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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라 Nov 01. 2020

남편이 집을 나갔다.

결혼 3년 차, 6월 어느 날의 일이었다.


아무래도 더 이상은 이렇게 못 살 것 같아.


올해 초부터 유독 회사를 힘들어하던 남편의 입에서 마침내 두렵게 기다리고 있던 그 말이 나왔다.

연애 7년, 결혼 3년. 도합 10년을 옆에서 꾸준히 본 그는 변화, 혁신, 흔들림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한 번 길을 정하면 정도를 걸어 골인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그래서 끝내 20살짜리를 꼬셔내어 결혼까지 성공한 그런 사람). 그런 성향 탓인지 신입 공채로 입사한 그 회사에서 한눈 한 번 팔지 않고 7년을 보냈다. (반면에 난 6년 차에 3번째 회사다.)


내가 결혼을 하고서도 겁 없이 퇴직서를 2번이나 던지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종주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건 마음 한켠에 그가 앞으로도 용산구에 있는 그의 자리를 떠날 일이 없을 거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그는 이직조차도 고려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맨날 같은 회사, 같은 사람들이랑 같은 이야기 하면 안 지겨워?”

“그래도 조금씩 매일 달라, 그리고 우리 회사 이 분야에서는 그래도 글로벌 1위야.”

“회사가 1위지, 오빠가 1위는 아니잖아.”

“그래도 딱히 다른 회사 가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어. 궁금한 회사가 없어.”

“그래~”


이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대화는 늘 이런 패턴으로 끝났었다. 만족하며 다니고 있는 회사를 굳이 박차고 나오라고 할 이유는 없었으니까. 그런 그가 올해 처음으로 회사 생활에 대한 회의감을 토로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회사가 아닌 회사원으로의 삶, 인간으로서 본인의 삶에 대해서. 한 번 구멍이 뚫린 마음은 좀처럼 메워지지 않는 것 같았다. 심지어 회사생활에 동기부여를 해보겠다며 마지막 시도로 중고차까지 샀지만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결국 지금은 내가 잘 타고 다니고 있다.) 그렇게 3개월 정도 고민과 대화를 거듭했다.


그리고 5월 초 어느 날 저녁 남편에게 카톡이 왔다. “퇴근하고 술 한잔 할까?”


‘아, 오늘이구나. 올 것이 왔구나. 오늘 마침표를 찍겠구나.’

 

결전의 날 밤의 그 이자카야

동네 이자카야에서 만난 남편은 지난 시간 동안 우리가 나누었던 이야기를 곱씹으며 정리된 본인의 마음과 계획을 말해주었다. 인간으로서의 자존감, 늘 마음속에 품어왔던 요식업에 대한 꿈, 현실적인 상황들과 방법에 대해서. 반박할 이유도 마음도 없었다. 내심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우직하게 한 회사에서 희로애락을 느끼는 그가 존경스럽기도 했지만 가끔은 한 우물에 갇혀 있는 건 아닌가 답답하기도 했으니까. 그런 그가 스스로 틀을 깨고 나와 도전을 하겠다는 데 막을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또 나중에라도 과장님 사모님보다는 코딱지만 해도 대표님 사모님 소리 듣는 게 더 있어 보일 테니까?


그다음 날, 그는 회사에 퇴사 의사를 전달했고 수차례의 면담과 인수인계 과정 끝에 마침내 자유의 몸이 되었다.


배웅따위 없는 쿨한 카톡 이별



결혼 3년 차,

남편 나이 35살,

그는 대기업을 때려치우고

꿈을 이루러 고향으로 떠났다.


그를 믿는다.

하지만,

그래도 한편으론

돌아버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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