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쇠질을 하게 됐다. 계기는 단순했다. 남편이 동네 피트니스 센터에서 PT권을 끊었는데, 다 소진하지 못하고 지방 발령을 받는 바람에 결국 내가 넘겨 받게 된 거다.
헬스장에 간 지 15년이 훌쩍 넘었다. 마지막으로 회원증을 만들었던 건, 저질체력이라는 오명을 벗고 싶던 삼십 대 초반의 어느 겨울이었다. ‘성탄맞이 파격 할인’에 혹해 3개월권을 과감히 끊었지만, 내가 다룰 줄 아는 기구는 런닝머신뿐.
그런데 달리는 것마저 귀찮아서 20여 분 걷는 게 전부였다. 당시에도 퍼스널 트레이닝이 있었지만, 지금처럼 흔하지 않았다. 대회 준비를 하거나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일부 사람들만 받던, 조금은 특별한 영역이었다. 그렇게 시간만 때우는 게 아쉬워 허리 마사지 기계 ‘털털이’에 몸을 맡기던 게 고작이었으니, 계산해 보면 꽤 비싼 이용료를 지불한 셈이었다.
헬스장은 연신내에 있었다. 빛바랜 간판 아래 크고 작은 술집들이 늘어서 있던 곳, 집에서 꽤 먼 거리임에도 그곳을 택한 이유는 운동도 큰 물에서 해보자는 황당한 포부 때문이었다. 그러나 열흘도 못 가 헬스에 싫증이 난 나는 첫 포부와는 달리 엉뚱한 물에 빠졌으니, 달디달고 쓰디 쓴, 매혹적이고도 위험한 물, 바로 술이었다.
두 살 터울인 동생과 사흘이 멀다 하고 센터 앞에서 만났다. 초반에는 양심상 센터에서 조금이라도 운동을 한 후에 만났는데, 나중에는 센터 앞에서 만나 곧장 주점으로 향했다. 차디찬 소주에 회 한 점, 매운탕에 라면사리까지. 겨울 내내 그렇게 씹고, 뜯고, 마시다 보니, 봄이 올 무렵 우리는 나란히 3킬로씩 불어 있었다. 그리고 뜻밖의 대가가 찾아왔다. 나는 목 디스크, 동생은 허리 디스크가 발발한 것이다.
원래 가벼운 디스크 증세가 있던 나는 증세가 확 심해져 손끝은 물론 발끝까지 저려 구두를 신을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정장에 슬리퍼를 신고 출근해 회사 근처에서 구두로 갈아 신던 날들이 이어졌다. 동생은 허리가 약한 편이었는데 그 겨울을 지나고는 아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고, 용하다는 한의사를 수소문해 한 달 넘게 침을 맞은 끝에 겨우 몸을 추스릴 수 있었다.
왜 그랬을까. 우리 자매는 한동안 이유를 분석했는데, 아마도 영하의 혹한에서 술집을 찾아다니느라 근육이 굳은 와중에 체중까지 늘어 디스크가 좁아진 게 아니냐는 결론을 얻었다. 그 후로 난 다시는 헬스장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발을 들이지 말아야 할 곳은 술집이었을 텐데...).
그래서 내 머릿속에 각인된 헬스장의 이미지는 아저씨들이 어슬렁거리고, 뭔가 칙칙하고, 빨리 밖으로 나가야만 할 것 같은 곳이다(밖에서 술이 기다리고 있으니).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순전히 남편의 PT권을 소진하기 위해 찾은 헬스장이었지만,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느낀 것은 의외의 해방감이었다. 둠칫둠칫 울리는 비트, 활기차게 인사하는 트레이너들, 땀에 젖어 각자의 루틴에 몰두한 사람들의 진지한 기운, 창 너머로 펼쳐진 불암산 능선과 흰 구름까지. 속이 뻥 뚫리는 듯한 시원함이 몰려왔다. 하늘하늘한 커튼 아래, 숨소리조차 죽이며 버티던 필라테스 센터와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딱히 무얼 하지 않았는데도 심박이 도곤도곤 빨리 뛰기 시작했다. 잔잔하면서도 또렷한 리듬, 오래 잊었던 설렘의 박자였다.
‘그래, 나에게 필요한 건 이 씩씩함이었어.’
거울 앞에 선 내 모습도 달랐다. 쇠를 들어 올릴 때마다 조금은 강해 보였고, 무엇보다 의지가 있어 보였다. 내가 그토록 바랐던, 강한 나. 마침내 그것을 향해 본격적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실감이 났다. 물론 현실은 조금만 무게를 올려도 바로 헉헉거리는, 헬스 초보 아줌마일 뿐이었지만.
필라테스를 할 때 보람은 있어도 만족감을 느낀 적이 거의 없었다. 예외라면 딱 한 번, 고관절 운동을 집중적으로 하던 어느날이었다. 다양한 자세로 고관절을 비틀고 열어가던 중, 뒷허리 어딘가에서 작은 폭죽이 터지듯 낯선 감각이 밀려왔다. 참새가 지저귀는 듯, 별빛이 흩뿌려지는 듯, 생전 처음 느껴보는 환희였다. 하지만 그건 딱 한 번의 특별한 경험이었고, 대체로는 수업 시작 5분 만에 집에 가고 싶어졌다. 사지를 이리저리 찢고, 버티기가 너무 괴로웠기 때문이다.
가끔 센터 홈페이지에 올라온 수업 사진을 보면서야 알았다. 그토록 힘겹게 버티던 동작들이 사실은 백조처럼 우아한 자세였다는 걸. 그러나 그 순간의 나는 자세를 따라 하고 유지하기에 급급했다. 발레리나도 혹시 이런 기분일까 싶었다.
그런데 헬스는 달랐다. 무게를 들어 올릴 때마다 온몸이 무너지는 듯 힘들었지만, 동시에 당장의 만족감이 밀려왔다. 내가 지금 강해지고 있다는 단순하고 명료한 확신, 그게 주는 기분 좋음은 의외였다. 필라테스처럼 “승모근은 내리고, 어깨 뒤로 힘을 모으고, 팔은 쭉 뻗지 말며, 엄지 발가락에 균등하게 힘을 배분해야 한다” 같은 복잡한 주문도 없어 좋았다.
그러니까, 필라테스는 세련되었지만 까칠한 애인 같다면, 헬스는 세심한 맛은 부족하지만 시원시원하고 재밌는 애인 같았다. 지금은 새 애인에게 마음이 가는 상태지만, 사실 어느 쪽이 더 낫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필라테스는 균형과 섬세함을 깨워주고, 헬스는 단단하고 직접적으로 힘을 길러준다. 과정이 다를 뿐 건강한 몸을 향해 나아간다는 목적은 같다.
나는 이제 두 세계를 모두 맛보고 비교하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확실한 건 하나다. 운동은 삶을 변화시킨다. 몸이 따라와주고, 내가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감각이 찾아올 때, 삶은 조금 더 단단해지고 조금 더 밝아진다. 마흔아홉의 지금,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벅차고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