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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뮤 Jan 26. 2023

대화의 희열

지난번에 올렸던 <절대 격려해 주지 않는 이유> 중, 모 개인병원에서 시술받았던 경험이 특별해서 다시 풀어내겠다던 그 얘기이다.



의사는 마흔을 갓 넘은 듯 보였다. 책상 위에는 방긋 웃고 있는 돌쟁이 사진이 놓여 있었다. '한창 예쁠 때네' 속으로 생각하면서 의자에 앉았다. 의사는 내 오른쪽 쇄골 주변을 만져보며 "음, 살이 좀 없네요. " 하면서 중얼거리더니 모니터에 타닥타닥 키보드를 두드리며 무언가를 기입했다.


환자가 되니, 가족 다음으로 많이 만나는 사람이 의사가 되었다. 살면서 이렇게 의사를 자주 만나게 될 줄이야. 이 의사는 또 어떤 분일까, 시술은 힘들지 않을까. 몇 가지 생각이 오가는 채로, 의사가 컴퓨터에 기입하는 작업이 끝날 때까지 잠자코 앉아 있었다.


전에 설명했듯이, 폴피리라는 항암을 받기 위해서는 항암 시작 전에 케모포트라는 걸 오른쪽 쇄골 아래에 심어야 한다. 항암제에 독성이 있기 때문에 팔의 혈관이 버티질 못하고 녹아버려서 굵은 중심정맥으로 약을 주입해야 하는데 이때 케모포트라는 장치가 필요하고, 균이 들어갈 수 없도록 피부 속에 삽입해 놓아야 한다. 이 케모포트를 심는 수술을 모 개인병원에서 받는 날이었다. 컴퓨터 작업이 끝나자, 의사는 시술 절차를 간단히 설명하고는 피부 절개한 부분은 본드로 붙이기 때문에 샤워가 가능하다고 했다. "제가 샤워해도 된다고 몇 번이나 말씀드려도 꼭 시술 끝나면 샤워해도 되냐고 묻는 분들이 있어요. 집으로 돌아가서 수술한 부분에 물이 들어갈까 봐 안 하시는 분도 많고요. 그런데 샤워는 매일 하셔야 합니다."


케모포트 주사구멍으로 감염이 돼서 염증이 생기면, 항암주사를 중단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세균이 들어가지 않도록 잘 씻어야 한다고 했다. 알겠다고 머리를 끄덕였는데도 불구하고, 의사는 샤워를 해야 한다는 얘기를 한참을 계속했다. '이 얘기를 뭐 이렇게까지 강조하지? 내가 샤워 안 하게 생겼나?' 감염이 되지 않도록 케모포트를 피부 밑에 심어 버리는 것이고, 주사구멍이야 항암주사를 빼고 나면 금방 막히기 때문에 더러운 손으로 주사구멍 주변을 자꾸 만지지 않는다면 그리 쉽사리 감염되지는 않을 거 같은데, 의사는 샤워를 매일 해야 한다며 열변을 토했다. "이렇게까지 얘기했는데도 샤워 안 하면 머리에 문제가 있는 거예요." 의사는 이제 화까지 난 듯했다. 샤워 안 한 사람들 때문에 무슨 일이 있었나. 참다못한 나는 말했다. “ 알겠습니다. 매일 샤워할게요!"


의사는 그제야 샤워 얘기를 마치고 그럼 수술장에서 보자고 했다.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나니 간호사가 어떤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 다시 한번 주의 사항을 알려준다고 했다. 주의사항이라는 게 알고 보니 항암주사기를 몸에 단 채 머리를 감는 방법이었다. 항암이 시작되면 병원에서 4시간 동안 항암주사를 맞고도, 또 주사기를 케모포트에 연결한 채 집으로 돌아와 3일을 더 지내야 하는데, 주사연결 부위에 물이 들어가지 않고 머리를 감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다.


 "젖은 머리를 들지 말고, 수건으로 감싼 다음 머리를 이렇게 해서 들고…" 간호사의 설명을 들으며 의문이 들었다. '아니, 이렇게 해서까지 머리를 감아야 하나?' 주사기를 달고 있는 동안은 약 기운 때문에 너무나 힘들다는데, 굳이 머리까지 감아야 하나. 난 원래 이틀에 한번 샴푸 하고, 몸이 안 좋을 때는 그마저도 깨끗하게 단념하는데, 굳이 항암기간에 주사구멍의 감염을 우려하면서 머리를 꼭 감아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이렇게까지 꼭 매일 씻어야 하는 거예요?" 내가 묻자 간호사는 당황한 듯 잠시  멈칫하더니 "의사 선생님이 암환자는 청결이 중요하다고 하셔서..."라며 말끝을 흐렸다.




