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을 마치고 산길을 내려가던 중이었다. 저 아래서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너무 힘들다.”
“이렇게 힘들어야 살이 빠져.”
거센 숨소리와 함께 올라오는 두 사람.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젊은 남녀이다. 남자는 정말 살을 빼야 할 듯하다. 하지만 몇 발자국 뒤에서 올라오는 여자는 깡마른 체구. 살을 빼기 위해 고행 중이라면 남자만 해도 될 듯한데. 그런데 두 사람 다 너무 힘들어 보인다. 겨우 10분 정도 올라왔을 지점인데.
남자가 나를 스쳐 지나가고 뒤이어 따라오던 여자가 하는 말.
“사장님, 애기봉까지 많이 남았나요?”
사장님이라는 호칭에 내 뒤에 누가 있나 뒤돌아보았다. 아무도 없는 걸 보니 나에게 묻는 질문이 맞는 거 같았다.
“거의 다 왔어요. 조금만 더 올라가면 돼요. “
여자가 고맙다는 듯이 고개를 숙여 정중하게 인사했다. 그리고는 앞서가던 남자를 얼른 따라붙어 이 희망의 소식을 전한다.
“조금만 가면 된대.”
두 사람의 옆모습에 희미한 미소가 번지는 것 같아 주춤했다. ‘음, 정확히 말하면 20분 남은 거리인데.’ 나한테만 거의 다 온 거리인지도 모른다. 10분 등산도 저렇게 힘들 정도이면 20분 더 걷는 것은 저이들에게 너무 무리가 아닌가 싶기도 했다. 다 왔다더니 어떻게 된 거야, 멀리서 투덜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마저 산길을 내려가며 ‘사장님’이라는 호칭에 대해 곱씹었다. 어디 식당도 아니고 산중에서 난생처음 사장님이라는 소리를 들으니 순간 어리둥절, 당황스러웠다. 아마도 '아줌마'라는 호칭을 대신하여 사장님으로 부른 것 같다. 모자와 선글라스로 얼굴의 반이상을 가려도 나이는 보이나 보다. 사실 나이를 생각하면 그들에게 사장님 연배가 맞긴 하다. 어머님이라고 안 부른 걸 고마워해야 할지도. 그런데 사는 동안 단 1분도 사장 노릇은 안 해봐서인지 그 호칭이 영 어색하다.
처음으로 ‘아줌마’라고 불렸을 때가 생각났다. 길을 가는데 어떤 할아버지가 큰 소리로 “아줌마! 여기 00 학교가 어딨어요?”라고 물었다. 학교보다는 아줌마라는 단어가 확대돼서 들렸다. 나는 꽤 친절한 사람이지만 당장의 불쾌한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저쪽이라며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나의 불만을 내비쳤다.
애가 둘이고 마흔 줄이 넘었는데도 아줌마라고 불린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나 스스로 아줌마라고 하는 것과 남이 아줌마라고 부르는 것은 다르다. 아줌마가 내포한 부정적인 이미지들 때문일 것이다. 나이 들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자기 관리도 없는, 마냥 편하기만 한 고무줄 바지 같은 이미지. 사실 이 호칭이 얼마나 예민한 문제인지, 작년에 죽전에서 발생한 칼부림 사건은 30대 여성이 자신을 아줌마라고 불렸다는 이유에서 발생했다. 단어 자체도 그렇고, 부를 때 상황이나 말투가 빈정을 상하게 하는 요소 같다.
어떤 설문조사에 의하면 30~60대 여성에게 '아줌마'라는 호칭이 기분 나쁜지에 대한 질문에 전 연령대에서 기분 나쁘다는 반응이었다. 이유로는 "나는 아줌마가 아니라고 생각하므로"가 가장 높았다고 한다.
문득 아줌마의 정확한 정의는 무얼까 궁금해져서 사전을 찾아봤다. 국립국어원은 아줌마를 '결혼한 여자를 예사롭게 이르거나 부르는 말'로 정의했는데 달라진 사회 분위기를 반영해 ‘나이 든 여자를 예사롭게 이르거나 부르는 말’이라고 개방형 사전에서 수정반영했다고 한다.
사전적 정의와 달리 사회통념상이라고 해야 할까, 보통은 결혼하거나 아이가 있는 여성을 ‘아줌마’로 부른다. 그러나 요즘은 30~40대 미혼 여성, 결혼해도 아이를 갖지 않는 여성이 늘다 보니 외모만 보고 아줌마라고 불렀다가는 매너 없고 무례한 사람으로 여겨질 수 있다.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 아저씨, 아줌마가 정감 있고 부르기 쉽다는 얘기는 통하지 않게 된 듯하다. 이러한 인식을 반영해, 산에서 만난 청년이 그랬던 것처럼, 사장님 또는 선생님, 이모님 같은 호칭들이 대신하기도 하지만 이조차도 사람마다 상황마다 적절히 판단해서 불러야 할 것 같다.
사장님도 싫다, 아줌마도 싫다, 그렇다면 대체 듣고 싶은 호칭이 뭐야,라고 누가 묻는다면,
글쎄요, 정말 뭐가 좋을까요.
아줌마 대신 중년여성을 호칭할 수 있는 단어가 나왔으면 좋겠지만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으니 그나마 “저기요~”가 낫겠네요. 아니면 아예 호칭을 생략하는 것도 방법일지도요.
*사진출처 - 구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