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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10줄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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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나 Jun 18. 2022

[10줄 문학] 내 이야기!!

2022년 6월 13일 ~ 6월 17일 


1. 보안상 잠김


평소 동네 카페에 글을 쓰러 갈 땐 꼭 키보드에 하드 케이스를 챙겨 가는 편이다.


무접점 키보드 특성상 하드케이스가 필요하기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영화 <마틴 에덴> 속 에덴이 여행을 갈 때마다 손에 들고 다녔던 키보드 가방을 동경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서울에 약속이 있어서 나갈 때는 굳이 그걸 바리바리 싸서 들고 나가진 않는다. 꽤 무겁기 때문에.

노트북과 무접점 키보드가 아닌, 아이패드에 얇은 키보드 하나를 챙겨 나가는 것이 보통 나의 서울 나들이의 준비물이지만...


얇은 슬리브 하나를 씌워서 대충 가방에 욱여 넣어둔, 전원 켜진 블루투스 키보드가 재앙의 서막이었을 줄이야.


외출하고 돌아와 보니 나의 아이패드는 '보안상 잠김'이라는 메시지만 띄운 채로 먹통이 되어 있었다. 약속 상대와 만나길 기다리면서 카페에서 급하게 글을 쓰다, 블루투스 키보드의 전원을 끄는 것을 깜빡 잊은 것이다.


최근에는 전원을 끄지 않아도 키가 막 눌릴 일이 없는 하드 케이스에 무접점 키보드만 사용했기 때문에, 오랜만에 방심한 차에 당해 버리고 말았다. 결국 아이패드는 초기화되었고, 나는 앞으로 절대로 블루투스 키보드의 전원을 끄는 것을 잊지 않으리라.





2. 스콜



기후 변화 때문인지, 최근에는 일기예보에 비소식이 있어도 예전처럼 며칠씩 하루종일 비가 내리지는 않는다. 대부분은 하루 중 짧게 쏟아붓고 지나가는 스콜에 불과하다.


그런 상황에서, 돈을 아끼려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다 보니 본의 아니게 날씨와 눈치게임을 하게 된다.


오늘만 해도 강수확률이 60%였으나, 날씨는 화창했다. 내가 이동하는 시간에만 비가 오지 않으면 어쨌든 자전거를 타고 목적지에 갈 작정이었다.


그런데, 자전거를 타고 고작 10분 쯤 되었을까?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순식간에 쏟아진 비에 흠뻑 젖은 나는 타던 공유자전거를 버리고 뛰었다. 버스와 지하철을 겨우겨우 갈아타고 목적지에 도착했을 땐 다시 화창한 날씨였다.


이번 눈치게임은 실패했지만 다음엔 꼭 성공하리라.





3. 미즈마블


<미즈 마블> 첫 편을 보았다. 슈펴히어로에 빠져서 코믹콘에 다니는 오타쿠 소녀가 슈퍼 히어로가 된다는 설정이 흥미로웠다.


그것이 내게 흥미롭게 느껴졌던 이유는, 아마도 카말라 칸이 스스로에게 좀처럼 자신을 가질 수 없어 묻는 질문이 지금 내가 내게 하는 질문과 같기 때문일 것이다.


좋아하는 콘텐츠와, 팬아트와 같은 2차 창작만으로 머릿속이 가득한 소녀는 공상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에 좌절한다.


그런데, 그건 사실 나도 그렇다.

나는 미즈 마블을 보면서 생각했다.


그래도 너는 슈퍼히어로라도 되겠지.

나는 그냥 동인녀인데.


그래도 오타쿠에 대한 내 애정은 아무래도 어쩔 수 없다.


내 나이 반토막보다 어린, 공상걸 미즈 마블의 성장기를 보고 싶다니.



4. 내 이야기!!


최근 주변에 이런 저런 일을 앞두고 사주, 타로, 점성술로 제 운명을 점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생년 월일이, 이름이, 태어난 날짜가 변하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매번 저런 것들을 확인하고 즐거워 한다. MBTI같은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고.


너무 과몰입하면 문제가 있긴 하지만, 솔직히 저런 것들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알 것 같다.


주가는 폭락하고, 물가는 고공 행진하고, 주담대 금리는 7%를 넘을 예정이다. 이토록 폭주하는 세상 속에서 그나마 한 가지 내가 확실하게 인지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나 자신 뿐이고.


게다가 인간은 기본적으로 누구나 다 이기적인 나르시스트들이다. '경청하라'는 조언이 그 오랜 세월 동안 효과적인 것으로 먹혀드는 이유도 바로 사람들이 남들의 이야기에 그다지 깊은 관심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고...


사주든 심리테스트든, 그 순간만큼은 타인이 나에게 온전한 관심을 쏟으며 다른 누구의 이야기도 아닌 '내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그게 얼마나 재밌겠나.


진짜로 운명이나 미래가 궁금해서라기보단, 다들 그저 한번쯤 누군가가 풀어놓는 썰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 관종이기 때문일 뿐이다.




5. 횡령이 제철


횡령이 제철이다. 오스템 임플란트는 말할 것도 없고 루나 권도형 대표는 섬 하나를 살 수 있는 돈을 빼돌려 놨단다. 얼마 전에는 농협 직원의 40억 횡령 건도 터졌다.


잦은 횡령, 그에 딸려 오는 한탕주의, '안 걸리면 된다'는 마인드가 이렇게 제철 횡령을 생산해낸다. 그리고 이처럼 횡령 사건이 빵빵 터지는 것은 대표적인 대공황의 전조 증상이기도 하고.


밀값이 뛰고, 먹는 기름 타는 기름값이 오르고 있다. 이번 경제 위기가 심각한 것은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급격한 기후 변화까지 동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정말로 생존의 문제가 될 것이다. 임금 인상은 한계가 있으니, 직장 하나만 가지고서는 먹고 살기 힘든 그런 시대가 결국 와버렸다.


멸종 위기에서 새롭게 진화한 생물처럼, 이 시기 인류는 직업 디폴트값이 투잡인 상태로 진화할 것이다.





10줄 문학 (Instagram) : @10lines.on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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