 외로운 생일들에 냉소적인 위로가 되어주기도 했다


올해도 찾아온 변명도, 사과도, 후회도 없는  나의 Kinnetic Birth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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