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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이슬 May 12. 2019

대충 맞는 사주

사주 여덟 글자에 백 프로 들키는 인생은 아무래도 너무 심심하고 억울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주를 보러 갔다. 

사주를 보러 가기 전날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 내가 태어난 시간을 물었다. 

엄마는 “대충 다섯 시 반쯤 태어났어.”라고 대답했다. 엄마의 ‘대충’이라는 말이 신경 쓰여서 그럼 동생은 언제 태어났냐고 물었더니 동생도 대충 다섯 시 반쯤 태어났다고 말했다. 

자매가 같은 시간에 태어날 확률은 과연 얼마나 되는 것일까. 한결 더 찝찝해져서 차라리 동생 생시는 묻지 말 걸 생각했다.     


찜찜한 마음으로 사주 선생님께 나의 생년월일과 생시를 말씀드렸다. 

선생님은 나의 사주팔자를 보며 해석해주기 시작했다. 대충 가늠한 생시 때문인지 대충 맞는 것은 많았고, 대충 맞지 않는 것도 더러 있었다. 내 인생이 녹아있는 한문 8글자를 차례대로 해석해주며 사주 선생님은 말했다.     

“올해 상반기는 운이 아주 좋은 편이네요. 그러나 선생님은 올해 하반기부터 앞으로 2년 동안 무척 힘들 겁니다.”   

  

올해 상반기 운이 좋았던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에 다가올 어두운 미래 또한 신빙성이 있어 보였다. 

겁에 질려 콧구멍을 벌름거리는 나를 바라보며 선생님은 덧붙였다.     

“서른한 살이 될 때까지 운수가 아주 더러워요. 살면서 가장 힘든 시기가 될 거예요. 하지만 그 시기를 잘 견뎌내면 그 뒤로는 또 운이 좋네요.”     

나는 참담한 표정으로 물었다.

“올해 하반기에 제 책이 나오는데요, 쫄딱 망하려나요? 열심히 썼는데요..”

선생님이 말했다.

“망하더라도 2년 뒤에 재조명이 되겠지요. 일단 열심히 쓰세요.”     


마음속으로 이것은 대충의 생시로 인한 오차인 것이 분명하다고 합리화를 했다. 

이어 선생님이 생각이 아주 많은 편이라며 생각을 하는 직업을 평생 하게 될 거라고 말했다. 

사주팔자 중 생각과 관련한 한문이 4개나 들어있다나. 선생님께 생각을 하는 직업에 몸담고 있는 건 맞지만, 생각하지 않는 직업도 있냐고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선생님이 있겠죠?라고 대답했다. 있긴 있겠지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사주오행은 물(水)이라고 했다. 물이 많은 사주임으로 나에게 없는 나무나, 불의 기운을 가진 사람들이 잘 맞을 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 이름 석자가 물의 기운을 띄고 있기 때문에 좋지 않다며 만약 생각이 있다면 좋은 글자들을 조합한 필명을 만드는 건 어떻겠냐고 물었다. 

선생님이 여러 이름을 제안하다가 그중 하나를 가리키며 적극 추천했다. 

“강태희 좋네요.”

태희는 좀 어려울 것 같다고 멋쩍게 웃었더니 선생님도 나랑 비슷한 표정으로 웃었다.      


“남자 친구는 언제 생길까요?” 

내 물음에 선생님이 태블릿을 찬찬히 들여 보시더니 말했다.

“남자 친구 생기겠네요. 이번 4,5월에 있어요.”

“정말요?”

“네, 주변이 호감 가는 사람 없나요?”     

호감 가는 사람은 내 평생 없었던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선생님이 지금 호감 있는 그 분과 잘될 거라고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나는 안 그래도 얼마 전에 걔한테 고백했다가 차였으므로 그건 아닌 것 같다고 대답했다. 

선생님이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라고 분명히 가까이에 인연이 있다고 말했다. 머릿속으로 주변 사람들을 떠올렸다. 펼쳐진 선택지마다 빗금이 그어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5월은 무리인 것 같은데 사주가 그렇다고 하니 괜히 믿고 싶어 졌다.     


사주풀이는 삐걱거리면서도 어쨌든 맞는 편이었다. 듬성듬성 맞는 사주에 안도했다. 

사주 여덟 글자에 백 프로 들키는 인생은 아무래도 너무 심심하고 억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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