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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뮤 Jun 12. 2024

항암 후 얻은 선물, 건망증   


나는 원체 자주 까먹는 사람이자 잃어버리는 사람이다. 기억해야 할 것들을 부지기수로 까먹는가 하면, 물건도 여기저기 잘 흘리고 다녔다. 챙긴다 챙긴다 하면서도 아차 하는 순간에 소지품을  놓고 홀연히 자리를 떠나기 일쑤이며 꼭 30분 정도 뒤에 그 물건의 행방이 생각나곤 했다. 그런 것들은 작고 소소하지만 꽤 중요한 것들이다. 이를테면, 중요한 메모나 영수증을 끼어놓은 다이어리, 즐겨 쓰는 화장품이 가득 든 파우치, 선물 받은 책 같은 것들.


"너는 안 그럴 거 같은 애가 자꾸 그런다."

꼼꼼할 거 같은데 의외로 허당인 나를 두고 부모님은 혀를 끌끌 차셨다. 학창 시절, 끝없이 외워야 하는 영어단어나 한자들을 암기하고 기억해 내는데 별다른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평소에는 국영수 중심으로 공부하느라 미처 외우지 못하는 암기 과목들도 시험기간에는 몇 시간 만에 수십 페이지를 달달 외울 수 있었다. 누구한테 전해 들은 이야기, 특별했던 상황, 인상적으로 다가온 어떤 사람의 아주 작은 부분, 그런 것은 세세한 것까지 오래오래 기억할 수 있었고 지금도 그러한데, 이런 장점들은 가족과 지인들에게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잘 흘리고 다니는 인간은 필연적으로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살아간다. 소싯적부터 내 남자 친구들은 내가 흘리고 다닌 것들을 같이 찾으러 다니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특히 지갑을 잃어버린 날은 단거리, 장거리 달리기는 예고된 수순.  연애 초반에는 나보다 더 열심히 찾아다녔던 애인도 횟수가 거듭되면 서서히 표정이 달라져갔다. ‘또야?’라는 원망 섞인 눈길을 받고 싶지 않은 날은 집에 간다면서 홀로 잃어버린 물건을 찾으러 나서곤 했다. 꼼꼼함은 내게 결여된 기질인 듯했다.


그렇게 칠칠치 못한 나도 남의 물건을 잃어버리지는 않았다. 누군가의 물건을 맡아주거나, 대신 처리해줘야 하는 경우에는 한 번도 잃어버린 적이 없으니 어쩌면 이건 기질이 아니라 긴장의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딱 한 번, 남의 물건을 잃어버릴 뻔한 적이 있었는데, 바로 회사 카메라였다.


입사한 지 일주일 정도 지난 때였고, 그날은 퇴근 후 나의 환영회 자리가 있는 날이었다. 다음날 아침 현장으로 바로 가야 해서 회사 카메라를 술자리에 가지고 갔다. 커다란 렌즈가 달린 고가의 카메라였다. 취재도 있고, 중요한 물건도 지니고 있으니 취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는데  주인공이라고 여기저기서 건네주는 술잔을 사양치 않은 게 화근이었다.


그날밤 내가 늦도록 돌아오지 않자 동생들은 걱정되는 마음에 동네를 나섰다. 워낙 착한 동생들이지만 다 큰 누이의 귀가가 늦다고 길을 나설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날따라 동생들은 나를 찾아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가족끼리는 갑자기 흐르는 고압전류처럼 본능적인 위기감지능력이 장착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저 여자 누나 아니야?”

 지나가다 흘낏 본 동네 파출소에 내가 있는 걸 막내가 보았다. 웬일인가 싶은 동생들이 서둘러 가보니 풀린 눈으로 카메라를 잃어버렸다며 당직 직원에게 읍소하고 있던 중이었다. 만취했기에 아마 횡설수설 중이었을 것이다. 사태를 파악한 동생들이 양팔로 나를 부축하며 반강제로 파출소에서 끌고 나왔다. 동생들에게 끌려가면서도 나는 계속 카메라를 외쳤다고 한다.


다음날 새벽, 깨질 것 같은 머리를 감싸 쥔 채 겨우 일어났다. 바로 머리를 스치는 생각, 카메라! 카메라 어딨지? 놀란 눈으로 방을 훑었으나 보이지 않았다. 허무하고 참혹했다. 첫 임무부터 이 무슨 망신인가. 그대로 집밖으로 튀어나가려는 나를 동생이 붙잡았다.

“우리가 찾았어. 버스 종점에 두고 내렸더라."


다행히 그날의 취재는 일정변경 없이 잘 진행이 되었고, 카메라도 온전히 회사에 반납할 수 있었다. 한동안 동생들은 그날의 나를 안주거리 삼아 모이기만 하면 놀려대곤 했는데 동생들이 묘사하는 내 모습이 나도 웃겨서 같이 웃었다. 회사에서 큰 창피를 당할 뻔한 거에 비하면 큰 누나로서의 체면이 무너진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연명해 오며 살던 자주 잃어버리는 자는 결혼 후 인생 최대의 고비를 맞게 되었다. 더 이상 도와줄 사람도 없을뿐더러, 오히려 내가 오만가지를 챙겨야 할 생명체가 둘이나 생긴 것이다. 생명체 하나당 챙겨야 할 것들이 수십 가지였고 이러다가는 큰 실수를 할 거 같은 두려움이 엄습했다.


깜빡하는 사이에 아이를 잃어버렸다든지, 엄청 중요한 일정을 완전히 잊는다든지 하는 것들. 그때부터 본격적인 메모하는 삶이 시작됐다. 벽에 화이트보드를 붙여놓고 기억해야 할 리스트를 꼼꼼히 적어놓았다. 수첩과 핸드폰 메모장도 적극 활용했다. 처리해야 할 일들은 되도록 빨리 처리해서 머릿 속을 최대한 단순하게 만드는데 집중했다.


그리고 철칙 하나를 만들었다. “떠나기 전에 돌아보라.” 분명 다 챙겼다 생각해도 떠나기 전에 다시 한번 있던 자리를 보는 건데 꽤 높은 확률로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일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그렇게 해서 오랫동안 중요한 무언가를 잊거나, 잃어버리는 일 없이 비교적 잘 지내왔다. 하지만 중년에 이르러 또 다른 변수를 맞게 되었다.


케모브레인(chemobrain), 항암치료 후 흔히 나타나는 인지적 기능의 저하 증상이다. 항암치료 후 결정을 담당하는 뇌의 특정 부위에 에너지 사용이 현저하게 줄어들어 뇌 기능의 변화를 가져옴으로써 정신이 멍해지고 생활기능이 저하되는 증상을 가리킨다(네이버 지식백과). 한마디로 깜빡깜빡하는 증상이 인력으로 어쩌지 못할 정도가 된다는 뜻이다. 영화 속 복잡한 수술을 받은 주인공이 어느 하나의 뛰어난 기능을 얻는 대신 무언가를 잃는 스토리가 연상되는데 나 같은 경우는 머리가 나빠진 케이스가 되겠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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