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서 충격적이면서도 잊을 수 없는 장면이 있다. 바로, 부검 장면이다.
입사한 지 한 달쯤 되었을 때였다. 사수는 꼭 봐야 할 게 있다며 나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이하 국과수)로 데려갔다.
“뭘 보러 가는 거예요?”
“부검. 우리 회사 기자라면 통과의례야.”
그는 내 깡을 시험하겠다는 듯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볼 수 있겠지?”
나는 미세하게 흔들리는 내 동공을 느끼면서도, 태연한 척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아주 화창한 가을날이었다.
(20년 전 일로 우리가 수사기관 전용 책자를 만들었기 때문에 참관이 가능했다. 지금은 외부인의 출입이 엄격히 제한된다.)
지금의 국과수는 최신 시설을 갖췄지만, 그때만 해도 어디 소도시의 오래된 구민회관 같은 분위기였다. 부검실 역시 작고 단촐했다.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마치 세상의 모든 냉장고 문을 한꺼번에 열어젖힌 듯한 냉기가 몸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곧, 냄새가 몰려왔다. 초등학교 실험실을 떠올리게 하는, 비릿하고 싸한 냄새를 열 배쯤 농축한 듯한 공기에 속이 울렁거렸다. 그러나 내색할 순 없었다. 나는 부검을 백 번쯤 본 것 같은 얼굴로 부검대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선배를 따라 들어간 부검실에서 나는 그날 처음, 사람이 아닌 사람을 보았다. 스테인리스 부검대 위에 중년 남성과 여성의 시신이 있었고, 다행히 어린이는 없었다. 나는 부검대에서 두어 미터쯤 떨어진 곳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최대한 움직이지 않으려 애썼다. 나와는 달리 선배는 부검대에 가까이 다가가 시신을 이리저리 관찰했다. 부검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참관하는 거겠지만, 선배의 행동은 어딘가 과해 보였다. 후배 앞이라 일부러 저러는 건 아닐까, 속으로 생각했다.
우리의 복잡한 신경전과는 달리, 부검실 안은 숨조차 크게 쉴 수 없는 무게로 가득했다. 법의학자들은 마치 오래된 직조공처럼 손끝으로 조심스럽게, 그러나 단호하게 시신을 다뤘다. 중요한 부분이 나오면 옆에 대기하고 있던 법의사진기 전문가에게 촬영을 지시했고, 어떤 부분은 채취를 하기도 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숨 쉬고 웃고 울던 존재들이, 지금은 조용히 해체되고 있었다. 저들은 어떤 이유로 부검대에 오르게 되었을까. 여러 가능성이 점쳐 졌지만 어쨌든 삶의 마지막이 평탄하지 않았다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부검실이 어둑할 거라고 예상했던 건 순전히 영화를 많이 봤기 때문이었다. 부검실은 천장을 가득 채운 형광등과 수술등으로 완벽하게 밝았다. 시신을 자세히 살펴보려면 당연한 거였다. 그 환한 곳에서 나는 더욱 눈을 부릅뜨고 부검과정을 지켜 보았지만, 시신들은 더 이상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영혼이 떠나고, 시간이 멈춘 몸은 그저 까만 가발을 덮어쓴 얼룩덜룩한 붉은색 덩어리 같았다. 아니, 살아 있던 시간의 잔해들이라고 해야 할까. 삶이 사라진 뒤에도 몸은 무겁게 남아 있었고, 그 무게가 나를 눌렀다. ‘인간의 육체란 이렇게 덧없구나.' 기능을 잃은 장기들과 굳은 핏줄을 보며 순간, 나는 육체가 삶을 품는 하나의 그릇일 뿐이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그저 기능을 멈춘 껍데기. 그러면서도 어쩐지 인간은 저렇게 삶의 끝을 맞으면 안 될 거 같았다. 머릿 속에 이런저런 생각이 뒤엉키면서, 눈앞 풍경이 자꾸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고 그러는 사이 중년 남녀의 부검은 마무리 되었다.
부검실문을 나서자 세상은 믿기 어려울 만큼 빛으로 가득했다. 가을햇살은 금빛으로 쏟아졌고, 바람은 숨을 들이쉬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찡하게 만들었다. 나도 모르게 힘껏 숨을 들이마시고 끝까지 내쉬었다. 마치 폐에 남은 부검실의 공기를 끝까지 비워내려는 듯.
겨우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삶과 죽음이 이렇게까지 극명하게 갈릴 수 있다니. 삶과 죽음을 가르는 것은, 생각보다도 얇은 경계인 줄도 모른다. 그때 선배가 말했다.
"선짓국 먹으러 가자."
우리는 국과수 근처에 있는 작은 국밥집에 갔다. 선배는 “부검 후에는 선짓국이 제격이지.”라며 선짓국을 크게 떴다. 밥맛이라고는 하나도 없었지만, 깨작거리고 싶지 않았다. 나도 천연덕스럽게, 아무 일 없는 듯 국밥을 입에 넣었다. 우리는 어떤 보이지 않는 연기를 충실히 하고 있는지도 몰랐고, 나는 그 역할을 끝까지 해내고 싶었다.
한참을 먹다 문득 숟가락이 멈췄다. 지금 이 순간 내가 너무 살아 있다는 사실이 낯설었다. 방금 본 죽음의 잔해가 혀끝에 스친 것도 같았다. 그런데도 씹고, 삼킨다. 이것은 좀 무례한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먹었다. 국밥을 바라보며 다시 한 입 떴다. 죽음을 보고도 밥을 먹는 것. 그게 바로 삶이라는 걸 그날 알았다.
삶은 그렇게 죽음을 넘어간다. 한 그릇 국밥처럼. 덥고, 진하고, 무심하게.
그날 이후, 나는 삶의 마지막에 대한 기대치를 조금 낮추었다.
나의 사인이 외인사가 되는 일은 없기를.
차가운 과학수사대 조명 아래 벗겨진 채로 기록되는 일은 없기를.
일이 복잡해져 국과수 부검대에 눕는 일만큼은 없기를.
없기를, 부디 없기를.
그렇게 주문을 되뇌다 보니, 어느새 내가 바라는 임종의 풍경도 달라졌다. 처음에는, 따뜻한 집 안에서 가족들의 손을 잡고 눈을 감고 싶었다. 각자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에브리바디 굿바이.”
그런데 병을 앓고 나서는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이별은 때로, 혼자여야 덜 아픈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조용한 숲 한가운데, 연둣빛 풀밭 위에 누워 마지막 밤을 맞이하고 싶다. 머리 위로 쏟아지는 별빛을 바라보며, 숨을 고요히 거두는 상상. 그 순간, 세상의 소음도, 미련도 모두 잦아들 것이다.
삶의 끝도, 아주 보통의 하루처럼 오기를 바란다. 특별할 것도 없이, 극적일 것도 없이 누구의 손에도 맡겨지지 않은 죽음이면 좋겠다.
바람은 흔들리고, 별빛은 멀어지고. 그저 그렇게, 조용히.
삶이란 결국, 매일을 살아내는 일이고, 죽음은 그 모든 날의 마지막 문장일 뿐. 그 하루를 끝까지 품을 수 있다면, 죽음마저 괜찮을 것 같다.
*이왕이면 노래도 틀어놓고 싶은데요. 바로 이곡입니다.
그리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첨언하자면, 저는 아주 건강합니다.
https://youtu.be/ciBisqVQ6xc?si=llDnhzZChcTxgud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