샤워에 대한 정신교육을 다시 받은 후 드디어 수술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개인병원이었는데도, 이전 대형병원의 수술실과 비슷한 분위기였다. 이번에는 수술 아닌 시술이지만, 그래도 긴장이 된다. 기구를 삽입할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 놓고 누우니, 그 부분만 구멍이 뚫린 천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신이 덮였다. 시야가 제한되니, 귀가 한껏 예민해졌다. "이제 마취 들어갈 거고요. 고개는 돌린 그 자세 그대로 유지하셔야지, 절대로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의사가 옆에서 달그락달그락 준비하는 소리가 들렸다. 차라리 전신마취였으면 나았을 걸 그랬다. 부분마취이니 정신이 또렷한 상태로 두려움이 배가 되었다. 나에게는 강박증이 하나 있는데, 목 주변에 날카로운 물건이 가까이 있는 걸 못 견뎌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영화나 드라마에서 칼, 가위 등의 날 부분이 사람의 목 주변에 근접해 가는 장면이 나오면 전혀 볼 수 없다. 마치, 내 목에 칼이 겨눠진 것처럼 식은땀이 나면서 온몸이 오그라들고 목이 근질근질해 두 손으로 감싸게 된다  


그런데 케모포트 심는 위치가 쇄골 가까이, 목주변이니 죽을 맛이었다. 마취가 되었지만 통증이 없을 뿐이지 그쪽 부분을 계속 건드리는 동작이 하나하나 느껴졌다. ‘아. 이렇게 어떻게 삼십 분을 견디지’ 이건 마치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한테 빌딩 옥상 위 난간에서 걸어보라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때였다.


“따라라라 랄라라~" 내 귀에서 울려 퍼지는 비발디의 사계 멜로디. "응? 뭐지" 멜로디를 부르는 주인공은 의사였다. 보이지 않았지만 그가 부른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콧노래도 아니고 위에 적은 그대로 "따라라라 랄라라" 이렇게 입으로 멜로디를 불렀다.


아,

이 분…


또라이구나.


어쩐지 아까 샤워를 지나치게 강조할 때부터 범상치 않다 싶었다. 또라이의 사전적 의미는 ‘생각이 모자라고 행동이 어리석은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한테 또라이는 다른 의미로 해석된다. ‘세상의 규율에서 살짝 벗어났지만 창조적이고 재미있는 생각과 행동을 하는 사람을 친근하게 부르는 말’이 나에게 있어 또라이의 정의이다. 아직 제대로 진상인 또라이를 못 만나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옛날부터 똘끼 있는 사람이 좋았다. 그들의 예상치 못한 행동과 말들, 창의성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내가 세상 고지식한 바른생활 여자라서, 반대편에 있는 그들이 재미있게 보인다.  대학시절 내 주변은 똘끼 있는 친구들로 가득했다.(여기서 선생님을 똘끼 있다고 표현하는 것도 순수한 친근감의 표현이지 낮춰 부르려는 의도가 아님을 독자 여러분께 알려드린다)


의사 선생님의 똘끼가 감지되자 호감도가 급상승, 갑자기 마음이 편안해져 말문을 열었다. "선생님 제가 목주변이 원래 예민해서 지금 너무 힘들어요." "어? 그래요? " 대부분의 환자들이 마취 때문에 아무것도 못 느끼고 코를 골며 잠이 들 정도인데 나 같은 경우는 처음 봤다고 했다. 나의 괴로움에 동조해주지 않았지만 대꾸해 주는 어톤이 친근하게 느껴졌다.


”제가 원래 잘 참는 사람인데, 하필 유일하게 예민한 부분이 목 분이라서 그래요." 그의 태도에 힘입어 나는 재차 고통을 호소했다. 아픈 것도 그 자체가 힘든 노릇이지만, 감정적 정신적으로 극도의 공포를 계속 느끼는 경험도 처음이고 , 예상치 못한 고역이었다. “공포를 생각하지 않으면 될 것을 왜 그렇게 느끼면서 힘들어해요." 역시 위로보다는 핀잔 섞인 응대이지만 꾸짖는 건 아니다. "느껴지는 걸 어떻게 안 느낄 수가 있겠어요." 의사와 나는 한동안 "생각지 말아라", "그게 안 된다"며 옥신각신 설전을 벌였고 그러느라 공포를 덜 수 있었다. 가능하다면 이렇게 해서라도 이 30분을 견뎌내고 싶었다.


