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테스 수업에서 가장 정신이 혼미해지는 순간은, A 선생님의 구령이 시작될 때다.
“왼쪽 올리고, 오른쪽 올리고, 동시에 내리기… 다시 왼쪽, 다시 오른쪽!”
처음 그녀의 수업에 들어갔을 때, 나는 그 끝없는 리듬 속에서 정신이 반쯤 나가는 기분이었다. 단순한 동작이 계속 겹쳐지자 머릿속이 회오리처럼 소용돌이쳤고, 환공포증 같은 기묘한 환상까지 피어올랐다. 간혹 선생님 본인도 왼쪽과 오른쪽, 말이 엉켜서 머쓱하게 웃곤 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강사마다 가르치는 방식이 다르다. 어떤 강사는 관절을 크게 쓰는 동작을 강조하고, 또 어떤 강사는 개미만 한 움직임에 집착한다. 일주일에 두 번 만나는 A 선생님은 확실히 후자였다. 그녀가 특히 애정을 쏟는 건 발목 강화 동작이었다.
나는 원래 팔다리를 활짝 뻗는 전신 운동에서 해방감을 느끼는 편이었다. 그런데 발목 동작은 상체는 꼼짝 않고 발목만 “오른쪽, 왼쪽~”수없이 꺾었다 폈다 하니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이 단순한 걸 왜 이렇게까지 시키는 거지?’
그러다 어느 날 몸과 관련된 책을 읽다가 알게 됐다. 몸의 균형과 안정성은 코어 그리고 '발목'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발목이 굳어 있으면 스쿼트든 런지든 상체가 앞으로 쏠리고 허리가 꺾이는 보상 동작이 따라온다고 한다. 운동 효과는 줄고, 부상 위험은 커지게 되는 것. 발목은 생각보다 훨씬 중요한 부위였다. 그제야 그녀의 집요함이 이해됐다.
A 선생님의 또 다른 특징은 몇몇 동작을 수업마다 반드시 반복시키는 점이다. 우리 센터는 회원들이 지루해하지 않도록 매 수업마다 새로운 동작을 섞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처음엔 또 이거냐며 눈을 굴리고, 괜히 시계를 흘깃 보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 지루한 반복 끝에 내 자세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초반에는 잘 안 되던 동작을 이제는 부드럽게 완성할 수 있게 됐다. 진전은 반복 속에 은밀하게 자라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그녀는 대충 넘기는 법이 없었다. 네 명이 함께하는 단체 수업이라 보통은 크게 틀리지 않으면 눈감아 주는 편인데, 그녀는 달랐다. 누군가의 동작이 어긋나 보이면 그 자리에서 끝까지 붙잡았다. 카운팅도 그래서 일정하지 않았다. “하나, 둘, 셋…” 일정한 간격으로 카운팅을 하다가 누군가를 교정해 주게 되면 “넷… 다섯…" 간격이 늘어지기도, 아예 멈춰 버리기도 했다. 처음엔 당황스러웠다.
‘코칭이 이렇게 들쭉날쭉해서야…“
특히 버티기 동작에서 카운트가 멈추면 늘 애매했다. 이 자세를 계속 유지해야 할지, 슬쩍 풀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기다리라는 명령을 받은 강아지처럼 부동자세로 땀을 흘리며 버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깨달았다. 그럴 필요는 없다는 걸. 그녀의 수업에 오래 다닌 회원들은 이미 그 리듬을 알고 있었고, 선생님이 한 사람을 붙잡고 있으면 나머지는 알아서 동작을 이어갔다.
불평할 거리는 차고 넘치는데, 그녀의 수업은 늘 만석이었다. 괴롭지만 디테일이 살아 있으니까. 세세한 교정이 그 모든 불편을 상쇄했다.
그러다 어느 날, 나도 그녀의 레이더망에 걸리고 말았다. 스완 온 더 바렐(Swan on the Barrel) 동작을 하던 중이었다. 바렐 위에 엎드려 팔과 다리를 45도 각도로 뻗고, 배를 깊게 끌어당겨 코어를 고정하는 동작.
