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그는 무슨 생각일까요?
월간부부 생활을 한 지 1년 하고도 4개월이 되었다.
그간 지극히 내 입장에서의 생각과 입장을 기록했었는데 말 그대로 우리는 월간부부 생활을 ‘함께’하고 있는 것이기에 남편의 이야기도 궁금했다. 대화를 통해서 우리가 그동안 나눈 이야기 외에 그는 지금 현재 시점에서 도대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 걸까? 그게 궁금했다.
그래서 남편을 인터뷰했다.
남편에게 가장 궁금했던, 혹은 이미 대충은 알고 있으나 그래도 제대로 정확하게 알고 싶고 직접 듣고 싶은 질문을 던졌다. 물론 물리적 거리로 인해 직접 만나서 인터뷰를 할 수는 없어서 서면으로 인터뷰를 진행했고 답변에 대해서 더 궁금한 내용은 전화로 물어보고 우리가 그간 나눴던 대화를 통해 덧붙였다. 즉, 남편이 서면으로 답변한 대답에 이리저리 MSG를 치긴 쳤다. 그래도 최대한 그가 답한 그대로를 살리려고 노력했다.
1. 결혼하고 3년 만에 둘이 마련한 집을 떠나 직장도 그만두고 300km 떨어진 곳으로 가겠다는 다짐을 했을 때, 그때의 심정은?
그간 와이프가 쓴 글을 보면 압축되고 삭제된 내용이 많아서 짧은 시간 내에 다짐하고 결정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그건 아니었다. 실행을 하기 전부터 2년 정도 심각하게 고민의 과정을 거친 다짐이었다. 막상 최종적으로 다짐을 하고 다니 실행에 옮기는 건 확실히 짧게 걸리긴 했다.
요식업을 하고 싶었기에 직장을 그만두고 요식업에 대한 경험이 필요했는데, 어디서 그 경험을 쌓을지가 굉장히 큰 고민거리였다. 서울에서 무작정 아무 업장에나 들어가서 완전 밑바닥, 소위 말하는 설거지하는 것부터 시작할지 노량진 수산시장에 들어가서 정말 터프하게 배울지, 아님 고향에 계신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업장(업장이라고 하니 굉장히 그럴싸해 보이지만, 사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동네 횟집이다.)에서 경험을 쌓을 것인지를 두고 오래 고민했다.
궁극적으로 나는 요리사가 되고 싶다기보다는 요식업을 경영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이기 때문에 최종적으로는 부모님 업장에서 경험해보는 걸 택했다. 수산물을 손질하는 방법을 배우면서 직간접적으로 업장을 운영해 보는 것이 여러 면에서 효율적일 것이라 판단했다. 그래서 신혼집에서 300km 떨어진 고향행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심정은… 좀 뭐랄까 복잡하고 겁이 났다. 다른 단어는 잘 못 찾겠다.
큰 꿈을 안고 대도시로 상경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다시 작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건데 많은 걸 가진 건 아니지만 이걸 다 내려놓을 수 있을까가 겁이 났다. 인 서울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노력해서 떠났던 곳이다. 나름대로 대학 생활도 열심히 했고 1년 동안 미국에서 인턴 경험도 쌓았었다. 그렇게 어렵게 대기업에 입사해서 7년을 보냈다. 승진을 눈앞에 두고 있었고 비로소 수도권에 무사히 안착한 매우 안정적인 시기였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0으로 돌아가야 하니 비장하기도 했고, 무모한 오기가 생기기도 했었다.
결론은 뭐 어쩌겠나 이미 결정한 걸!
긍정 회로를 무한하게 돌렸고 더 행복하고 건설적인 미래를 위한 한 스텝 후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인생은 기니까.
2. 월간부부 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들거나 어려운 점은?
이건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외로움이다.
가끔 속 모르는 와이프는 가족들과 고향 친구들이 있으니 괜찮지 않냐고 하지만 그건 다른 이야기인 것 같다. 고향에 있는 친구들도 다들 직장과 가정, 아이가 있기 때문에 각자 사는 게 바쁘다. 특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 이후 쭉 서울, 수도권에서만 생활했다. 대학교 때부터 직장을 다니면서 만난 모든 인적 인프라가 서울에 있고 그들과 정서적 공감대를 나름 찐하게 유지하며 지내왔다. 현재 이곳에서는 같이 일하는 직원 몇 명 또는 가게 운영과 관련된 업자분들 이외에는 사적인 유대관계가 거의 없다.
무엇보다 10년 넘게 옆에 있었던 와이프가 없는 게 가장 큰 외로움이다. 이건 사랑하는 연인 간의 관계에서의 외로움도 있지만 와이프와 내가 함께 만들어 놓은 ‘내가 만든 진짜 내 가족’과 떨어져 있다는 게 큰 것 같다. 감정적으로는 정말 매일 외롭다.
3. 반대로 월간부부 생활을 하면서 좋은 점 혹은 더 좋아진 점은?
솔직히 좋은 점이 별로 없다.
흔히들 주위에서 주말부부/월간부부라고 하면 신이 내려주신 기회다라며 엄청 부러워하는데 혼자 있으면 뭐 할게 별로 없다. 내려오기 전에는 퇴근하고 와이프랑 시간 맞춰서 집 근처 이자카야에서 간단히 한잔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주말에는 교외에 한적한 카페에 앉아서 책도 읽고 낮잠도 자면서 소소하게 보냈었다. 그런 일상적인 생활을 혼자 하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다. 혼자 하더라도 그때 그 느낌이 나지 않는다.
