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래도록 우아한 여자가 되고 싶었다. 자신을 과시하지 않으면서도 존재가 은은히 드러나는 사람.
해야 할 말은 조용히 하되, 감정은 절제할 줄 아는 사람. 말보다 태도, 태도보다 품으로 기억되는 사람.
그게 내가 바라는 ‘우아함’이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뒤에도 그 가치를 놓고 싶지 않았다. 겉으로 보이는 단정함을 유지했다. 집에서도 옷매무새를 가다듬었고, 잠깐 동네에 나갈 때도 옷을 갈아입었다. 남편 앞에서는 속옷을 보이지 않으려 애썼고, 방귀도 트지 않았다. 그 모든 노력은 내 우아함을 지키기 위한 작은 의식이었다.
하지만 그 가치관은, 단 한순간에 무너졌다. 배에 장루를 단 뒤부터였다.
암이 발생한 직장을 절제하며, 배변 활동을 임시로 우회해야 했다. 오른쪽 아랫배에 구멍을 내어 장루(인공항문)를 달았고, 그를 통해 변이 몸 밖으로 배출되도록 해야 했다. 보통은 6~8개월 후 장루를 제거할 수 있지만,
그 전까지는 주머니와 함께 살아야 했다.
각오는 했지만, 장루를 단 삶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번거롭고 예민했다. 주머니가 조금만 차도 비워야 했고, 어디에 가든 가장 먼저 화장실 위치부터 확인해야 했다. 밀봉되어 있다지만 냄새가 올라올 때도 있었고,
주머니가 무거워지면 갑자기 떨어질 수도 있었다. 3일에 한 번은 장치를 교체해야 했는데 변이 완전히 나오지 않은 시간대를 기다려야 했고, 그 시간대를 위해 먹는 시간과 양까지 조절해야 했다. 교체에도 시간이 꽤 걸렸다. 아이를 키우며 그 시간을 확보하는 건 늘 전쟁이었다.
어렵게 교체한 장루가 불량일 때도 있었다. 육안으로 봐서는 발견하기 힘들고, 직접 붙이고 생활해 봐야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허리를 굽히거나, 비트는 등의 움직임이 크면 접착력이 약해졌고 기지개를 펴는 동작조차 조심스러웠다. 아무렇지 않게 했던 사소한 동작들이, 어느새 허락된 순간에만 가능한 일이 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그건 여성으로서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늘 펑퍼짐한 원피스를 입었고, 숄더백으로 배를 가리며 걸었다. 걸을 때마다 옆구리를 눌러보며, 주머니가 잘 붙어 있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처음 사고가 난 건 퇴원 후 첫날 밤이었다. 둘째 아이의 잠버릇이 험해서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에 긴장된 채 잠들었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그냥 자리를 옮기자는 생각을 하다 그만 깜빡 잠이 들었다.
축축한 느낌에 눈이 번쩍 떠졌다. 옆구리가 뜨뜻했고, 손을 대보니 장루가 사라져 있었다.
'설마...' 슬픈 예감은 늘 적중한다.
이불을 들추자 내 아랫도리, 이불, 옆에 있던 아이까지 모두 변으로 덮여 있었다.
말문이 막혔다.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단 한 마디, “씨발…”
평소 잘 쓰지 않던 욕이었다. 비릿한 냄새에 정신이 들었다. 조용히 수습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를 악물고 남편을 깨웠다.
“장루가 떨어졌어…”
잠결의 남편은 상황 파악에 잠시 멍해 있었다. 곧 말없이 이불을 걷어 화장실로 향했고, 잠에 취한 둘째를 안고 가 씻기고 옷을 갈아입혔다. 그사이 나는 옷을 빨고 샤워를 하고, 장루를 다시 붙이고 나왔다.
남편은 아직 씻지도 못한 채 침대 모서리에 앉아 있었다. 손에 변이 묻은 채로 멍하니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어서 씻어.”
내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가 내 곁을 지나칠 때, 나의 똥냄새가 따라갔다.
나는 침대에 누워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그 순간, ‘우아함’이라는 나의 신념은 한순간에 날아갔다.
그 모든 의식과 노력은 똥냄새 앞에 무너져버렸다. 창피하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수치라는게 이런 걸까.
아프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지만, 그건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더 놀라운 건, 그런 일이 두어 번 더 있었다는 사실이다. 아이 때문도, 내 움직임 때문도 아니었다.
이불과 몸이 엉켜 장루가 눌리고, 자다 깨어보면 다시 똥파티. 절망, 수습, 자존감의 추락. 일련의 사건을 반복하다보니 우아함은 진정 사치의 단어였다.
한 번은 시내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아랫배가 뜨끈하다 싶어 손을 대보니, 주머니가 3분의 1쯤 떨어져 있었다. 베이지색 원피스가 빠른 속도로 갈색으로 번져가고 있었다. 주머니를 움켜쥔 채 뛰듯 걸었다. 그러나 전력 질주는 할 수 없었다. 몸이 흔들리면 아예 떨어져버릴 수도 있으니까. 집에 도착했을 때 나는 땀과 똥냄새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젊은 시절, 나는 상상도 못 했다. 내가 언젠가 똥주머니를 차고 다니게 되리라는 걸. 그런 일은 늘 남의 일 같았고, TV 속 이야기 같았다. 그땐 어떻게 하면 더 날씬해 보일까, 어떤 옷이 나를 돋보이게 할까, 그런 고민만으로 하루가 가던 시절이었다. 아마 많은 젊은 여자들이 그럴 것이다. 누가 십 년 뒤, 자기 똥을 남편과 함께 치우게 될 줄 알겠는가.
그 8개월 동안, 우아함은 나에게 아무 의미도 없었다.
그저 변만 새지 않기를,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기를, 체면 하나라도 지켜지기를 바랐다.
그렇게 우아함은 내 인생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그 자리에 남은 건, 겸허함이었다.
나는 이제 안다. 고통과 수치, 불편과 두려움은 언제든 예고 없이, 새벽의 침입자처럼 삶을 덮칠 수 있다는 걸.
그 앞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태도는 단 하나. 바로 겸허함이다.
삶은 언제나 예외를 만든다.
그 예외 앞에서 무너지지 않고 살아내는 일,
그게 어쩌면, 진짜 우아함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