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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이슬 Jan 17. 2019

이노센트 패륜아

그 날 이후로 두 번 다시 아빠 앞에서 욕을 하지 않았다.

<파칭-> 굵은 글씨로 쓰인 효과음, 흰색 번개가 내려치는 검은 배경, 주인공의 커다란 눈동자,

배경을 가득 메운 <두근두근> 따위의 의성어 글자들.      


주인공의 내면에 커다란 파동이 이는 순간을 만화책에선 이런 효과들로 표현했던 것 같은데...

아무튼 여섯 살 이슬의 눈동자가 커지고, 콧구멍은 마구 벌름거리고, 가슴은 두근두근, 머릿속에선 번개가 콰르릉 펑펑 터졌던 어느 날.

귀로 들어와 머릿속을 맴돌던 단어가 기어이 입 밖으로 새어 나오던 그 찰나. 작은 소리였지만 확실했던 발음.

‘씨발..’     

 

함께 모래놀이를 하던 여덟 살 사촌오빠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보면 안 될 것을 보았다는 표정으로 이슬을 쳐다보았다.

사촌오빠의 눈동자와 이슬의 눈동자가 마주쳤다. 네 개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이슬은 참지 못하고 배에 힘을 주어 더 크게 외쳤다. ‘씨발!’

온몸의 털과 세포들이 뾰족하게 촉을 세우고 파르르 떨렸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욕을 하던 순간이 이토록 생생하다.

그때의 기분을 표현할 완벽한 한 단어를 고른다면 홀리 쉿(holy shit)이 아닐까.

그 날, 나는 시소를 타거나 철봉에 매달리거나 모래를 발로 찰 때마다 쉴 새 없이 씨발 씨발 거리는 초등학생들 옆에서 사촌오빠와 모래놀이를 하고 있었다.

세상에 나온 지 6년밖에 안 된 하얗고 말랑한 나의 뇌는 그들이 마구 내뱉는 단어를 스펀지처럼 흡수하였다.  

  

‘여섯쌀이에요’라고 말할 때를 제외하고는 아마 거의 처음으로 발음해보는 쌍시옷이었다.

고하건대 그때의 난 욕이 나쁜 것인 줄 몰랐다. 아니 욕의 의미조차도 모르고 있었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겐 그러지 말라고 하면서 저들은 잘도 씨발, 지랄, 개새끼 거리기에

그런 종류의 단어들은 나이가 들어야지만 할 수 있는 특권 같은 것인 줄 알았다. 마치 술과 담배처럼.

그런데 뭐 막상 질러보니 생각보다 별 것이 아니었고,

심지어 내가 방금의 초등학생들보다 억양이나 발음 면에서 더 훌륭한 씨발을 해낸 것 같아 뿌듯하기까지 하였다.

나는 갑자기 어른들의 단어를 사용하는 여섯 살이 되어 버린 것이 실감이 났다.

어른에 가까워진 기분은 짜릿함 그 이상이었다.     

나는 혀끝에 한껏 째를 내어 한 번 더 외쳤다 “쒸봘”  

무지하게 멋진 두음절이었다.  


느닷없이 욕을 내뱉는 나에게 사촌오빠가 그만 하라며 화를 냈다.

나는 오빠에게 그러지 말고 이 짜릿한 단어를 한 번만 발음해보라고 말했다.

오빠는 거부했다. 나는 속으로 오빠가 겁쟁이라고 생각했다.          

  

마침 퇴근한 아빠가 나를 데리러 놀이터에 왔다.

사촌오빠는 죄지은 얼굴로 우리 아빠랑 눈도 못 마주치고 도망치듯이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아빠에게 내가 습득한 언어를 빨리 자랑하고 싶었다.

아빠! 이슬이도 이제 어른이에요!

     

나는 오래된 아파트의 13층에 살았다. 아빠 손을 잡고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같은 동에 사는 아줌마 아저씨들 몇 명도 우리와 함께 올라탔다.

아빠가 그분들의 층수를 대신 눌러주었다. 물어보지 않아도 누가 몇 층에 사는지 다 알 만큼 긴밀한 이웃들이었다. 아줌마가 아빠 손을 꼭 잡은 나를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아빠 씨발 13층도 눌러줘”

정작 우리 층수 버튼을 누르는 것을 잊은 아빠에게 내가 웃으며 말했다.

