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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귿 Jul 25. 2024

오롯이


 오랜만에 제주도로 여행을 다녀왔었다. 

한 때는 '제주도 아이들과 가볼 만한 곳' 등을 무척이나 찾아 헤맸었다. 

SNS를 열심히 들여다보며 식당, 관광지, 박물관, 체험거리, 그것들 간의 유용한 동선도 파악해 가며 정성스레 계획을 짜고는 했다. 코로나시절이었다. 열 번째 결혼기념일을 맞이하면서 신혼여행지에 다시 가자는 약속은 어렵게 되었고 제주도로 기념하게 되었다. 신혼여행지를 다시 찾지는 못 했지만 시기가 시기인 만큼 공항에 두 발로 직접 서 있는 것 자체가 너무나 설레었고 감동이었다. 비행기 이륙을 기다리며 착석하고 앉았는데 그때의 기장님 인사가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코로나로 다들 힘든 시기인데 같이 비행하게 돼서 기쁘다. 이 비행기는 원래 국제선용으로 준비했던 비행기였는데 시기가 어려워 두고두고 있다가 제주행으로 사용하게 된 비행기였다고, 원래 가기로 했던 곳을 비행하고 싶고, 모두 같이 회복될 날을 바란다고, 안전하게 모시겠고 안전하게 다녀오시라는 안내방송이 비현실인 것처럼 따뜻했다. 공항에서 마음이 한 번 뭉클했고, 안내방송을 듣고 눈물이 안 날 수가 없었다. 기내가 진공상태처럼 조용해졌었다. 얼마나 많은 마음들과 생각들이 그 기내를 가득 채웠을까. 이런 따뜻한 위로를 받고 시작하는 여행이라니 시작부터 감사의 연속이었다. 

 도착하고 나서 끼니는 무조건 포장주문 해서 해안도로를 달리다가 적당한 곳이 나오면 돗자리를 펴고 아무렇게나 먹었다. 관광이랄 것도 없었다. 달리다가 좋아 보이면 멈추고, 수영하고 그때의 제주도 여행이 제일 재밌었고, 힘들었던 기억이 하나도 없었다. 그때 이후로 제주도를 맞이하는 우리 가족의 자세가 달라졌다. 아이들이 수영을 제법 하고 난 후부터는 제일 큰 캐리어에 물놀이 용품만 한가득 싣고 그 흔한 맛집, 관광지 하나 가지 않고 오롯이 물놀이만 즐기다 적당한 곳에 들어가 끼니를 해결하는 여행을 한다.

 이번 여행도 날씨가 궂었지만 마음 가는 대로 몸이 갔다. 3일째 바닷가에서 쉬고 있는 동안 사람들을 멍하니 살펴보게 되었다. 관광은 제쳐두고 사진 찍는 것에만 몰두하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젊은 남녀가 핸드폰 하나 없이 오롯이 수영을 하고 무엇을  찾는지 각자 한 참 동안 모래 한 알 한 알을 살핀다. 우리 아이들도 그저 바닷속 세상에 빠져서 고개가 밖으로 간간이 나올 뿐 한 참동안이나 둥둥 떠 있다. 남편도 아이들 상관하지 않고 오롯이 물놀이에 여념이 없다. 무의미해 보일지라도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 모래놀이 도구로 같은 동작은 반복하는 아이들도 모두들 오롯이 자기만의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오롯이라는 단어가 생각났고, 앞으로 이 단어를 말할 때 그때의 잔상들이 떠오를 것 같다. 

 맛있고 가격이 높은 식당, 멋지고 좋은 환경에서의 숙박이나 체험, 관광 하나 없이 몸으로 오롯이 느끼고 즐기는 아이들도 참 기특해 보인다. 내가 사랑하게 될 단어가 하나 늘었다. 오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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