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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은 아름다워 Jun 04. 2022

한국에서 큐레이터란

큐레이터와 도슨트와 갤러리스트는 다릅니다


방송국과 잡지사의 방문으로 정신이 없었던 하루였다. 게다가 마지막 손님께 작품 설명을 한참 하다 보니,, 서양미술사 교수님이셨던 것... 부끄러운 마음에 진작 말씀을 하셨으면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지 않았을 것이라고 농담을 건넸더니 의외의 답이 오늘 하루의 피로를 녹여주었다.


"준비된 말을 쏟아내는게 아니라 사람들의 반응에 하나하나 호응해주면서 그에 맞는 설명을 해주고 재밌게 이야기를 이끌어 가주니 작품이해도가 높아지고 즐겁게 전시를 볼 수 있었다."는 감동적인 총평.


나는 작가의 세계를 대중에게 잘 전달하고 싶다. 그 "잘"이라는 단어 안에는 보는 이가 궁금할 이야기를 쉽게 전달하고 싶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은 작품 속에 모두 담았다. 캔버스 밖에서까지 하고 싶은 말만 한다면 그림을 보는 사람에게는 지루하거나 피곤한 일이 된다. 그래서 작가의 큰 주제를 관통하되, 관람객의 입장에서 궁금한 작업세계를 쉽고 간결하게 정리하려고 한다.


이런 일이 바로 큐레이터인 내가 해야 할 역할이라 생각해서이다. 작가의 작품 세계를 시대 상황에 맞게 구성하며, 작가가 던지고자 하는 주제를 대중의 눈높이로 해석해 주는 일.


큐레이터가 도슨 트고, 도슨트가 큐레이터며, 큐레이터와 갤러리스트를 다 한데 묶어 하나의 직업이라 생각하는 한국사회에서 나는 나의 일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때가 많다.


큐레이터에게 하이힐과 빨간 립스틱을 요구하고, 갤러리의 모든 잡무를 당연시 떠넘기며, 학문으로 규정된 전문영역임에도 자주 의견이 묵살된다. 최저임금과 계약직이면서 고학력을 요구하며, 개인의 전문성을 강화할 때는 언제나 제지를 당하는 이상한 업계가 바로 현재 한국 미술계의 모습이다.


한국 미술시장이 유래 없는 호황을 맞이하고, 양적 질적 팽창이 이어지는 작금의 시대에 작가만 잘 그린다고, 그림만 잘 판다고 과연 건강한 미술계가 형성될까?


수면 아래 있는 작가를 발굴하고, 작가의 작품을 재해석해내고, 작가의 세계를 대중에게 전시로 전달하는 큐레이터의 전문성이 보호받을 때 작가와 작품의 다양성이 존중되고, 심미안과 안목을 바탕으로 진짜 컬렉터가 후원자가 양성될 것이다.


우리 시대 한국에서 큐레이터의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바꿔가야 할 때가 온 것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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