“선생님 그런데 이거 나중에 뺄 때는 지금보다 시간이 덜 걸리겠죠?" "그렇죠. 15분 이면 끝날 거예요. 그런데 케모포트를 빼게 될지 안 될지 모르는 거지. 계속 달고 있어야 할 수도 있는 거고." 나는 발끈했다. 계속 달 수 있다니, 그럼 암이 계속 나타나서 끝없이 항암을 할 수도 있다는 건가. "그런 소리는 하지도 마세요." 나의 단호한 외침에 의사는 "아 그러네요. 실수했어요."라며 재빨리 배려가 부족했음을 인정했다.


대화의 주제는 병원의 시스템으로 넘어갔다. 지난번 <절대 격려해 주지 않는 편>에 잠깐 소개했듯이, 의사는 대형병원에서 대장암 전문의로 근무했었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대형병원을 나와 개원한 이유는 묻지는 않았으나(어쩐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기도 하고), 그런 경력이 있어 나의 치료 경험과 마음의 상처 등을 이해해 주었다. 한참을 대형병원의 시스템과 의사의 한계, 책임 등에 대해 얘기했다. "의사는 환자에 동감해 주기 시작하면 일 그만두어야 해요." 치료라는 목적의 한배를 탔지만, 의사와 환자의 입장은 완전히 다름을, 그의 설명 덕분에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병원 다니면서 선생님들한테 서운한 것도 많았지만, 대단하다는 생각도 했어요. 그 어려운 수술, 공부를 어떻게 할 수 있죠?" 진심이었다. 7시간이고 10시간이고 꼬박 한자리에 서서 사람의 장기 한 부분을 들여다보며 수술하는 것은, 그저 돈 벌기 위해서 하는 일이라면 못할 노릇일 거 같다. 사람의 생명을 내 손으로 살린다는 숭고한 직업의식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일 것이다. 무엇보다 그 어려운 공부를 어떻게 하는지, 그것부터가 경이롭다. 하지만 경쾌한 목소리로 예상치 못한 답을 주었다.


“아무나 할 수 있어요. 쉬워요.”

(아, 예...)


"그런데 정신과 의사는 아무나 못할 거 같아. 너무 힘들어서." 그에게는 그쪽이 힘든 부분인가 보다.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나누면서 드디어 30분의 시간이 지나갔다. 수술이 끝나면 고맙다고 예의 바르게 인사하고 싶었는데, 천이 덮여 있는 그대로 의사가 수술실을 떠나는 분위기였다. "이젠 끝났고요. 조심히 돌아가세용." 돌아가세‘용’이라니 역시 재밌는 분이다. 나는 흰 천 안에 갇힌 채 서둘러 인사를 전했다. "감사합니다!“




병원을 나서면서 오랜만에 후련한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 수많은 진료와 치료 때 느껴보지 못한 독특한 경험이었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환자의 얘기를 무심한 태도로 듣고 단답형으로 대답했다. 좀 더 물으면 설명하기 귀찮아하는 표정이 역력해지고 말을 끊는 건 예사였다. 하지만 그 의사는 자상한 태도는 아니었어도, 나의 말에 귀 기울이고 그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캐주얼하고도 편안하게 풀어냈다.


의사 덕분에 30분이 후딱 지나갔다고는 할 수 없다. 일분일분이 공포를 이겨내려는 인고의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훨씬 견딜만했다고 할 수 있다. 만일, 무뚝뚝하고 자기 할 일만 하는 의사였다면, 그 시간은 끔찍했던 시간 중 하나로 머릿속에 자리 잡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의사의 응대가 괜찮아서 그냥 기분이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그 이상의 감정, 뭐랄까. ‘대화의 희열'이란 게 이런 것일까. 그간 의사에 대해 쌓인 감정의 앙금을 털어낸 듯한 시원함, 상처받았던 것이 조금은 치유받은 듯한 만족감, 몰랐던 것을 알게 된 기분 좋은 깨달음이 어우러져 마음이 충만해졌다. 그저 빨리 처리되어야 할 한 명의 환자가 아닌, 생각과 느낌을 주고받을 수 있는 대화의 상대가 되고, 그런 대화 상대를 만난 기분이 들었다.


무엇보다, 흰 천으로 뒤덮인 채 누군가와 대화하는 것 자체가 특별한 경험이지 않은가.


- 병원에서 준 주의사항 프린트물. 뒷면을 보니 또 강조 되어 있다 “샤워는 매일 하셔야 합니다.”


아. 그런데 선생님. 그렇게 강조하셨는데도 죄송하지만 샤워는 매일 하지 못했습니다. 항암주사 맞는 동안 너무 힘들어서 못하겠더라고요. 머리도 못 감구요. 또 날이 너무 춥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선생님의 열변 탓인지 이전보다 자주 샤워합니다. 케모포트 뺄 때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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