문제는 배였다. 살짝 당기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납작해질 때까지 복부를 끌어당겨야 했다. 하지만 나는 태생부터 올챙이배였고, 갱년기를 지나며 그 위에 든든한 튜브까지 장착한 상태.
미처 납작해지지 못한 배가 기구와 포개져 눌려버렸으니, 그녀의 예리한 눈에 걸릴 수밖에.
“뮤뮤님, 제 손이 오갈 만큼 배가 들어가야 하는데, 이렇게 걸려버렸네요. 더 흡흡!”
선생님은 손을 내 배 아래로 밀어 넣으려 했고, 통과할 수 없다는 표시라도 하듯 내 배를 자꾸 쿡쿡 찔렀다
“흡… 흡…”
아무리 숨을 깊게 들이마셔도 배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배가 완전히 납작해지도록! 흡!"
선생님은 내 배에 완전히 꽂혀버린 듯했다. 옆에서 연신 “흡, 흡”을 외치며 떠날 줄을 몰랐다. 예전 같았으면 회원들 모두가 나와 함께 동작을 멈춘 채 진땀을 흘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다들 그녀의 방식을 익혀 남은 동작을 알아서 이어갔다. 그럼에도 혼자 오래 붙들려 있으니 괜히 눈치가 보였다. 수업이 나 때문에 멈춘 것은 분명하니까.
결국 나는 항복하듯 고백했다.
“배가 나와서 어쩔 수가 없어욧!”
어디선가 "풉"하며 웃는 소리가 들렸다. 커밍아웃도 아니고 배밍아웃이라니. 부끄러움에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젠 선생님도 이해하겠지. 안 되는 것도 있다는 걸.
그녀가 안쓰럽다는 미소를 지으며 돌아갈 줄 알았다. 그러나 그건 순전히 나만의 착각이었다.
“아니요! 할 수 있어요. 더 흡!”
'헐...'
뱁새눈으로 선생님을 올려다봤다. 그녀의 시선은 내 배를 파고들 듯 응시하고 있었다.
그런데…배 안에는 기나긴 대장이 자리 잡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나는 마흔아홉, 중년의 뱃살이 겹겹이 덮여 있다. 엎드린 자세에서 중력까지 내 편이 아니니, 숨을 아무리 들이마셔도 한계가 있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뿐...
우리는 끝없이 “흡, 흡”을 주고받으며 버티기를 계속했다. 나중에는 산소가 모자란 기분—머리까지 띵해졌다. 이러다 둘 다 쓰러지는 거 아닐까. 필라테스하다가 숨 넘어갔다는 사례를 내가 남길 줄도 모른다. 들고 있는 팔도 파르르 떨려왔다.
그러나 선생님에게 자비란 없었다. 결국 끝을 봐야 하는 건 나였다. '마지막이다!' 애라도 낳을 기세로 힘을 쥐어짜내 배를 끌어당겼다.
“흐흐읍—!”
그리고, 거짓말처럼 그녀의 손이 내 아랫배 밑을 쑤욱 통과했다.
“거 봐요, 되잖아요.”
만족스러운 얼굴로 돌아서는 그녀를 보며, 나는 기구 위에 그대로 쓰러지듯 엎드렸다.
‘이게… 되네.’
헛웃음과 함께 묘한 성취감이 스며들었다.
그 순간 알았다. 내 한계를 만든 건 몸이 아니라, 내 마음이었다.
그녀의 집요함은 억지가 아니었다. 내가 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기어코 증명하는 방식이었다.
발목에서 시작해 아랫배까지, 지루하고 괴롭던 순간들이 조금씩 내 몸을 옮겨놓고 있었다.
아직 배는 납작해지지 않았지만, 의지는 이미 내 몸을 이끌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내 배도 기적처럼 납작해질지 모른다. (정말 언젠가는! 제발!)
*사진출처_ 네이버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