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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나 Jun 11. 2022

[10줄 문학] 최애 엄마

2022년 6월 7일 ~ 6월 10일


1. 최애 엄마


꽤 어릴 때부터 여돌 덕질을 했다.


나는 그녀들에게 늘 과하리만치 진심이었다.  과거 남자친구들은 그런 나의 성향(?)을 의심하기도 했었으니까.


당시 여돌들은 수명이 짧았다. 그룹 활동을 하던 내 최애들은 갓 20살에 졸업이라는 형태로 그룹을 떠났다.

나를 울고, 웃게 했던 내 젊은 날의 그녀들은 이제 거의 TV에 나오지 않는다.


대신, 내가 그녀들의 소식을 접하는 것은 대부분 뉴스에서다. 그녀들은 한때의 팬인 내게 누가 결혼을 하고, 득남을 했으며, 이혼을 한다는 그런 소식들과 함께 근황을 전한다.


그녀들의 소식을 볼 때면 세월이 야속해진다. 최애는 엄마가 되었는데, 중학생이던 나는 아직 중학생의 마인드를 벗어나지 못하고 몸만 늙는다.




2. 자화상


3D 그래픽 과정이 곧 종료된다. 이제 뭐하지 고민하다 웹툰 학원에 등록하기로 결심했다.


상담 예약을 하고 처음 방문한 날, 원장님은 테스트를 봐야 한다며 나를 혼자 강의실에 밀어 넣었다.


온통 하얀색인 그 방에는 책상과, 종이와, 연필과, 거울이 있었다.


나는 거울을 보고 나의 자화상을 실사 버전과 캐릭터 버전으로 그려야 했다.


얼마 전에 봤던 <그리고, 또 그리고>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히다카 선생님의 화실에 처음 다니게 된 아키코가 계속 그렸던 것도 거울 속 자신의 모습 아니었던가.


주어진 15분의 시간 동안 묵묵히 자화상을 그리며, 꽤나 많은 것을 그렸음에도 정작 이런 살아있는 것을 그려본 적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완성된 자화상의 나는 거울 속의 나와 같은 호기심을 담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는 대체 왜 여기에 앉아있는 거야?





3. 키위 스티커


키위를 먹을 때마다 생각한다. 왜 키위에는 개별적으로 스티커가 붙어있는 것일까?


매번 키위를 먹을 때마다 신경써서 껍질의 스티커를 벗겨내지 않으면 안되는데, 이게 생각보다 굉장히 신경이 쓰인다.


다른 과일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 어째서 키위에만 그렇게 하나하나 스티커를 공들여 붙여놨냐는 말이다.


어쨌든 스티커 처리가 귀찮은 나는 가끔은 그냥 스티커를 떼서 손목이나 손등에 붙여놓고 잊어버리곤 한다.


가끔은 그 스티커를 하루 종일 잊고 살다가, 샤워할 때 발견한다. 주방에서와 마찬가지로, 욕실에서 마주치는 자그마한 스티커 비닐은 어쩐지 처리하기 당황스러운 질감이다.


어느 날 머리카락에 붙어 있는 키위 스티커를 발견했을 때, 나는 뭔가 이 문제에 대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세상의 공익을 위해서라도 무의미한 키위 스티커의 존재는 없애버려야 한다. 정 키위마다 로고를 새기고 싶다면 스티커 대신 키위에 불도장 문신을 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일 것이다.




4. 인도, 어게인


요즘 밤마다 이어서 꾸는 꿈이 있다. 15년 전에 다녀왔던 인도에 현실 지인들과 함께 다시 가는 꿈이다.


앞으로 내가 살면서 다시 인도에 가볼 일이 있을까 싶지만, 꿈 속의 바라나시는 여전히 생생하게 아름다웠다.


꿈에서 깰 때마다 나는 그게 꿈이었다는 사실에 안심한다. 그러면서 스스로도 헷갈리기 시작한다. 내가 정말 인도를 다녀온 게 맞나?


요즘은 지하철만 타도 가방을 매고 타기 힘들어서 바닥에 내려놓고 타는 내가. 지금보다도 말랐던 그 시기에 12kg의 배낭을 지고 혼자 여행을 했던 것이 놀랍다.


지금은 20대의 나에게 그저 감사할 뿐이다. 다시 돌아갈 수 없을 것이고, 앞으로도 내가 12kg의 배낭을 지고 여행할 일은 없을 것이기에


가능하다면, 꿈 속에서 10대의 나와 20대의 나와 30대의 내가 셋이 모여서 정모를 해보고 싶다.





10줄 문학 (Instagram) : @10lines.on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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