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님의 치매가 몇 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아직은 혼자 생활하시는데 큰 어려움은 없지만 타인과 약속을 정해서 지키거나 사회생활을 하시기엔 조금 힘들다. 미리 한 약속을 잘 기억하시지 못하게 된 후부터는 미리 약속을 하지 않고, 어머님댁에 도착하기 30분 정도에 전화를 드린다 " 밥 먹으러 갈 테니 10분 있다가 집 앞으로 나오세요."
언제부턴가 고맙다는 말을 자주 하신다. 볼 일이 있어서 통화를 해도 말미에는 고맙다.
외식을 하며 밥을 사주시면서 헤어질 때에도 고맙다. 처음에는 혼자 살고 심심한 노인에게 안부를 물어봐줘서 고맙다고 알아들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쓸쓸함과 외로움이 어렴풋이 짐작이 되어도 전화를 자주 드리는 게 왜 쉽지 않은지...
요 며칠 새벽마다 남편에게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본인이 새벽에 전화를 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시고 계시는 것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 전화기를 확인하시고 통화목록에 새벽에 아들과 통화한 기록을 알고 아들에게 무슨 일 있었냐며 되려 물으셨다 했다. 그러고 나서 새벽에 전화를 해서 행여 내가 잠을 설치지는 않았는지 걱정돼서 연락을 했다 하셨다. 전화를 끊으면서 말했다. "저도 고마워요 어머님 눈도 좋으시고 관절 아픈 곳 없이 움직이고 싶은 만큼 마음껏 다니실 수 있어서 건강하셔서 고마워요 어머님."
통화를 마치고 새삼 운동하러 가면서 보이는 가을하늘과 각양의 구름들 이것들을 아무 불편과 걱정 없이 보고 느낄 수 있는 내 마음의 상태와 그냥 이 모든 것들에게 감사하고 감사했다. 큰 우환 없이 각자 잘 살아내는 것이 그냥 이루어지는 게 아니겠지. 모두들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듯 그 균형을 지켜내느라 몹시 애쓰고 노력하고 있지만, 가끔 대면하거나 연락할 때 우리는 서로의 건강하고 안녕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사소한 걱정과 위로들을 나누며, 그렇게 가족들은 자기 자리를 잘 지켜내며 보이지 않지만 자기들의 끈을 항상 돌보아 서로에게 단단한 끈이 되어주는 것 같다. 연결되어 있는 모든 가족들의 평온을 바란다.
고맙습니다. 저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끈을 잘 지켜내며 지내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