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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10줄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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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나 Aug 13. 2022

[10줄 문학] 좋은 승부

2022년 8월 8일 ~ 8월 12일

1. 페관수련


페관수련. 나 혼자 쓰는 말이다.


무슨 뜻이냐면, 페이스북 앱을 안 본다는 뜻이다.


<낭만퇴사>에 진심인 나는 <낭만퇴사>를 시작하며 페북에 발걸음을 끊었다.


페북 피드에는 너무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이 올라온다. 그게 심지어 다 내 지인이기까지 하다.


이상하게, 인스타나 인터넷은 빨리 질리는데 페북과 트위터는 도통 질리질 않는다.


나는 트위터도 열심히 하고 있고 창작도 하고 있으므로 시간을 뺏기는 요소가 두 개여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있다.


그래서 나는...페북을 버리고 징그러울 정도로 글을 쓴다. 이게 나의 페관수련이다!






2. 중랑천 로맨스


예전에 살던 집은 중랑천에 바로 붙어 있었다.


남자친구나 썸남이 집 근처까지 데려다주면, 헤어지기 아쉬울 땐 그대로 중랑천에 내려가 좀 걷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중랑천은 내게 좀 로맨틱한 장소로 추억된다. 그 집에서 살던 때가 나의 리즈시절이었던 것 같아서.


어제 일이 있어서 외출했다가, 집에 돌아오는 길에 경찰차가 길 입구를 막고 있는 것을 보았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동부간선도로로 통하는 입구를 통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걸 보니, 몇 년 전에 비가 엄청나게 쏟아졌을 때 헤어졌던 남자친구로부터 연락을 받았던 게 기억났다.


중랑천에 비가 많이 와서 내 생각이 나서 걱정되서 연락했다는 말이었다.


그 때는 굳이 그런 연락을 하나 싶었지만, 지금은 그 마음이 너무 고맙게 느껴진다.


비오는 날에 나를 떠올려 줄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조금은 덜 외로웠으므로.






3. 집게핀


나를 포함하여 최근 만나는 친구들이 전부 똑같은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다.


긴 머리를 쥐고 말아 틀어올려 고정시킨 집게핀 스타일이다.


어릴 때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그렇게 집게핀을 꽂는 것이 '아줌마'가 되는 최후의 보루 같았으니까.


게다가 머리숱이 많아 집게핀 하나로는 다 잡히지 않아 오히려 불편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한번에 문제없이 잘 잡힌다. 나도 노화하여 머리숱이 많이 줄은 탓이다.


어릴 때 한번쯤 해보고 싶었으나 머리카락이 무거워서 못했던 높은 똥머리도, 낮은 똥머리도 다 가능하다.


어차피 나중에는 머리숱이 줄어서 자연히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어릴 때는 두피를 좀 가만 냅뒀을 것이다. 그러면 머리도 천천히 빠지지 않았을까?






4. 흐르는 방향으로



시간은 흐르는 것이다. 왜 그것을 흐른다고 표현하는지 이제 조금씩 알 것 같다.


과거의 한 지점에 우뚝 서 있어도, 어차피 시간은 흐르고 삶도 나도 변한다.


가만히 서 있으면, 나를 빼 놓고 흘러가는 시간 때문에 쓸쓸해질 뿐이다.


그러니 흐르는 방향으로 걷는다.


정적인 삶의 리듬 속에서도 뭔가 어제와 다른 오늘을 살기 위한 경험을 해보는 것이다.


인간도 시간도 변하지 않는 것은 없기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오늘도 부지런히 흘러본다.


언젠가 더이상 걷지 못할 때가 오면, 서서 시간을 맞으며 지나간 시간을 돌이켜보겠지.


걷는 것을 포기할 그 날에 나는 흐르는 시간에 누워 휩쓸려 사라져버리겠지만.


그래도 그게 오늘은 아니니까, 나는 오늘의 걸음을 다시 시작한다.





5. 좋은 승부


웹소설 인풋을 하고자 안 하던 짓을 했다. 어린이들이 주로 가는 과학체험관에 방문한 것이다.


애들 손을 잡고 온 부모들 사이에서 나는 어딜 가나 튀었다. 나는 마치 자료조사를 하러 온 직장인 같은 심경으로 진지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 내 눈에, 전면에 가상 화면을 펼치고 달리는 사이클이 보였다. 마침 아무도 없길래 나는 그 위로 올라가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그런데 중반쯤 달리자 도전자 알림이 떴다. 내 옆에 비어 있던 자전거에 초딩 저학년으로 보이는 아이가 올라타더니 필사적으로 페달을 밟기 시작한 것이다.


이기고 싶은 마음과 어른된 마음 사이에서 살짝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나는 결국 조금씩 속도를 늦춰 어린이가 이기도록 해주었다.


이기진 못했지만, 어른으로서는 좋은 승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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