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휠>, 내가 그의 캐롤라이나였다면.
비 내리는 차 안, 믹키는 캐롤라이나의 이야기를 전부 들어주었다.
어린 시절에 너무 쉽게 휩싸여 버린 사랑의 열정으로 인한 경솔한 결정.
사랑의 종말, 그리고 배신, 26살의 나이에 도망자가 될 수 밖에 없었던 기구한 사연.
그는 그녀의 이야기들을 모두 들은 후에도, 경이로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그리고는 말한다.
"나는 모든 것을 글로만 접했을 뿐인데, 당신은 그 모든 것을 직접 겪었군요. 당신에 대해 알려줘서 고마워요."
그녀의 어두운 과거와 현재의 쫓기고 있는 비참한 상황은 그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짧은 시간, 그녀가 자신의 이야기를 숨김없이 진솔하게 털어놓았다는 사실에 그는 순수하게 감동하고 있었다. 비 속에 비춰진 얼굴을 아름답다 말하는 그는 그녀의 삶을 들으며 그녀에게 사랑에 빠졌다고 확신했다.
불현듯 떠오르는 얼굴. 술집에서 잔을 나누며 하던 진솔한 대화들.
나는 그 짧은 순간들마다 그에게 '나'를 알리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그에게 푹 빠져서, 나의 모든 것을 알아주고 받아주길 바랐다.
나는 우리가 마주앉은 자리에서 내 어두운 과거, 사랑과 삶에 대한 고민들을 쏟아냈다.
그러나 그는 <원더 휠>의 믹키처럼, 모든 이야기를 다 듣고도 나에 대한 경탄을 유지하지는 못했다.
그는 그저 시선을 내리깔고는 "넌 정말 성숙하구나. 나보다 훨씬 성숙한 사람이야. "라고 말할 뿐이었다.
"그래, 넌 참 예쁘지. 그래서 내가.... "
뒷말을 삼킨 그는 한숨을 쉴 뿐이었다. 나는 그의 뒷말을 짐작하며 기다렸지만 그는 결코 그 이상의 선을 넘어 내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정말 나와 사랑에 빠졌던 거라면, 그 역시 또한 내게 믹키와 같이 말하지 않았을까?
너에 대해서 알려줘서 고맙다고. 혹은 <맨해튼>의 우디 앨런처럼 너는 너무 불안정하지만, 멋진 여자라고. 그렇게 말했지 않을까?
나는 그에게 캐롤라이나이길 원했으나, 현실은 신경증에 빠진 지니였다.
그에게 연연하는 내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내 인생에 찾아온 구원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전전긍긍하면서도 그에게는 티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우리 둘의 드라마에서, 신경증에 빠졌던 것은 나였다.
지니의 선물을 받고 당황하던 믹키의 모습.
나 또한 우리의 마지막 밤에 그에게 선물을 건넸던 순간을 기억한다. 그는 당황스러운 듯 부담스러워했다.
그렇다. 나의 선물은 이미 그에게는 기쁨이 아닌 부담이었다.
그녀의 선물은 그의 마음을 확신할 수 없다는 불안과, 자신을 사랑해달라는, 그리고 그 마음을 좀 더 표현해달라는 마음을 에둘러 표현한 것임이 분명한데.
선물과 함께, 술김에 서툴고 두서없이 쏟아내던 내 삶의 궤적을 담은 이야기들은 모두 결국은 그를 좋아한다는 외마디 외침과 같았다. 그러나 나의 그런 이야기들은 그에게는 기쁨이 아닌 부담이었다. 나의 삶은 그에게 사랑이 아닌 부담이었다. 난 캐롤라이나가 아닌 지니였기에.
I think you're terrific.
really, you know, you're very insecure.
But I think you're wonderful, really.
난 네가 멋진 여자라고 생각해.
넌 너무 불안정하지만, 그래도 넌 멋진 여자야.
- 아이작(우디 앨런), <맨해튼(1979)>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