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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나 Apr 30. 2022

[10줄 문학] 김치찌개

2022년 4월 25일 ~ 4월 29일 

1. 나쁜 꿈


요새 별별 이상한 꿈들을 다 꾸는데, 깨고 나서 일어나서 찾아보면 죄다 안 좋은 꿈들로 풀이된다.


'일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군데군데 장애물을 맞이한다, 망신을 당한다, 신체적으로 건강에 문제가 생긴다' 등등. 하여튼 내가 하고자 하는 뭔가가 계획대로 풀리지 않고 좌절한다는 의미의 결은 똑같았다.


사실 영 기분이 좋지만은 않다. 간밤에도 무척 안 좋게 풀이되는 꿈을 꿨는데 그 풀이를 읽으며 지난 주말 내가 온 힘을 쏟아서 시도했던 프로젝트들을 줄줄이 떠올리다 보니 더욱 의기소침해졌다.


나는 그 모든 것에 전부 진심이었고 그 모든 것들이 진심으로 잘 풀리기를 바라기 때문에..

차라리 이 꿈이 미래에 대한 예지가 아니라 가까운 과거에 일어났던 일에 대한 뒤늦은 타이밍의 후기라고 생각하면 차라리 마음이 편할텐데.


솔직히 그러면 정신승리 가능한 것이 완전 많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려도 안 팔리는 NFT라던가, 대중 앞에 서는 게 너무 떨려서 밤새 한숨도 못 잤고 진행했던 어제의 인스타 라이브라던가.


그냥 원래 어제 꿨어야 하는 꿈인데 잠을 하루 건너뛰어서 오늘 꿨다고 정신승리해볼까?





2. Narcissistic


그 날 따라 무척 바쁜 날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눈도 뜨지 못한 상태에서 다음 주에 라이브될 영상 인터뷰 편집본을  검토했다.


그리고는 집에서 정 반대방향에 위치한 서울 끝쪽에서 열리는 NFT 모임에 가서 발표를 했다. 집에 가는 길에 지하철에서 노트북을 펼쳐 10줄문학 매거진을 업데이트했다.


집에 와서는 3시간 정도 내리 꼬박 웹소설의 투고용 시놉시스를 정리했다. 끝내고 나니 10시가 넘었고 나는 배가 고프지 않았다.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는 건 어쩌면 이런 것일까? 나는 계속된 흥분 상태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잔뜩 쌓인 무언가를 하나하나 쳐냈다는 그 뿌듯함은 나의 성실함으로부터 왔다. 그리고 언제든 그 성실함에 기꺼이 취할 준비가 되어 있는 나는 나르시스트일지도 모른다.





3. 카이막


얼마 전, 집 근처에 카이막을 판매하는 카페가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카이막은 예전부터 먹어보고 싶은 디저트였기 때문에 찾아봤는데, 역시나 인기가 많아 오픈런을 하지 않으면 먹기 힘들다는 후기가 보였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나는 일단은 백수가 아닌가? 다만 학원에 다니고 있어서, 평일 점심이나 이른 아침을 빼서 먹으러 가기에는 시간이 조금 애매했다.


문제는 다음 주부터는 다른 과정이 시작되어 평일 오후라도 카페에 갈 시간이 안된다는 것이었다. 마음이 급해진 나는 그 날 바로 카페를 찾아갔다.


그런데 가서 보니 주차할 데가 마땅치 않았다. 대충 휴무인 것으로 보이는 한 공업사 앞에 주차하고 카페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주차 때문에 테이크아웃을 해서 바로 빠지려고 했는데, 카이막은 테이크아웃이 안된다고 했다.


결국 그토록 고대하던 카이막을 자리에 앉아 10분 만에 허겁지겁 해치우고 나오고 말았다는 슬픈 얘기.





4. 눈치 없는 검지


이 나이 쯤 되면 아무도 물어보지 않는 나의 취미는 필름 카메라 사진 찍기이다.


문제는 내가 필름 카메라로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 것과, 잘 찍는 능력은 별개라는 것이다.


필름 카메라는 특성상 인화하기 전에는 사진이 어떻게 찍혀있는지 알 수 없다. 때문에 가끔씩은 결코 의도치 않은 결과물들을 만나게 된다.


가장 돋보이는 것은 내 검지의 맹활약(?)이다. 낄끼빠빠를 모르고 어디서나 고개를 쑥쑥 내민 채 초점을 홀라당 가져가 버리는 내 검지를 볼 때마다 나는 '또 저질러 버렸구나'라는 심경이 된다.


필름 카메라 특성상 뷰파인더가 잡아낼 수 없는 내 손가락은 그렇게 나의 가장 큰 복병이 된다.


그렇게 인화한 사진들 속, 눈치도 없이 여기저기 찍혀 있는 내 검지를보면 좀 어이가 없다.

그렇지만 나는 안다. 지금 새로 끼운 이 필름도 검지 범벅이 될 것이라는 것을...






5. 김치찌개


김치찌개를 끓였다. 내 취향을 듬뿍 담아 끓여낸 김치찌개의 맛에는 그래도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그 김치찌개를 먹어본 누군가가 말했다.


김치찌개에 계란과 순두부를 넣는 사람이 세상에 누가 있어? 이건 김치찌개라고 할 수 없어. 나름 독특한 맛은 있지만, 김치찌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걸 돈주고 사먹을지는 모르겠어.


나는 내가 끓인 김치찌개에 대한 그의 솔직한 평가에 감사하면서도, 내가 끓인 김치찌개를 사람들이 좋아할지 모르겠다는 그 말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그는 다른 제대로 된 김치찌개를 먹겠다고 음식을 남긴 채로 자리에서 일어섰고, 나는 잔반을 처리한 뒤 다시 조리대 앞에 섰다.


잠시 고민해보았지만, 나의 김치찌개의 레시피를 바꿀 마음은 들지 않았다.


결국 같은 레시피로 김치찌개를 끓이며, 나 다움을 잃어서 죽도 밥도 안될 거라면 언젠가 차라리 이 김치찌개를 좋아해주는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다려보기로 했다.




10줄 문학 (Instagram) : @10lines.on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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