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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 그녀

필라테스 일기 中

by 뮤뮤

-필라테스를 하면서 가끔은 몸보다 마음이 먼저 움직입니다. 같은 제목을 가진 필라테스 일기 두 편-


<거울 속 그녀 1>


나는 늘 거울 속에서 헝클어진 나를 만난다.
땀에 젖은 옷, 흐트러진 호흡, 무너져 내린 자세. 거울은 언제나 내 일상의 그림자를 비춘다.


어느 날, 거울 너머에 낯선 여자가 서 있었다.
머리는 매끈히 묶여 있었고, 얼굴은 가늘게 그려진 선처럼 차분했다. 마른 몸 위로는 은근한 근육이 실처럼 드러나 있었다.

그녀는 수업 내내 미간 한 번 찌뿌리지 않고, 가볍게 모든 동작을 해냈다. 진짜는 동작이 끝난 뒤였다.
사람들이 하나둘 자세를 풀고 허리를 굽히며 거친 숨을 내쉴 때, 그녀는 곧게 선 채 거울을 바라보았다. 옆사람을 흘낏 거리지도, 두리번거리지도 않고, 오직 거울 속 자신의 모습만을 눈을 가늘게 뜨고 응시했다.

처음엔 ‘저 사람 뭐지?’라는 의문이 일었다.

그녀만이 다른 결의 공기 속에 서 있는 사람 같았다.

옛 초상화 속 인물처럼, 깊은 차분함이 그림자처럼 배어 있었다.

어느 순간, 나도 그녀를 따라 해보았다.
숨이 가빠도 허리를 세우고, 고개를 들고, 조금이라도 더 바르게 서려 했다.

그러자 완전히 풀어져 쉬었을 때보다, 다음 동작으로 넘어가는 일이 한결 수월하다는 걸 알았다.
흉내로 시작된 일은 차츰 나를 다잡는 방식이 되었다.


그녀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 침묵에서 많은 말을 듣는다.

내가 소설을 쓴다면, 그녀는 주인공일 것이다. 움직임은 적지만, 중심을 흔드는 인물.
그녀가 있던 자리를 배경처럼 지나가는 나, 그 곁에 잠시 등장하는 익명의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오래도록 거기 서 있었다. 누군가가 나를 발견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거울 속 그녀 2>


우리 센터에는 유독 젊은 여자들이 많다.
이십 대 후반쯤, 물기를 머금은 얼굴들. 허리는 한 줌, 몸짓은 새처럼 가볍다.

그들 사이에 서 있는 나는, 가장 나이 많은 회원이다.

몸의 선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레깅스를 입고 그녀들과 나란히 거울 앞에 서면, 선명한 경계가 그어진다.
둥글게 번진 나잇살, 무너진 얼굴선.

이미 알고 있던 나의 늙음을, 거울 속 그녀들 곁에서 더 뚜렷하게 확인한다.


나는 원래 남과 나를 잘 비교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나로서 충분하다는 믿음이 있었고, 그 자존감 덕분에 오래 버텨왔다. 그러나 이 거울 앞에서는 달랐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못마땅했고, 장점이라 여겼던 나의 큰 키마저 흉처럼 느껴졌다.

거울 속의 나는, 늙고 굼뜬 거인의 그림자처럼 서 있었다.


그러다 문득,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의 시 한 구절이 떠올랐다.
“언젠가 늙었을 때, 너를 진정 사랑했던 건 너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변치 않는 영혼이었음을 알게 되리라.”
거울 속 젊음은 빛나지만, 결국은 사라진다. 그러나 나의 시간은 사라지지 않고 여기에 서 있다.


비교는 장점을 단점으로 바꿔놓는 잔혹한 힘을 가졌다. 나를 나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결국 자존감마저 흩뜨려 놓는다.

오늘도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 그녀들은 여전히 젊고 아름답다. 그리고 나는 그 옆에서 하루 더 늙은 나를 본다. 아마 그 거울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정면으로 내 늙음을 바라보지 않았을 것이다.
비교의 거울 너머에서, 다시 나를 배우고 있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다음주 연재는 쉬어가겠습니다.

-거울 속 그녀 1 : 소설을 쓰겠다는 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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