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희를 모르는 행성에 도착했다.

#쉰의 행성

by 뮤뮤

<프롤로그>


김태희 배우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예쁘다는 말의 무력함을 배웠다.

태초에 있었을 법한 맑음. 누구도 먼저 들어가 본 적 없는 설원 같은 얼굴.
그 모든 비유를 모아 부를 수밖에 없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투명한 아름다움에 압도당했다.

그녀 앞에 우두망찰 서서 느꼈던, 사람을 넘어선 듯한 신적인 기운은 십수 년이 지나도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최근 스물여덟의 K에게 그 이야기를 한참 늘어놓았다. 인간인 정지훈이 어떻게 그녀의 신적인 기운을 이겨내고 결혼까지 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면서.

돌아온 건 고개를 끄덕이는 공감이 아니라, 아주 짧은 질문이었다.


"그런데, 김태희가 누구죠?"


그 순간, 내가 믿어온 절대적인 세계가 '쩍' 하고 금이 갔다. 이름은 들어봤으나 얼굴은 떠오르지 않는다는 무심한 대답 앞에서 어떤 말도 이어갈 수 없었다. 나에겐 신화였던 존재가 누군가에게는 검색창을 두드려야만 비로소 출력되는 낯선 데이터였던 것이다.



각자가 보고 싶은 것만 선택해서 보는 OTT의 시대라지만, 공유되지 않는 아름다움은 이토록 힘없이 바스러지는 거였나. 내가 ‘당연함’이라 믿었던 상식들이 사실은 유통기한이 지난 나의 옛 기억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세대는 이렇게 교체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행성이 되어 멀어지는 중인지도 모른다.


내가 여전히 박제된 설원의 아름다움을 추억하는 동안, 누군가는 머나먼 행성에서 자신만의 신화를 써 내려가고 있을 것이다.




내가 붙잡아온 기준들이 더 이상 공통의 언어가 되지 않는 순간을 거듭 겪으며, 나는 그 간극 앞에서 길을 잃었다.

내가 '옛날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건, 단순히 나이를 먹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통증이었다. 그것은 내가 믿어온 절대적인 세계가 사실은 한때의 유행이었음을 고백하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이대로 무력하게 낡아가고 싶지는 않다. 담담히 수용하기엔, 내 안의 소녀가 여전히 너무 뜨겁게 살아있다.


그래서 나는 묻기로 했다.

지금 이 세계에서, 저 청년의 눈을 붙잡아 세우는 이 시대의 ‘설원’은 과연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그 낯선 아름다움을 집요하게 들여다보면, 어쩌면 나도 나만의 새로운 신화를 써 내려갈 수 있지 않을까.


나의 쉰은, 이제 막 낯선 행성에 도착했을 뿐이다. 김태희를 모르는 행성에.


#쉰의 행성




*커버이미지-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