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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뮤 Mar 16. 2023

다음 주에 아플 예정입니다.

다음 주에 아플 예정이다. 정확히는 목요일이다. 항암을 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주사를 맞고 나면 며칠 동안 시체처럼 지내게 되는, 대체 이게 사람을 살리는 약이 맞는지 의문이 드는 항암약. 입덧처럼 메스껍고 울렁거리는 느낌과 비슷한데 음식을 먹으려고 하면 구토가 올라오고, 코앞에 있는 물컵도 들기 힘들 정도로 온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어지며 오한이 와서 벌벌 떨리거나 식은땀을 흘리기도 한다.


첫회는 그럭저럭 견딜만했다. 하지만 2회부터 어찌나 힘든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였다. 이전에도 수술과 항암으로 몸의 고통을 이겨내야 하는 시간이 많이 있었다. 그때는 내가 의지가 강해서 잘 이겨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게 아니었다. 견딜만했던 것이다.


그전까지는 '조금만 참아보자, 다시 일상이 찾아올 거야'라며 몸을 다독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항암에서는 몸의 고통이 견딜 수 있는 한계치를 넘어가자 마음속 깊은 곳에서 피어오르는 절망감과 공포를 어찌할 수가 없었다. 흰 종이에 먹물이 스며들 듯이 처음으로 나쁜 생각이 마음에 퍼져갔다. ‘4기라 어차피 완치 가능성이 낮은데 이 고생을 꼭 해야 하나. 항암약으로 암이 완전히 사멸되는 것도 아니라는데. 6번 하는 동안에도 이렇게 죽을 거 같은데, 남은 6번을 어떻게 또 하지.’


우연히 본 TV 프로그램 ‘알쓸인잡’에서 김영하 작가의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시련이 인간을 강하게 만든다고 하는데 대부분의 시련은 인간을 녹슬게 만듭니다. 시련으로 강해지는 사람은 정말 드물어요. 이런 경우는 많은 노력도 하겠지만, 운도 좋았다고 생각해요." 


시련은 인간의 의지를 강하게 만드는 줄 알고 살았다. 견딜만한 시련은 그럴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인간의 능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시련은 김영하 작가의 말대로 인간을 녹슬게 만든다. 정신을 병들게 만든다.


의지가 사라지니, 통증에 더 속수무책이 되어버렸다.


감사한 환경 속에 있다고 생각했다. 내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고, 나의 건강을 위해 기도해 주는 가족들과 친척들이 있고, 친정엄마가 건강하셔서 수시로 집에 오셔서 살림을 도와주시고 있다. 김영하 작가가 말하는 운이 이런 거라면 나는 운이 좋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운조차 없는 사람들은 계속되는 고통과 절망 속에 무슨 수로 강해질 수 있을까.  


당장 환우회 카페만 들여다 보아도 그런 사람들이 부지기수이다. 한 발짝 내딛기도 힘들 정도로 아프지만 돌봐줄 가족이 한 명도 없어 편의점 김밥과 컵라면으로 하루에 한 끼 만을 먹는 환우도 있고, 심지어 가족들과 한 공간에 있지만 누구 하나 관심이 없어 지인들에게 SOS를 쳐서 아사 직전에 겨우 살았다는 환우도 있다.


비록 병에 걸렸지만, 나의 환경에 감사하는 마음과 낫겠다는 의지로 부정적인 생각들을 외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작년 12월부터 시작된 항암의 고통과 후유증에 시달리기

시작하면서 그런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가장 큰 후유증은 화장실 문제였다. 대장암 중 직장암으로, 직장을 거의 잘라낸 터라, 변을 오래 담아두는 것 자체가 힘든 게 직장암 환자들의 가장 일반적인 고통이자 후유증이다. 수술 후 몇 달의 노력 끝에 간신히 배변습관을 잡았는데, 이번 항암약의 후유증이 변비와 설사였고, 항암 2차부터 화장실 지옥이 시작됐다.


