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준비, 이렇게 합시다!
자연주의 출산을 준비하다 자연분만은커녕 유도분만 끝에 제왕절개로 출산한 엄마가 고합니다.
출산준비, 이렇게 합시다 !!
자연주의 출산, 모유 수유, 천 기저귀.
좋은 엄마, 따뜻한 엄마, 우리 엄마 같은 엄마.
쇠사슬이 되어 나를 옭아맸던 헛된 소망들이여…
절대 안정이 필요한 초기를 지나 안정기로 접어든 16주부터 하루도 거르지 않고 요가를 했어요. 자연 분만을 하고 싶었고, 보다 수월한 출산을 위해 주 2회 수영을 다니며 건강한 음식을 챙겨 먹었습니다.
예정일이 다가올수록 수많은 출산 후기를 검색하고 다큐멘터리를 찾아봤어요. 그리고 우리는 자연주의 출산을 선택했습니다. 어두운 방에서 부부가 오롯이 함께 하는 출산.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동시에 고요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아이를 만나고 싶었습니다.
햇살이 들어오는 커다란 창, 자그마한 정원, 낡은 소파. 제가 선택한 조산원은 근사하지도, 세련되지도 않은 곳이었어요. 조금은 허름하고 촌스러운 곳. 하지만 그런 투박함이 주는 푸근함이 좋았어요. 신랑에 대한 정보를 기입하는 칸이 있는 남다른 차트도, 과잉 진료 없는 아날로그식의 따뜻한 진료도 편안했고, 그렇게 우리는 가장 자연스러운, 우리만의 만남을 기다렸습니다.
배가 불러올수록 활동량을 늘려갔어요. 수영 대신 걷기를 시작했고, 남편과 함께 라마즈 호흡법을 배우며 드디어 출산 D-30. 36주가 시작되는 날 아침, 눈도 제대로 뜨지 못 한 채 부스스 일어나 화장실에 갔다가 이슬을 보게 되었어요. 당황한 마음을 가라앉힐 새도 없이 양수가 새기 시작했고, 생각지도 못 했던 조산을 하게 되었습니다.
조산원 출산은 37주 이상의 정상 분만만 가능하기 때문에 자연출산이라는 계획은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었어요. 양수 파열이 확인된 즉시 입원을 하게 되었고, 촉진제를 맞으며 유도 분만을 시작했어요.
항생제를 함께 맞으며 자궁 수축이 오길 기다렸지만 이틀이 지나도 반응은 전혀 오지 않았고, 시간이 갈수록 높아지는 감염의 위험에 일요일 오후 4시. 더 이상 기다릴 수는 없다는 의료진의 결정과 우리의 동의가 이뤄지자마자 저는 수술실로 옮겨졌습니다.
각자 맡은 일을 하느라 분주한 의료진, 여기저기 쌓여있는 의료용품, 너저분하고 정신없는 수술실 한가운데에 자리한 차갑고 딱딱한 수술대. 점 하나도 부끄러워지는 조명 아래에서 마구 발가벗겨진 채로 등을 구부려 마취를 하고, 제모를 하고, 소독을 하고, 소변줄을 꼽고…
퇴근 후의 일정을, 그날 본 신문 기사를 이야기하는 의료진의 목소리가 웅웅대며 아득하게 울려왔어요. “돌아누우세요. 안 떨어지니까 걱정 말고 옆으로 더 가세요. 다리 올리세요.” 아무 감정 없이 내던지는 지시를 따라 몸을 뒤척였습니다. 나는 그저 출산 공장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려진 ‘산모 12’의 고깃덩어리일 뿐. 그날, 그때, 그곳에는 그 어떤 따스함과 위로, 격려와 설렘, 고요와 평화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뱃속의 모든 장기들이 마구잡이로 뒤집히는 통증 끝에 아이가 나왔고, 수군거리는 목소리와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어요. 내 눈앞으로 데려온 아이의 얼굴을 잠시 마주한 뒤 후처치를 받고 이동 침대에 실려 돌아온 입원실. 그리고 마주한 그이의 얼굴.
비몽사몽 희미한 시야 속에 보이는 그 얼굴이 어찌나 반갑고 서럽던지요. 수술실에 들어간 순간부터 꾹꾹 참아왔던 눈물을 터트렸습니다. 너무 외롭고 서러웠다고, 비참하고 참담했다고, 굴욕적이고 수치스러웠다고… 당신이… 너무 보고 싶었다고…
와르르 무너진 마음은 산후 우울증을 불러왔고, 들어본 적도 없었던 젖몸살과 힘겨운 모유 수유의 벽 앞에서 또 한 번 좌절해야 했어요. 출산의 고통은 우스우리만큼 끔찍한 고통을 선사한 젖몸살로 돌처럼 굳어 버린 가슴, 지나치게 짧은 유두, 9개월 만에 밖으로 나온 작은 아이. 이 모두는 모유 수유의 성공을 가로막는 최악의 조건이었지만 저는 매일 밤 고통의 눈물을 흘리면서도 끝까지 수유를 포기하지 않고 시도했어요.
아기는 잘 나오지 않는 젖 때문에 먹다 지쳐 잠들기를 반복했고, 한 번 수유를 하는 데 1시간이 넘게 걸렸어요. 자꾸 잠드는 아이를 깨워 젖을 물리고, 트림을 시키고, 재워서 눕히고 30분이 지나면 또다시 수유할 시간의 무한 반복. 낮도 밤도 없이 2시간에 한 번씩 젖을 먹는 신생아를 데리고 1시간씩 수유를 하고 30분 쪽잠을 자는 생활을 반복하면서 우울증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습니다.
턱없이 부족한 수면 시간은 아직 제대로 회복하지도 못한 몸을 갈수록 피폐하게 만들었지만 저는 하루에도 대여섯 번씩 손빨래를 하며 천 기저귀를 사용했어요.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뭐든 해주고 싶다는 소망. 좋은 엄마, 부지런한 엄마, 우리 엄마 같은 엄마가 되고 싶다는 결심. 그 아름다운 사랑과 다짐은 무서운 집착으로 돌변해 나를 파괴했습니다.
아이와 함께하는 일상의 설렘은커녕 하루 해가 뜨는 게, 오늘도 어김없이 하루가 시작되었다는 게 끔찍해서 죽고 싶었던 시간을 지나온 뒤에야 깨달았어요. 내가 자연분만을 하지 못 한 것을 ‘실패’로 여기며 모유 수유와 천 기저귀 사용을 통해 만회하려 했다는 것을요.
왜 나는 꼭 자연분만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37주를 채우지 못 하고 조산을 할 가능성, 응급수술로 제왕절개를 할 수 있다는 생각, 아이와 엄마만 건강하다면 그 어떤 방법의 출산이든 정상 출산이며 그것만으로 감사한 일이라는 마음의 준비. 왜 나는 그런 준비를 하지 못 했던 걸까? 나는 왜 그렇게 모유 수유와 천 기저귀에 집착했을까?
+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