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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귿 Sep 22. 2024

러닝을 하다가 보이는 것들


어제 밤늦게 먹은 것들이 밤 사이에 소화가 덜 되었다.

나는 편안하게 자는 줄 착각하고 푹 잤다고 생각하겠지만 내 뱃속은 밤 새 일을 하느라 힘들었을 것 같다.

미안했다. 네가 밤 새 고생했을 것이니 깨달은 김에 고통분담을 해 보겠다고 운동복을 입고 나갔다.


 스포츠 브랜드에서 바지를 하나 샀는데 바지 위로 넓적한 허리춤 부분에 작은 주머니에 지퍼가 달린 부속품이 있었다. 사자마자 불필요해 보여서 바지랑 분리시켜서 옷방 구석에 던져놓고 바지만 내내 입었는데 그게 생각이 나서 바지에 붙여보았다. 핸드폰도 들어가지 않을 만큼 작은 허리춤이어서 불필요하다 생각했는데 핸드폰이 쏙 들어가면서 늘어짐이 제법이다. 기분 좋게 손을 가볍게 하고 나섰다. 

 어젯밤에 극한호우가 있었다. 예보에도 보기에도 비소식이 없어서 나와봤는데 비가 온다. 큰맘 먹고 뛰기로 먹은 마음은 의욕을 잃었고 집에 돌아갈까 하다가 걸어보자 하고 우산을 다시 가져와서 걸었다. 어라? 비 오는 중에도 뛰는 사람들이 제법 된다. 우산을 접어 왼손에, 땀 때문에 불편한 안경을 오른손에 쥐고 뛰었다. 

 비도 맞고 바람도 맞는다. 더워서 흘린 땀인지 높은 습도 때문에 생긴 땀인지 그걸 다 바람이 씻어준다. 세상에 너무 시원하고 기분이 참 좋았다. 이런 맛에 뛰는구나.


 새삼 비 온다고 주저하지 않고 우산을 챙겨 나온 내가 기특하다. 바람도 고맙다. 하천을 따라 걷는 중 어제 종일 극한호우를 버티고 버텨낸 풍경들이 보인다. 사람들은 튼튼하고 안전한 집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각자의 생활을 하다가 간간히 뉴스도 보면서 걱정도 하면서 보냈을 어제. 하천 공원의 바닥의 돌과 나무 모든 것들이 온몸으로 받아내고 버티다가 나름대로의 모습으로 오늘을 맞이했다. 꿋꿋이 마주 보며 버틴 것들도 있었고, 그렇지 못한 것들도 많이 보였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든지 모든 것들이 똑같은 오늘을 마주하고 있다. 

 모든 것들에 응원하고 싶은 풍경이었다. 버텨내거나 그러지 못한 나무들, 갯벌처럼 된 농구장 코트들, 풍파를 겪으며 드러난 돌들도, 돌들이 드러나면서 그 아래에 있던 이름 모를 풀 까지도 각자의 오늘을 맞이하며 각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자연의 이치가 우리가 가장 닮아야 할 자연의 모습 같다. 

나에게 집중하고 내 몸을 돌아보고 아침 일찍 나섰더니 이런 풍성한 아침이 생겼다.

오늘 하루도 감사합니다. 제 자리에서 넘칠 필요도 없이 제 할 일을 하며 잘 지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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