굳이 한 가지 좋은 점이라 하면 여기서 뭐 어떤 짓을 하더라도 잔소리 들을 일이 없다는 건데... 이 또한 이제는 좀 듣고 싶을 정도로 그리운 잔소리가 되었다.
4. 월간부부 생활을 하면서 후회되거나, 회의감이 들거나, 걱정이 되는 점은?
결혼한 와이프를 혼자 두고 왔다는 게 늘 마음에 걸리고 미안하고, 가끔은 죄책감도 든다.
와이프가 나름 씩씩하게 잘 지내는 것 같지만 그럼에도 남편이 해결해 줘야 하는 일들 혹은 남편인 내가 직접 처리해주고 도와주고 싶은 일들이 이 종종 생기는데, 이럴 때 내가 즉각 나서서 해결해 줄 수 없다는 것이 생각 이상으로 미안하다.
특히 올해 4월에 키우던 강아지가 갑작스럽게 우리 곁을 떠났다. 재택근무가 활성화되면서 와이프와 거의 모든 시간을 함께하고 있던 존재라서 와이프의 상실감이 엄청났다. 그날 밤 울면서 덜덜 떠는 목소리로 와이프에게 전화가 왔다. 그 순간 내가 옆에서 무언가를 해줄 수 없다는 것이 굉장히 안타깝고 슬펐다. 그땐 정말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멀리 떨어져서 이러고 있나 회의감과 우울감이 많이 들었다.
그 외에도 사실 여러 가지 걱정은 엄청나게 많다. 떨어져 지내는 것에 대해서 양가 부모님이 우리 눈치를 보시느라 직접적으로 말은 못 하시지만 걱정을 많이 하고 계신 걸 알고 있다. 가끔 아주 조심스럽게 부부가 이렇게 오래 떨어져 있으면 되냐, 언제 다시 합칠 거냐 등등 질문을 계속해서 던지시는데 아직은 제대로 답변을 드릴 수 없다는 게 나도 아쉽다.
5. 외로움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했는데, 가장 외로웠던 순간은 언제였나?
어느 순간을 뽑기는 어려운데... 일적으로 스트레스받을 때인 것 같다. 같이 회포를 풀 수 있는 사람이 없다.
회사에 다닐 때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는 날이면 같은 일을 하는 회사 동기랑 한잔 하면서 상사 욕을 하거나, 와이프랑 한잔 하면서 스트레스 주는 대상을 잡아 돌렸는데... 이제는 그럴 대상이 없다는 것이다.
매일매일 흔들리는 실적과 매출에 아직 휘청거리는 초보 자영업자라 함께 이야기를 나눠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소소한 일상의 희로애락을 같이 공감할 사람이 없다. 그리고 그 사실을 상기할 때마다 조금씩 더 외로워지는 것 같다. 그런데 아마도 모든 자영업자가 다 이렇지 않을까…. 익숙해지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6. 월간부부 생활이 우리 부부에게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와이프가 20살, 내가 25살. 대학생 때 만나서 지금까지 거의 항상 붙어있었다. 그 시간이 벌써 햇수로 12년 째다. 그래서 사실 와이프는 나한테 당연한 존재였고 결혼하고 나서는 집에 가면 만날 수 있는 사람이라서 그 익숙함에 더 무뎌졌던 것 같다.
그런데 그 당연했던 존재가 이제는 제일 당연하지 않은 귀한 사람이 되었다. 한 달에 한두 번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사람이 된 것이다. 그렇다고 막상 만났을 때 엄청 스페셜하게 대하면서 받들어 모시는 건 아니지만... 와이프를 만나기 위해 미리 일정을 잡고, 그 시간을 최대한 알차게 보내고 싶어서 같이 살 때는 크게 고민하지도 않았던 데이트 코스도 짜 보고 가고 싶은 곳도 미리 정해놓는다.
여담으로 뭘 먹으러가 거나 보러 갈 때마다 입버릇처럼 '이거 우리 세라가 좋아하는 건데. 이거 세라가 진짜 잘 먹는 건데.'라고 했더니 어머니가 그 꼴을 보고 '저거 저거 저거는 맨날 세라세라세라... 고만 좀 해라!'며 면박을 주기도 하셨다ㅋㅋㅋㅋ 확실히 더 많이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많이 애틋하다.
떨어져 살면서 내 와이프는 정말 나한테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는 것을 매일 느끼며 살고 있다.
7. 앞으로 월간부부는 어떻게 될까?
현재 하고 있는 일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월간부부의 그림이 아주 많이 달라질 것 같다.
가게를 오픈하고 사상 최악의 코로나 역풍을 맞았다. 물론 최악의 상황에서도 고군분투하고 있고 나름 안정적으로 운영을 하고 있으나, 개인적인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최우선 과제는 첫 가게를 안정적으로 안착시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업장 운영을 전적으로 맡길 수 있는 직원의 역량을 키우는 것이 목표이다. 이 두 가지가 어느 정도 해결되면 사업화에 단계에 들어갈 예정이다.
사업화의 방향에 따라 아마도 월간부부의 밑그림이 새로이 그려지지 않을까.... 좀 예쁘고, 행복하고, 단란하고, 안정적으로 그려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보다 남편의 이야기는 진중했고, 또 일부러 나 듣기 좋으라고 한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아주 나에 대한 애정과 애틋함이 팍팍 묻어난 인터뷰였다. 사실 질문을 던지고 나서 이렇게까지 자세하고 솔직하게 이야기해 줄 거라고 기대하진 않았는데 말이다.
결론은 아직 우린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그래도 서로 한눈팔지 않고 애틋해하며 잘 살아가고 있다는 것. 뭐, 그거면 됐지.
2주 뒤에 또 만나자 남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