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회
동생과 헬스장에 함께 간 날이었다. 몸을 천천히 풀고 있는데 트레드밀에서 달리고 있는 한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짧은 탑에 레깅스를 입고, 헤드셋을 쓴 채 달리기에 몰두하고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매끄럽게 다듬어진 몸. 누구라도 눈길을 뗄 수 없을 만큼 완성된 몸이었다. 그런데 어딘가 익숙하다. 저 곧은 등, 유난히 업된 엉덩이...‘어디서 봤더라.’ 여자가 고개를 살짝 돌리는 순간, 아하—그녀였다. 필라테스 선생님.
그녀가 운동하는 모습을 헬스장에서 보게 될 줄이야.
나는 동생에게 속삭였다.
“저분, 내가 다니던 필라테스 강사님이야.”
동생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무 예쁘다.”
그녀는 숨이 턱까지 차오르도록 달렸다. 이어서 상체 운동, 하체 운동, 다시 러닝. 고삐 풀린 말처럼 센터를 종횡무진하며 운동을 이어갔다.
운동을 마치고 점심을 먹으며 우리는 그녀 이야기를 나눴다.
“진짜 열심히 하시더라. 러닝, 근육 운동, 또 러닝…”
동생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까지 해야 선생님 같은 몸이 되는 거였어. 난 필라테스만 하면 되는 줄 알았잖아.”
“헬스가 비밀이었네.”
우리는 웃었다.
“선생님, 이 작은 동네에 있기엔 너무 완벽하시던데. 강남 센터로 진출해도 되겠다.”
선생님은 SNS에 종종 자신의 루틴을 올렸다. 이틀은 유산소, 사흘은 근력 운동. 글만 보면 별것 아닌 것 같았다. ‘이 정도만 해도 나처럼 될 수 있어요.’ 그런 뉘앙스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토록 혹독한 훈련이었단 말인가.
나는 1년 반 동안 거의 매일 필라테스를 했다. 엉덩이는 올라갔고, 허벅지는 단단해졌다. 그러나 겉으로는 티가 잘 나지 않았다. 나만 아는 변화여서 아쉬웠다. 나도 그녀처럼 ‘누가 봐도 운동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선생님의 몸은 발레리나처럼 가녀린 선이 아니었다. 오히려 여전사에 가까웠다. 단단하게 다져진 팔근육에 엉덩이는 완벽한 곡선을 이루었다. 온몸이 근육으로 빚어진 조각상 같았다. 필라테스를 한 달쯤 했을 때 나는 눈치챘다. 이 운동만으로는 저런 몸을 만들 수 없다는 걸.
필라테스를 하며 온몸의 근육을 쭉쭉 뻗을 때 시원한 만큼 고통도 따랐다. 즐기기보다 수업을 따라가기 바빴고 거울 속 내 엉성한 모습이 못마땅했다.
그런데 헬스는 달랐다. 거울 속 내 모습이 조금 달라 보이고 자세를 다잡을 때마다 운동이 즐겁다고 느꼈다. 즐거운 김에 몸의 변화도 이끌어내고 싶었다. 헬스장에서 강사님을 본 이후, 나는 더 열심히 쇠질을 했다. 그러나 한 달쯤 지나 알았다. 이 운동도 금방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웬만큼 해서는 선생님처럼 될 수 없다는 걸.
SNS에서 본 어느 영상이 내 마음 같았다. 한 여성이 데드리프트를 하며 이렇게 말했다.
“헬스를 1년 하면 눈에 띄는 변화가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1년이 지나도, 2년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현타가 세게 왔다. 하지만 그동안 한 게 아까워서 계속했다. 그리고 3년쯤 지나니까, 그제야 조금은 ‘운동하는 사람’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거창한 목표는 없다. 다만 부상 없이, 느리더라도 계속 성장하고 싶다는 마음뿐이다.”
그렇다. 힘들게 운동해도 눈에 띄게 달라지는 변화는 없다. 조급한 마음으로 매일 체중계에 오르고 거울로 점검하다 보면, 그녀 말처럼 어느 순간 현타가 올 것이다. ‘왜 그대로이지?’ 하지만 운동은 정직하다. 노력한 만큼 언젠가는 반드시 결과를 준다. (어쩌면 글쓰기보다 훨씬 빠르게 결과를 주는지도 모른다.)
3년쯤 지나 “이제야 조금 티가 난다”라고 말한 그 여성은 사실 이미 누가 봐도 운동하는 몸이었다. 세세한 근육이 온몸에 고르게 자리 잡고 있었다. 매일 똑같아 보이는 시간들이 쌓여 결국 빚어낸 결과였다.
우리는 SNS에서 극적인 ‘비포&애프터’만 본다. 그래서 운동을 조금 하면 금세 달라질 거라 착각한다. 그러나 실제 변화는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 의지가 겹겹이 쌓여야 오는 것이다. 바디프로필 촬영처럼, 삶 전체를 갈아 넣는 이벤트가 아니고서야, 하루 한 시간 운동으로는 외형의 변화가 크지 않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그리고 실망은 운동을 멈추게 한다. 운동도 삶을 살아내듯 묵묵히 나아가야 한다.
나는 그냥 믿기로 했다. 내 몸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자라고 있다고. 이제는 다른 누구의 몸을 부러워하기보다, 그저 한다. 때 되면 밥을 먹듯이, 정해진 시간이 되면 그냥 운동을 하는 것이다.
그냥 해버리면 좋은 게 ‘해야 되는데…’ 하면서 하지 않은 불안과 자기혐오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해야 할 것을 해버린 만족감과 성취감은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는 확신으로 이어진다. 그 순간만큼은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가벼워진다. 운동은 체력을 기르는 일이면서 동시에 나를 나 자신으로부터 구해내는 일이었다.
내가 병에 걸렸던 나이는 마흔넷. 때로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병에 걸린 것이 억울했다. 하지만 돌아보면, 적당히 젊었기에 수술과 항암을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너무 젊었다면 암이 더 빠르게 번져 예후가 좋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걸릴 병이었다면, 그 나이에 걸린 것이 불행 중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덕분에 쉰 전에 운동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더 젊었을 때 운동의 중요성을 알았더라면? 하지만 알았다 해도 지금처럼 몰입하지 못했을 것이다. 젊은 나이에는 그 나이에 필요한 일들이 더 크게 다가오기 마련이다. 지금 내 나이 마흔아홉. 인생을 조금은 알게 된 나이. 세상에 대단한 게 없다는 걸 깨닫는 나이. 작은 즐거움과 보람이 더없이 소중하다는 걸 아는 나이. 조금은 무모한 도전을 더 해봐도 되는 나이.
마흔아홉은, 그래서 운동을 시작하기에 딱 좋은 나이다.
나에게 좋은 때가 지금이라면, 당신에게도 그렇다.
마흔의 당신이든, 예순의 당신이든. 아침이든, 저녁이든.
거창한 목표가 없어도 된다. 작은 변화가 하루하루 쌓이게만 하자. 겹겹이 쌓인 작은 순간들이 당신의 몸이 된다.
그리고 그 몸이, 삶을 지탱할 힘이 될 것이다.
*연재를 마칩니다. 필라테스 연재가 헬스장 사진으로 마무리될 줄은 저도 몰랐네요. :) 쥔장 마음대로 흘러간 연재였습니다. 그동안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풍성한 가을의 기운이 브런치 작가님들의 삶에도 넉넉히 스며들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