‘힉’ 아줌마가 짧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뭐라고?” 아빠가 물었다

“13층 눌러달라고 씨발” 세상 천진한 얼굴로 내가 말했다.

엘리베이터 안이 어색한 침묵으로 가득 찼다. 그러니까 요샛말로 갑분싸.

아빠는 얼굴이 벌게져서는 일단 13층을 눌렀다.

뿌듯한 마음에 올려다본 아빠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화가 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는 굳은 아빠의 얼굴에 왠지 조금 불안해져서 아빠 옷소매를 죽죽 잡아당겼다.

“아빠?”

이럴 수가. 아빠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나는 거의 울 것 같은 얼굴로 물었다.

“아빠, 씨발 화났어?”     


급하게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간 아빠는 양복을 벗기도 전에 회초리부터 꺼내 들었다.

“강이슬 이리 와”

아빠의 엄한 목소리에 눈물이 터졌다. 처음 보는 아빠의 냉정한 모습이었다.

상황을 판단하기 위해 정신없이 머리를 굴렸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단 말인가.

놀이터에서 너무 늦게까지 놀았나? 모래 위에 털썩 앉아서 그런가? 옷이 너무 더러워졌나?


“이리 와!” 아빠의 화난 목소리가 낙뢰처럼 온몸에 부딪혔다.

나는 서둘러 아빠 잘못했어요 라고 말했다.

뭔지는 몰라도 잘못을 하긴 했으니 아빠가 저렇게 화가 났겠지.

아빠의 용서를 기다리며 눈물을 닦지도 못하고 줄줄줄 흘리고만 있는데 아빠가 물었다.

“뭘 잘못했어?”

헉. 숨이 막혔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울기만 했다.

아빠가 대답을 다그치며 회초리로 바닥을 세게 탁탁 쳤다.

나는 넘어갈락 말락 한 거친 숨소리 사이로 간신히 몇 글자를 내뱉었다.

“흐억, 흐억, 시발, 흐억, 몰라요, 흐억”

아빠가 잔뜩 인상을 쓰고서 아까보다 훨씬 더 크고 무서운 목소리로 “누가 그런 말을 하라고 그랬냐!” 하고 혼을 냈다.

나는 정말이지 아빠가 이러는 영문도 모르겠고 몹시 억울하여서

“네? 흐억, 흐억, 시발, 뭐가?”하고 되물었다.

아빠는 잠깐 동안 나를 바라보더니 매를 내려놓고 자신의 무릎을 탁탁 쳤다.

무릎에 앉으라는 뜻이었다. 아빠 화가 풀렸구나! 나는 아빠 품에 와락 안겨 서럽게 울었다.

아빠가 품으로 파고드는 내 얼굴을 들어 눈을 마주치고는 눈물을 닦아줬다.

“이슬아, 욕은 나쁜 거야, 욕을 하면 안 되는 거야”

나는 엉엉 울면서 씨발이라는 말이 욕이라는 것이냐고, 그리고 욕이 나쁜 것이냐고 물었다.

아빠는 그렇다고 했다.

정말로 몰랐던 사실이었으므로 정말 몰랐다고 말했다.

놀이터에서 스쳤던 초등학생 오빠에게 내가 지은 모든 죄(?)를 뒤집어 씌웠다.     

아빠는 나의 해명을 다 듣고 난 후 커다란 새끼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약속하자는 뜻이었다.

나는 아빠의 새끼손가락에 나의 짧뚱한 검지 손가락을 걸고 다시는 욕 하지 않겠노라고 약속했다.

아빠가 눈물에 젖어 들러붙은 잔머리를 싹싹 쓸어 넘기고 내 이마에 뽀뽀를 해주었다.

아빠가 두툼한 손으로 등을 토닥이니 불규칙하게 쏟아지던 숨도 점차 균일해졌다.  

그 날 이후로 두 번 다시 아빠 앞에서 욕을 하지 않았다.

대신 아빠가 없을 때만 몰래몰래 엄청나게 많은 욕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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