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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은 아름다워 Jul 28. 2022

쿠사마 야요이

미술계 그 첫 시작.


쿠사마 야요이를 좋아하게 된 건 2009년 상하이에서 갤러리 인턴으로 일할 때였다.


대학 입학 직전 나는 상하이 근교 닝보라는 도시에서 어학연수를 했다. 미술시장을 배우겠다는 포부로 혈혈단신 말도 안 통하는 나라에 혼자 떨어졌지만 그때는 신기하리 만큼 혼자서 많은 사람들을 사귀었다.


나는 중국으로 떠난 후 매년 베이징, 상하이, 홍콩의 아트페어를 보러 다녔다. 여건이 된다면 서울과 부산도 간혹 오긴 했지만, 중국 내 세 개 도시에서 열리는 아트 페어는 2007년부터 2018년까지 거의 빠트리지 않고 다녔다.


닝보를 떠나기 바로 직전의 겨울, 상하이에서 아트페어를 보러 갔다가 우연히 (우연히라 말하지만 사실은 운명적으로) 중국 갤러리 대표님과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지금은 아트페어가 워낙 보편화되었지만, 2007년 즈음만 해도 아트페어 장에 들어서는 것 자체가 쭈뼛거리게 되는 일이었다. 특히나 학생의 차림을 하고는 더더욱 갤러리의 차가운 눈초리를 받던 시절이었다.


작가가 누군지, 작품 가격이 얼마인지 왜 갤러리는 모조리 숨기는지 궁금한데 알려주지 않으니, 심호흡을 다섯 번쯤 하고 용기 내어 질문을 하곤 했었다. 한국의 페어장은 그 살벌함이 너무도 심해서 나는 키아프만 다녀오면 몸살을 앓을 정도였다...


그에 비해 실리적인 중국인들은 내가 뻔히 작품을 살 여력이 안될 차림새를 하고 있어도 궁금증에 친절하게 대답해 주고, 중국 미술 시장에 호기심을 갖는 나에게 명함을 주면서 갤러리에 놀러 오라고 했다.


그렇게 사귀게 된 상하이 소재의 갤러리 대표님은 나에게 중국 미술시장의 많은 것들을 알려주었다. 사실 그 덕에 내가 중국 미술 시장을 깊숙이 알 수 있었고 많은 부분들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대표님은 중국 사람임에도 오랜 시간을 일본에서 생활을 해 사실 일본인 같았다. 경제학 박사를 하면서 패션디자인을 복수 전공하고 할아버지가 마련해 놓은 상하이 아뜰리에에서 그림만 그리기 너무 큰 공간이라 사람들을 초대하다가 갤러리를 하게 된...?! 7년간 적자에도 갤러리 직원은 최소 2명 이상, 많을 때는 8명까지도 있었던. 마르지 않는 샘물이란 게 진짜 있나 보다 믿게 된 중국인의 재력을 실감하게 한 인물이다.


아무튼 그 갤러리에서 나는 꼭 일을 하고 싶어 무보수로 인턴을 하게 해달라고 했고, 겨울방학 내내 왕복 4시간(!!!) 지하철을 오가며 갤러리에서 인턴 생활을 시작했다.


그 인연으로 나는 상하이의 갤러리에서 많은 일을 했고, 키아프 출장도 전담해 다녔었다. 그때의 썰을 풀어보자면 진짜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우당탕탕 김새슬의 생존기...


그렇게 2010년 가을에 나는 키아프에 중국 갤러리 직원으로 참가하게 되었다. 그때 우리는 쿠사마 야요이의 스페셜 에디션 판화작품을 가지고 있었는데, 유리가루가 뿌려진 반짝거리는 독특한 작품이었다. 쿠사마 야요이의 판화 공방에서 찍었던 작품이라 공방 마크도, 작가의 사인도 있었으며 한국시장에서는 거의 거래가 없던 매우 고퀄리티의 작품이었다.


당시 그 판화는 500만 원 정도였다. 우리 대표님이 쿠사마 야요이를 여러 번 인터뷰를 한 인연으로, 콜라보 한 아트웍도 만들었었다. 그렇게 한국 시장에 가져왔지만 우리는 한 작품도 팔지 못했었다. 당시 페어장에는 쿠사마의 반짝거리는 작품에 많은 사람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들었으나, 누가 판화를 그 돈을 주고 사냐며 다들 흥정만 했고, 대표님은 도대체 한국 사람들은 여기가 동네 시장이냐며 누가 작품을 콩나물 가격 깎듯이 20-30%씩 요구하냐며 여기서 작품을 팔지 않겠다고 선언해 버렸다.


일을 하던 나는 아쉬웠지만, 대표님은 수고했다며 쿠사마 에디션 아트웍을 하나씩 선물로 주셨다. 그렇게  해외 출장에서 쿠사마 작품을 팔아봤고, 실패를 했고, 에디션 아트웍을 선물로 받게 되면서 미술계란 도대체 어떤 곳이지  많은 생각을 했었다.


그렇게 대표님을 통해 쿠사마 야요이의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되었고, 대표님 덕분이 나도 쿠사마 야요이를 무척 좋아하게 되었다. 내게 그 대표님은 쿠사마 야요이 같은 사람이었달까? 딱 일본 같은, 흥미롭고 개성 넘치고 매력적이면서 담백하고 심플한, 그리고 미술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대단한 그런 분이었다.


2014 쿠사마 야요이  세계 순회전  상하이에서 전시를   처음으로 쿠사마 야요이의 다양한 작품을 보게 됐었다.  전시를 통해 진짜 작가의 세계를 많이 알게 되었고,  그녀가  세계인에게 사랑받는지 나도 공감할  있었다. 그리고 예술은 아름다우면서 잔인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작가에게 불행은  불행이 아니지만, 그것에 환호하는 관람객의 입장에서는 종종 그런 나의 모습에 섬뜩하다는 생각을 한다.


요즘 나는 쿠사마 야요이가 경매시장에서 연일 최고가를 경신한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2010년 키아프의 그 순간들이 떠오른다. 쿠사마 작품이 100배 이상 올랐다느니, 1500% 이상의 수익률을 냈다느니 하는 이야기에 사실 배가 아플 때도 있다. 하지만 그저 나의 순간이 아니었을 뿐이기에 아쉬워할 이유가 없다.


켜켜이 쌓인 시간 속이 수많은 추억과 경험들이 지금의 나를 있게 했구나 지난 10여 년의 시간들을 돌이켜 본다. 그리고 그 시간들을 통과했기에 나는 지금 미술시장의 흐름을 구분하며 읽게 된 것이다. 다시 20대로 돌아가라고 하면 나는 못 간다고 할 만큼 어렵고 고된 시간이었으나 평범한 경험들이 아니었기에 또한 감사하다.


내가 너무 느린 것 같지만 난 그저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묵묵히 하는 것을 선택하기로 했다. 지금도 앞으로 올 나의 순간들을 위해 나아가고 있으니 축적된 시간들을 통해 언젠가 내 순간도 올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쭈굴거리는 마음을 빳빳하게 펴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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