이제 끝난 거 같은데 금방 또 화장실에 가고 싶은 게 주된 증상이다. 별 거 아닌 거 같지만 사람을 정말 미치게 만든다. 조금씩 조금씩 변을 보게 되어 하루에 거의 6시간을 화장실에서 보내게 되니, 아이들이 엄마를 찾아도 “엄마 화장실에 있어“만 반복해야 했다. 그렇게 반나절을 보내고 나면 너무 지치고  항문이 아파서 다른 어떤 일도 할 수가 없었다. 병원에서 준 마약성 진통제를 먹어도 그다지 효과가 없었다. 앉아서 밥을 먹을 수도 없고, 바로 누워 있는 것도 아파서 옆으로 돌아 누워 자야 할 정도였다. 화장실 가야 하는 신호가 오면 또 몇 시간을 시달려야 하나 싶어 식은땀이 났다.


이런 고통이 두 달을 넘어가니 정신이 저절로 피폐해졌다. 통증 속에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한테 아무리 자세하게 묘사한들 그 의미의 십 분의 일이라도 동감할 수 있을까. 너무 고통스러워 어린애처럼 엉엉 울고, 당장 죽을 수 있는 약이 있다면 그만 이 고통을 끝내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렇다고 정말 죽을 수는 없었다. 누가 말했나. 죽는 것마저 쉽지 않다고. 칠순 나이에 내 병간호를 하시느라 더 늙어버린 엄마와 이제 11살 7살이 된 아이들, 눈물 많은 남편을 위해서라도 살아야 한다.


파킨슨 병을 앓고 있는 김혜남 작가의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속 한 구절을 떠올렸다. "오로지 그저 버텨야만 하는 시간이 있다" 끊임없이 추락하는 정신을 간신히 붙들었다. 체력이 바닥이었지만 무리해서라도 운동량을 두배로 늘려보기로 했다. 화장실 때문에 자꾸 운동시간이 줄어들고 있던 차였다. 변이 나온다면 그냥 싼다는 각오로 팬티형 생리대를 차고 산에 올랐다. 섬유질 섭취도 두배로 늘렸다. 그렇게 하니 변비는 사라진 대신 설사가 심해졌지만 지사제를 복용하면서도 계속했다.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운동과 음식섭취, 화장실 가는 시간의 적절한 루틴을 만들어 갔다.


통증 속에 절망감과 우울함이 올라올 때마다 지금은 일단 버티기만 해 보자고 되뇌었다. 조금의 긍정적인 변화만 보여도 그 기쁨을 붙잡고 분명 좋아질 거라는 생각에 집중하려고 애썼다. 어느 순간, 드디어 장이 정상적인 흐름을 되찾기 시작했고, 화장실에서 있는 시간이 눈에 띄게 줄게 되었다. 그토록 간절히 원하던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도 정상적인 장은 아니기에 화장실에서 있는 시간이 보통 사람보다 훨씬 길고, 조금만 루틴이 깨져도 금방 문제가 발생한다. 하루를 온전히 장운동을 위해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일상이지만, 화장실 지옥에서 벗어난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다. 아프게 된 이후 삶을 이전과는 완전히 다르게 받아들이게 되었지만, 이번 시간을 계기로 더더욱 일상이 절박할 만큼 소중해졌다. 아침에 블라인드를 올리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 아이들 가방을 챙겨주는 것, 하늘을 올려다보며 산책을 하는 것, 첫째의 피아노 연습을 들어주는 것, 둘째의 투정을 받아주는 것… 하루에 감사한 순간들을 백가지는 넘게 적을 수 있을 것만 같은 나날이다. 남은 항암도 어느 정도는 이겨낼 수 있을 거 같은 자신도 좀 붙었다.



주방에서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7살 난 아들은 장난감을 가지고 거실에서 잘 놀고 있다. 라디오에서 좋아하는 노래가 나온다. 혁오가 리메이크한 이문세의 ‘소녀’이다. 흥얼흥얼 따라 부르다가 순간 눈물이 맺혔다. ‘이렇게 콧노래를 부르는 날이 오는구나 ‘ 싶어서였다. 세상에 나 혼자 고통 속에 있는 거 같은 날도 있지만 또 이렇게 병을 잊고 삶을 누릴 수 있는 날도 있다. 또 어떤 고난이 오더라도, 이 순간을 떠올리자고 마음 먹으며 눈물을 훔쳤다.


아들이 나를 부른다. “어, 엄마 지금 가!”


-사진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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