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보니 윗니 네 개가 없었다.
뭔지는 모르겠다만 아무튼 대단하게 좆 됐다는 강렬한 확신과 함께 눈을 떴다.
한편으로는 좆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기대를 사실 했다.
술에 거하게 취해서 들어온 다음날 아침이면 엄청난 농도의 괜한 불안함 때문에 눈이 떠지는 일이 종종 있으니까.
눈을 뜨는 동시에 숙취가 머리를 부술 기세로 달려들어서 다시 눈을 감았다.
토할 것 같아 가슴을 쓸어내렸더니 맨살과 젖꼭지가 만져졌다. 시발? 왜 벗고 있지?
두통을 눈꺼풀 뒤로 밀어내며 억지로 눈을 벌리고 주변을 살폈다.
칠이 벗겨진 화장실 문, 빛이 들어오지 않는 창문, 습기에 뒤틀려 제대로 닫히지 않는 장롱 문짝, 하수구 썩은 내. 그리고 옆에 널려있는 박과 김.
안도의 한 숨을 쉬었다. 내가 사는 따뜻하고 아늑하고 가난한 반지하였다.
언제 어떻게 들어온 걸까.
얼굴을 쓸었더니 말라 부스러진 마스카라가 손에 묻어났다.
속이 역했다. 신트림이 나왔다. 트림에서 데낄라 냄새와 담배냄새가 났고 온 몸이 욱신거렸다.
입을 벌리고 잤나 보다. 입 안의 혀와 피부와 잇몸들이 자기들끼리 짝짝 말라붙어 한 덩어리가 된 것 같았다.
입 안 구석구석을 혀로 쓸었다. 보통 때보다 훨씬 무겁고 두꺼운 혀가 어금니 안 쪽을, 아랫니와 입술 사이를 찐득한 구렁이처럼 돌아다니다 윗니에 가 닿았다.
따뜻하고 말랑한 쇠를 핥는 듯한 생경한 기분, 싸한 비린맛.
‘?’
윗니 네 개가 없었다.
역시 좆됐구나 내 그럴 줄 알았다니까!
손거울을 찾기 위해 테이블 위를 더듬었다. 거울보다 먼저 조약돌 부스러기 같은 것들이 손에 잡혔다.
윤기 없이 퍼석하게 부서진 내 이빨들이었다.
입과 코만 간신히 비추는 조그마한 손거울을 보고 입을 벌렸다.
이- 아- 에- 습, 습을 차례대로 발음해보았다.
윗니가 필요치 않은 모음임에도 앞니의 빈틈으로 소리들이 새어 나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부서진 이빨 조각을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 가져다 대었다.
잇몸에 붙어있는 반 틈의 이빨과 아귀가 꼭 맞아떨어졌다.
이를 앙다물고 혀를 내밀어 보았다. 분홍색 살덩어리가 앞니의 부재를 놀리듯 빼꼼 삐져나왔다.
울고도 싶었고 웃고도 싶었다.
전 날 밤, 김이 오랜만에 서울로 놀러 왔다.
박과 나와 김은 운동화 신은 발을 힘차게 구르며 홍대 클럽거리를 걸었다.
미리 인터넷으로 찾아본 술집에서 소주 세 병을 빠르게 비웠다.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오니 여기저기에서 무료입장! 프리드링크를 외쳐대는 어린 호객꾼들이 있었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지하에 있는 한 클럽으로 들어갔다. 우리뿐이었다.
게다리 춤을 추며 아무렇게나 놀다가 데낄라를 세 샷씩 마셨다. 호객꾼과 약속한 한 시간을 다 채워 논 뒤 바깥으로 나갔다. 나가자마자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이 여기저기에서 쏟아졌다. 그중 가장 시끄러운 클럽으로 빨려 들어갔다. 우리는 그곳에서 데낄라를 세지 않고 들이켰다.
시끄럽고 어둡고 붐비는 클럽 안에서 한참을 놀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박이 없었다.
박을 찾아 바깥으로 나오니 박이 남자 친구와 함께 있었다.
