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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뮤 Dec 23. 2023

연이은 극강의 추위에서 살아남는 법, 발라클라바

귀여움 지수 상승은  덤




이십 대 초반 어느 겨울날이었다. 요즘 같은 강력한 한파에 온몸을 떨며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다. 45도 각도로 앞에 서있는 젊은 남자가 좀 이상타 싶다. 만삭 임산부도 아니고 배가 왜 이렇게 나왔지? 검정 패딩을 입은 남자의 실루엣이 과한 D라인이다. 뭔가 싶은 시선으로 위아래를 훑다가 흠칫 놀랬다. 다리가 넷이다. 남자의 패딩 안에 여자가 있었던 것! 얼마나 작고 아담하면 남자의 품 안에 쏙 들어가고 패딩 지퍼까지 올릴 수 있는 건가.


키가 167인 내가 저럴 수 있으려면 남자가 190은 되어야할 거 같다. 아, 난 어깨가 넓어서 아예 안 되겠구나. 아참, 나 애인이 없지. 문득 칼바람이 더욱 깊게 목덜미를 후벼 파는 것 같다. 코트에 달린 후드 모자를 깊게 덮어 써본다. 그래도 뼈에 스며드는 한기에 몸서리를 치며 코트깃을 꽉 여며본다. 춥다 추워. 버스는 대체 언제 오는 건가. 괜히 도로 끝을 이글거리는 눈으로 노려봤다.


누구의 품에라도 뛰어들고 싶은 강추위가 계속되고 있다. 20대 초반의 필자처럼, 마땅히 뛰어들만한 가슴 넓은 애인이 없다면 발라클라바로 대신하기를 권한다. 혹시 발라클라바를 모르는 분이 있을까 싶어 설명하자면 머리와 귀, 목까지 완전히 덮은 생김새로, 뒤집어썼을 때 얼굴만 빼꼼히 나오게 하는 니트 모자이다. 잠수복에서 머리만 잘라낸 것 같은 그것 말이다.


작년 겨울에 혜성같이 등장한 발라클라바를 봤을 때는, 사람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이 아이템은 뭔가 싶었다. 인상이라도 사납다면 복면강도로 오해받기 딱 좋겠다. 따뜻할지는 몰라도, 나의 보잘것없는 이목구비에 뭇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싶지 않았다.


@for_everyoung10


그런데 이런 거부감을 한순간에 바꾼 건 장원영의 사진 한 장 때문이었다. 뒤로 살짝 넘겨 써서 헤어밴드를 한 것처럼 연출했는데 곱실거리는 앞머리를 몇 가닥 빼고, 웨이브진 긴 머리를 길게 늘여주니 신비로우면서도 걸리시한 그녀의 매력이 배가 되었다.


내 마음속에는 소녀에 대한 방이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찔하게 아름답고 매력적인 존재는 소녀라는 환상이랄까 로망 같은게 있는데, 이것이야 말로 사랑스러운 소녀로 변신시켜 줄 만한 잇템이었다. 마치 빨간 망토의 소녀 같은! 실제로 망토를 두르고 다닐 수는 없으니 대신 발라클라바로 머리를 감싸면 보온성과 함께 귀염성 지수가 상승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지 않은가. 올해는 더 다양한 디자인의 발라클라바가 많이 나와서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발라클라바를 처음으로 시도하는데 약간의 두려움이 있다면 스타일링하기 좋은 그레이, 베이지 등 차분한 컬러부터 시작하는 게 좋겠다. 블랙도 안전한 선택인데, 자칫 은행 강도처럼 보일 수 있으니 스타일링할 때 신경 쓰도록 한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는, 발라클라바를 무난한 느낌으로 착용하기보다는 쨍한 원색으로 존재감을 높이는데 활용하면 더 좋지 않을까 한다. 오렌지, 레드 같은 원색의 바라클라바를 쓰면 어두컴컴하고 밋밋한 겨울룩에 활기를 불어넣어 준다. 꽃무늬나 노르딕 패턴이 들어간 바라클라바는 따뜻하면서도 시크한 스타일링을 완성하는데 일조한다. 가격이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큼직한 진주와 반짝이는 큐빅으로 장식된, 연말 파티에 하고 가도 손색없을 만큼 화려한 발라클라바도 있다.

@nayoungkeem


그런데 느닷없이 등장한 발라클라바의 기원은 어떻게 될까. 1854년 크림반도 발라클라바 지역에서 벌어진 러시아와 영국의 크림전쟁에서 영국군이 추위를 견디기 위해 얼굴을 덮는 니트 모자를 만든 것에서 시작되었다.  바람 한 점 허용하지 않을 것 같은 외관대로 실제로 방한효과가 뛰어나서 혹한기 훈련 중인 군인, 겨울 아웃도어 스포츠에 꾸준히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사용할 발라클라바는 군인용처럼 타이트하게 조이는 것보다는 살짝 느슨한 디자인이 부담이 덜하다. 또 디자인만큼 중요한 게 소재인데, 얼굴에 바로 닿기 때문에 털이 마구 빠지는 앙고라 소재는 자칫 눈과 코가 괴로울 수 있으니 피해야 한다. 가볍고 피부에 무리를 주지 않는 부드러운 울 소재가 좋다.


@iammingki


그럼에도 복면처럼 보이는 게 부담스럽다면 머리카락을 활용하는 팁을 드리겠다. 장원영처럼 앞머리를 빼거나, 앞머리가 없다면 대신 옆머리나 잔머리를 조금 빼주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긴 머리를 가지고 있다면 자연스러운 웨이브를 주고 옆으로 길게 늘어뜨려 줘보자. 러블리한 무드에 흡족해질 것이다.


오직 써본 사람만이 그 위력을 알 수 있는 발라클라바, 계속되는 냉동고 추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한번 시도해 보자. 길을 걷다가 꽉 끌어안고 있는 커플을 보면 이제 후드 대신 발라클라바를 더욱 깊게 눌러써본다. 그리고는 마치 단단히 무장한 사랑스러운 소녀가 된 것처럼 총총 걷는다.


아주 더운 나라에 가있는 전남친을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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