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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슬아 Jul 06. 2023

호화로운 백수와 빠리

해의 시기와 달의 시기

해가 긴 요즘, 오후 다섯시에도 하루를 충분히 새로 시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평소라면 오후 네시가 지날 무렵부터 머릿속이 잠자리에 들 준비로 가득한데, 오늘은 그런 연유로 세느강까지 나왔다. 해가 긴 요즘의 빠리에 잔뜩 취해, 차를 담은 보온병과 요즘 읽고 있는 문고판 책을 들고.


 어제는 폭우가 쏟아졌고 밤 열한시가 되어서야 하늘이 조금씩 개었다. 그 시간에도 구름이 걷힌 하늘은 푸른 색을 띄었다. 열대의 나라가 우기와 건기로 나뉜다면, 이곳은 해의 시기와 달의 시기로 나뉘는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나는 지난 열달 동안 극단적인 경험을 하고 있다.


 일하지 않고 놀고 먹는 백수가 빠리 생활이라니, 게다가 아무리 미뤄도 오늘이 좀처럼 가지 않는 나날이라니. 하루에 스무시간 가까이 해가 떠 있으니, 매일이 게으름뱅이에게 일을 미룰 수 있는 아주 적절한 선물이다.


석달이 넘는 긴 여름 방학이 아직 두달도 더 남았다.

인생이 이보다 더 호화로울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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