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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나 Feb 13. 2018

인생은 결국 해피엔딩일까

나의 <매치 포인트>에서, 공이 네트에 걸렸다.


영화의 시작, 카메라는 테니스코트의 네트를 비춘다. 

네트 위로 아슬아슬하게 지나가는 공 위로, 이런 내레이션이 흐른다.


누군가 선한 삶보다 운 좋은 삶이 낫다고 한다면 인생을 달관한 사람이다.

사람들은 삶의 대부분이 운에 좌우한단 걸 인정하지 않는다.
그런 생각에 골몰하면 미칠 지경일 테니.

시합에서 공이 네트를 건드릴 때, 공은 넘어갈 수도, 그냥 떨어질 수도 있다. 
운이 좋다면 공은 넘어가고, 당신은 이긴다.
반대의 경우, 패배한다.

- <매치 포인트 (2005)> 중에서


 이윽고 영화가 클라이맥스에 다다를 때 즈음, 크리스가 던진 반지는 난간에 맞고 튀어 오른다. 화면은 그 반지가 잠시 튀어 올랐다가, 강이 아닌 난간 안쪽으로 떨어지는 장면을 슬로 모션으로 보여준다. 관객은 그 장면에서 크리스의 패배를 직감하지만, 오히려 반지의 방향은 모두의 예상을 빗나가고 그를 구원하는 결정적 신의 한 수가 된다. 


 수많은 영화를 보는 동안 천편일률적인 권선징악 결말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이 영화의 결말은 다소 혼란스럽게 다가온다. 일시적인 허무가 덮쳐오기도 한다. 

 그러나 비록 '될놈될'이 진리인 세상일지라도, 계속해서 '선하게' 혹은 '열심히' 이 지난한 인생을 살아갈 마음을 먹게끔 하는 것은 결국 인생의 흐름은 어느 정도 굴곡은 있을지라도, 길게 보면 우상향일 것이라는 믿음뿐이다.


 크리스의 반지가 난간 안쪽으로 떨어진 것이 호재였듯, 인생이란 도통 뜻대로 흘러가 주지 않기도 하고, 때로는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어떤 방식으로 진행될지 예측에 실패하기도 한다. 아마도 뻔하지 않은 삶이기 때문에, 행동 패턴이 예측되는 '뻔하게 착한' 삶보다는 '운 좋은 삶'이 낫다고 말하는 것일 것이다. 


 나는 여태까지 운 좋은 사람이기도 했고, 선한 사람이기도 했다. 아니, 사실 선한 사람이기 위해 노력해왔던 것 같다. 그런 내게 지난 2017년의 여러 실패들은 너무도 뼈아픈 경험들이었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남에게 피해 주지 않기 위해 조심하며 살아왔는데 왜 내게 이런 절망적인 일들이 한꺼번에 닥치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분명, 네트에 걸린 공이 족족 내 코트로만 떨어지는 상황이었는데.


 그런데, 올해부터, 뭔가 묘하게 흐름이 바뀌기 시작했다. 내가 처한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내가 시작한 활동들과 노력들이 나를 움직이게 하고, 내 삶에 새로운 기회와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상처를 치유해 가는 과정에서, 어느새 나는 모든 면에서 조금씩 전보다 더 나아진 나 자신을 본다. 2017년의 나는 바닥을 찍었지만, 지금은 그때보다는 낫고, 오히려 지금의 내 모습이 작년의 내 모습보다 더 마음에 드는 것 같기도 하다. 


 '인생 뭐 다 필요 없고, 운 좋은 게 장땡'이라고 말하는 듯한 이 냉소적인 영화에서, 나는 이와 같은 묘한 위안을 얻는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좀 더 지켜보라고. 인생은 결국 길게 보면 우상향이고, 지금의 <매치 포인트>에서 놓친 실점은 나중에 신의 한 수로 다가올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그러니 자신의 운을 믿고, 뜻대로 굴러가지 않는 인생의 거대한 흐름에 한 번 그냥 몸을 맡겨보라고. 


 2017년의 그 힘들었던 순간들마다, 나의 공이 네트 위로 넘어간 것도 넘어가지 못한 것도 결국은 '운'이다.

사실 마땅히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절감한 채, 그래도 결국은 해피엔딩이기를 조용히 바라는 나는 어쩌면, '인생을 달관한 사람'이 되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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