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월 23일 ~ 5월 27일
1. 새똥받이
새장을 청소할 때면 늘 종이 신문을 꺼낸다.새장 바닥에 새똥받이용으로 신문지를 깔면서, 나는 지난 기사와 광고들을 한번씩 들여다 보며 페이지를 고른다.
딱히 아무 면이나 골라도 상관없다 싶긴 하지만, 너무 텍스트가 빡빡하면 보기에 안 좋은(?) 것 같아서 최대한 광고 면을 위로 오게 해서 깐다.
복작복작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사가 담긴 이 신문지는, 곧 있으면 온통 새똥 범벅이 되어 분리수거도 안될 폐기물이 될 것이다.
하필 이번에 고른 면에는 신문사 주최로 세계의 석학들을 두루 모시고 한다는 으리으리한 온라인 강연 광고가 있었다. 물론 일자무식한 내가 그 중에 알아본 건 딱 한 명, 마이클 샌델 교수 뿐이었지만.
처음에는 아무리 신문지여도 마이클 샌델의 얼굴을 새똥받이에 쓰는 건 좀 찜찜하지 않나, 싶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뭐 어떤가?
멀리 떨어진 남의 나라 신문에 얼굴이 팔릴 정도의 존재가 된다는 것은, 그 부작용으로 남의 나라 한 가정집에서 제 얼굴이 하찮게 쓰이는 것 정도는 감내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그 정도로 유명해진 사람이라 하더라도, 결국에는 어딘가에서 기껏해야 새똥받이나 될 뿐이라는 것이 내 나쁜 성격에 고약한 흥미를 더해주기도 하고.
2. 스탑 워치 독서법
요즘 너무 책을 안 읽는다. 한달에 한권도 안 본다.
그런데 인간적으로 책을 보긴 봐야 한다는 생각은 항상 하고 있다. 이런 생각들이 점점 쌓여서 스트레스가 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 루틴에 강제적인 독서 시간을 추가하기로 했다. 바로 스탑워치 독서법이다.
스마트폰의 스탑워치를 켜두고, 딱 60분 만큼은 무조건 독서를 한다.
60분 동안 가만히 앉아서 무조건 책을 읽어야 하는 게 아니다. 그 날 그 날 조금씩 읽은 독서 시간을 총 합해서 60분이 되면 된다.
나처럼 독서를 할 시간을 내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한번 시도해 보면 좋을 것이다.
3. 은박지 라면
요즘 야외에서 끓여먹는 은박지 라면에 푹 빠졌다. 일주일에 한번은 꼭 먹는 것 같다.
나의 고민은, 은박지 라면에 계란을 하나 넣고 싶다는 것이다. 그런데 편의점 매대에 파는 계란은 3개를 묶어 파는 것밖에 없었다.
그 앞에서 나는 잠시 고민했다. 이거 하나는 지금 먹는다 쳐도 나머지 2개는 어떡하지?
결국 날계란을 조심스레 다시 집에 가져갈 생각을 하며, 나는 3개 묶음 계란을 샀다.
그런데 라면이 끓어서 계란을 넣으려고 탁 깬 순간, 나는 그것이 날계란이 아니라 훈제 삶은 계란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너무 당황하여 황급히 계란을 회수했다. 다행히 라면에 삶은 계란은 의외로 궁합은 맞았다.
4. 두 백수
그녀가 내 동네로 나를 찾아왔다. 오랜만이라, 차는 두고 왔다고 했다.
2년 만에 보는 친구의 얼굴은 10년 전에 본 얼굴과 거의 다를 바가 없었다. 우리는 둘 다 백수면서, 마치 고된 하루 일을 마친 직장인들처럼 크-인상을 쓰고 술을 들이켰다.
우리의 대화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급기야는 담배 한 대를 피우러 나가는 친구를 따라 나가서까지 조잘거리며 대화를 나눴다.
그녀는 담배 연기를 뿜으며 말했다.
"후...이젠 진짜 돈 좀 벌어야 될 것 같은데."
"....나도."
꿉꿉한 초여름의 어느 밤, 좁은 골목길에 선 두 백수의 깊은 한숨이 섞였다.
5. 그 때는 맞고 지금은 틀릴까봐
내 생각은 계속해서 변한다. 아마 나만큼 어제의 나를 오늘의 내가 끊임없이 배반해가며 살아가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과거에 썼던 글들을 보면 가장 먼저 '이땐 내가 왜 이렇게 생각했지?'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분명 그 글을 썼던 나도 나인데 나는 그 때의 나와 동의할 수가 없는 것이다.
최근, 나의 퇴사와 이후의 일상을 소재로 소설을 쓰고 있다. 소설을 쓰기 위해 다른 직장인들의 글들을 참고차 찾아보고 있는데, 어째 보면 볼수록 공감이 간다.
이러다가는 회사를 뛰쳐나가는 것보다, 회사에 남아 뭔가를 이뤄내는 것에 더 의미가 있다는 생각에 동조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마음이 급하다. 내 생각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기 전의 순간을 어서 잡아서 기록해놔야 할 것 같아서.
어쩌면 나의 글쓰기는 사진촬영과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