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날이면 종종 기분이 가라앉는다. 오늘은 플러스 우울감까지. 미친 듯이 바쁘게 지낸 요즘이다. 백수가 더 바쁘다고, 출퇴근할 직장도 없는데 분 단위로 살고 있다.
CT 촬영일이 다가오면서 더더욱 숨 가쁘게 지냈다. 멍하니 있는 그 순간, 억지로 밀어 넣었던 불안감이 탁 하고 튀어나올까 봐. 그 불안에 잠식당해서 소중한 하루가 무너질까 봐, 쉬지 않고 몸을 놀렸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흐린 하늘을 본 순간 그 두려움이 어찌할 새도 없이 덮쳐 버렸다.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가장 두려운 미래의 그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순식간에 이어진다. 아이들을 보내놓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우울해 보기로 한다. 오랜만이기도 하다. 하루하루가 의미 있고 기쁘기를 바라는 마음에 부정적인 감정은 스치듯 보내려고 한다. 하지만 자꾸 얼굴을 들이미는 이 감정을 오늘은 조금 알은체 해줘야겠다.
이럴 때 제일 따듯한 위안을 주는 친구는 커피 한잔이다. 건강을 생각하면 멀리 해야 하지만, ‘오늘만은’하면서 아메리카노 한잔을 홀짝인다.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다가 다이어리를 끄적여 보고, 브런치에 올라온 새 글들을 읽어본다. 공교롭게 브런치를 시작하고 본격적으로 아픈 바람에 이웃 작가님들의 글을 잘 읽지 못했는데 요새 들어서야 제대로 읽어보고 있다. 읽을수록 그녀들의 성실하고 정성스러운 일상이 내 안에 쌓이고, 그에 비례하여 관심과 정도 깊어간다. 심플해진 나의 인간관계에 갑자기 속 깊고 정다운 친구가 여러 명 생긴 느낌이다.
오늘도 여러 주제들이 나름의 필체로 그려져 있다. 자신의 삶에서 특별한 순간을 찾아내고, 그 순간을 추출한 언어들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본다. 어떤 글에는 일상의 대소사가 담기기도 한다. 어느 분에게 닥친 큰 일에 놀라기도 하고, 기쁜 일에는 잔잔한 미소가 일기도 한다. 그 일에 대한 나의 생각을 간단하게 댓글로 남기고, 내 글에 달린 이웃 작가님들의 댓글에도 답장을 한다. 한동안 그러고 있으니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는 사이 커피가 식었다. 비는 아직 내린다. 오늘종일 내릴 모양이다. 이 비가 내린 후에는 시원한 가을이 성큼 오기를 바라 본다. 이 가을이 활력과 웃음으로 채워지길. 오늘도 참 아름답다고 느끼며 감사의 나날이 되기를.
나의 브런치 친구들도 오늘 하루 안녕하기를.
그리고 우울도 안녕히 잘 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