우리는 인사도 하고 이야기도 할 겸 술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처음 보는 박의 남자 친구와 처음 가는 술집에서 소주를 몇 병이나 뚝딱뚝딱 비웠다.
번뜩 정신을 차려보니 김이 없었다. 이것들은 말도 없이 왜 자꾸 사라지는걸까.
김을 찾아 무작정 바깥으로 나갔다. 다행히 술집과 멀지 않은 어떤 옷가게 앞에서 쪼그려 앉아있는 김을 찾았다.
“김!”
김을 흔들었다. 고개를 든 김의 얼굴에 졸음이 한가득이었다.
“김, 춥다 들어가자, 박이랑 박의 남자 친구가 걱정해”
“싫어. 여기 있을 거야”
“왜 싫어. 들어가자. 여기서 자면 입 돌아가”
김을 억지로 일으켰다. 김이 제발 자기를 내버려 두라며 술집으로 돌아가기를 완강하게 거부하였다.
춥고 무겁고 짜증이 나서 눈물이 났다.
“왜 들어가지 않겠다는 거야! 박이 걱정한단 말이야!” 울면서 김의 팔을 강하게 잡았다.
“아 싫다고! 이거 놓으라고!” 김도 울며 나보다 더 세게 내 팔을 뿌리쳤다.
우리는 어떤 가게 앞에서 울며 불며 한참을 실랑이하였다.
지나가던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보았다.
나는 너무 지치고 추워서 결국 김을 그곳에 버리고 혼자서 술집으로 돌아왔다.
‘짤랑’ 술집 문을 열고 씩씩대며 들어오는 나를 박과 박의 남자 친구와 김이 쳐다보았다.
박의 맞은편에 앉아있는 김에게 내가 물었다. 김도 나에게 똑같이 물었다.
“뭐야?”
김은 잠깐 화장실에 다녀왔을 뿐이랬다.
나는 진짜 누구를 붙잡고 울다 온 걸까.
소주를 몇 병 더 비웠다. 기분이 찢어지게 좋았다. “4차 가자! 4차!”
활짝 웃으며 앞장을 섰다. 가게를 나서다가 보이지 않는 결계에 세게 부딪혀 뒤로 튕겨 나가듯 넘어졌다.
어안이 벙벙했다.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앞을 더듬었더니 잘 닦인 유리창이 만져졌다.
유리창에 내 화장이 찍혀있었다. 립스틱이 꼭 웃는 모양이었다.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그러면 내가 나를 비웃는건가?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났다.
넘어진 나를 보고 배를 잡고 웃던 박이 간신히 웃음을 멈추고는 괜찮냐고 물었다.
나는 깔깔 웃으며 유리창에 찍힌 내 화장을 가리켰다.
"이것봐 웃기지 않냐"
후두둑, 내 앞니가 떨어져 나갔다. 핏방울도 후두둑.
박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내 박의 눈에서 눈물이 후두둑.
박이 비틀거리며 휴대폰을 찾아 내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새벽 4시였다.
“루빠, 이슬이가요 엉엉, 얼굴에서 피가.. 흑흑. 얼굴이 흑흑, 피가.... 다 부러져서요”
도대체 무슨 말이냐고 재차 되묻는 루의 목소리가 박의 전화기 너머로 들렸다.
아.. 모르겠고 졸려서 돌아버릴 것 같았다. 바닥에 떨어진 이빨을 모아 손에 쥐었다.
잠에서 깬 박과 김이 거울을 들여다보며 열심히 메롱 중인 나를 보고 물었다.
“괜찮냐?”
박에게서 할아버지 냄새가 났다.
쟤는 왜 데낄라를 마신 다음날에도 쉰 김치에 막걸리를 먹은 노인 냄새가 나는 걸까 잠깐 동안 의아했다.
김이 내 앞니를 보고 어떡하냐고 걱정하였다.
걱정하는 눈과 비실비실 웃는 입매가 한 얼굴에 있었다.
나는 앞니가 보이게 셀카를 몇 장 찍은 후 짬뽕을 시켰다. 일단은 배가 고팠다.
“안녀하세요. 여기 짠뽕 하나낭 탕후육 호땨리랑 따당면 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