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에 맞서는 반항하는 인간
이 세상은 비합리투성이다.
어제의 다른 오늘의 나의 모습,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의 웃음 띤 대화 속,
어쩐지 모를 가족의 낯선 모습, 저 너머 투명한 유리 너머 웃으며 통화하는 여학생, 신호 대기 중 곧 연명할 노인 옆에는 부모 곁을 떠난 철없는 어린아이.
요즘에 많이 들려온다.
'자살하는 사람'
예전의 나는 지금과 사뭇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철이 들어서가 아닌, 사람과 세상을 관觀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의미 없이 태어난다.
다윈은 이렇게 말한다.
"진화에는 목적이 없다"
하지만 인간은 태어나서 의미를 부여하고, 희망, 꿈, 자유를 소망한다.
태어나 보니 자유는 보편적인 타당성에 어긋나는 것일 뿐이고, 희망은 오늘 한 사람의 희생의 꽃피움이다.
모두 태어나서 결혼하지 않고 아이도 낳지 않고 각자 아는 채 하지 않는 그런 매이는 삶을 살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사실 끔찍한 이야기지만, 죽는 순간은 홀로 고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살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무수히 더 많다.
큰 의미를 두지 않고, 무심하게 살고, 무심하게 상대를 대함은 시지프스가 형벌을 받는 그 행위와 비슷하다.
나는 그 상대를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견고해진다.
나는 그 상대를 시기하면 시기할수록 나의 불행을 자초한다.
반항아는 일명 패륜아로 불리듯, 반항아는 진실을 논할 수 없는 인간이고, 도덕적인 인간은 진실을 표방한 어리석음이다.
아무 의미 없는 이 우주에서, 시지프스처럼 몸에 흙을 묻히고, 땀 냄새로 처박힌 육체는 그 어떤 의미도 없다.
그렇게 집착하며 살 이유가 단연코 없다는 하루살이 인생은 인간으로서 자유의 형벌이 내려졌다.
그랬던 우리의 카뮈는 교통사고로 즉사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