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단은 딱 죽을 것 같던 두달이었다. 두달동안 나는 회사, 집, 이동하는 차, 카페 등 내가 존재하던 어느 곳에서도 실존하지 않았다. 숨막히게 일하고 그러다 진짜 숨이 막혀서 책상을 박차고 나가는 순간의 반복이었다. 난 바빠서 그런 줄 알았다. 바쁘고 일에 치여서 그런 줄만 알았다. 그래서, 바쁜 것이 지나가면 다 괜찮아질 줄 알았다. 다시, 살아있길 잘했다고 생각 할 날이 다시 돌아올 줄 알았다. 그런데 힘들었던 기억이 잔상으로 남아서 계속해서 나는 계속 존재하지 못하는 존재였다.
그러다 문득, '죽진 않을 것이지만.. 죽으면 편해질까?'란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그 생각의 순간 지난 몇개월의 내 모습을 곱씹어봤다. 닌 꽤 많이 출근길에 사고가 나길 바랐다. 큰 사고가 나서 죽음과 삶의 경계에 놓일 정도가 되면, 지금 이 고민들이 아무것도 아닌게 될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또는 하루에 커피를 몇잔씩이나 많이 먹어서 이대로 위에 탈이나서 입원을 하고싶다고 생각하거나, 커피따위가 아니어도 그냥 내 건강을 해치는 예전이었음 안 했을 행동들도 서슴없이 했다. 이러다 내 건강이 나빠져도 아무렇지 않을 것 같았다. 아니, 오히려 해방감이 들 것 같았다. 다시말해, 사고가 나거나 또는 질병이 생겨 심각하게 아파지길 바랐다. 그래서 몇 개월 동안의 나는 밥을 엄청 많이 먹거나 아님 안 먹거나 둘중 하나였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서는 누워서 휴대폰만 보며 안씻고 잠들기 일쑤였고 그 동안 집안일은 멀리하며 집은 엉망이 되어갔다.
그러니까 난 정말 극도로 소극적이고 비겁한 수준의 자해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직접적으로 나를 해칠 용기는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를 돌보지 않는 방면으로 자해를 이어나갔다. 결코 건강을 돌보지 않고 스스로가 좋아하는 걸 행하지 않고, 스스로의 마음을 살피지 않고 그냥 시간만 지나가길 바라는 상태로 서서히 느리게 자해를 이어나갔다.
그러면서 얼굴살이 눈에띄게 빠지고(몸무게는 그대로였다.) 계속 목이 타는 느낌이 들었다. 사춘기 이후 처음 부정출혈도 생겼다. 사무실 책상에 앉아있으며 열심히 일을 하다가도 갑자기 미친듯이 심장이 뛰었다. 심장이 뛰기 시작하면 체감 2시간 넘게 계속 지속되는 것 같았다. 그러다 업무 실수도 왕왕 했다. 실수를 발견하면 심장이 더 뛰었고, 그럼 몸까지 살짝살짝 떨렸다. 그러다가 못견디고 사무실 밖을 나간다. 나간다고 어디 갈 곳은 없다. 유일한 쉴 곳은 여자 장애인 화장실. 거긴 그냥 일반 화장실 칸보다 훨씬 넓으니까, 그 곳으로 간다. 가서 변기에 앉아있는다고 생각이 환기되지 않는다. 당연하다. 그럼 그냥 앉아서 좀 울다가, 아님 한숨 좀 쉬다가 그냥 막막함을 다시금 느끼다가 또 그 책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책상에서 일을 하다 야근을 할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고, 어찌됐든 다시 집으로 들어가면 오늘 일에 치여서 못다한 자책과 실망을 보따리에 한아름 싸서 집으로 들고 들어간다. 집에가서 씻지도 못하고 대충 옷만 벗고 침대에 드러누워서 보따리를 풀며 내 하루 일련의 행동을 반추하기 시작한다.
'그 때 좀 더 참을걸. 내가 너무 화를 냈나? 그 때 한번만 더 알아보고 말씀드린다고 말할 걸. 아는 척 하지 않을걸. 팀장님께 너무 정색했나? 아, 너무 주눅들어서 말하지 않을 걸. 그 때 사수한테 한마디라도 더 친근하게 할걸. 죄송하다고 바로 사과할걸. 당당하게 내 의견을 말할걸. 난 왜 이렇게 사회성이 없을까. 난 왜 이런거가지고 집에와서도 고민할까. 난 왜이렇게 연약할까. 난 왜 이렇게 게으를까. 왜 미리 알아보지 않았을까. 이래놓고 담당자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 부서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다 생각하지 않을까. 나를 무능하게 바라보지 않을까. 왜 이렇게 일을 꼼꼼하게 못할까'
시작된 자책은 쉽게 끝나지 않고 반복되며 지속된다. 하루를 후회하다보면 어느새 어제, 일주일 전, 일년 전, 어릴적 기억까지 끌고와서 후회한다. 기껏 누워서 하는 것이 그런 것이다. 습관화된 자책을 이어가다보면 그에 지쳐서 잠들고, 행운같은 교통사고를 바라는 출근시간이 다시금 찾아온다. 불행히도, 사고없이 안전한 출근을 하게되고 그럼 또 뛰는 심장과 여자 장애인 화장실이 공존하는 업무시간이 찾아온다. 그리고 또 새로 쌓이는 자책 한 보따리.
그래, 지옥이다.
그러나 내가 철저히 만든 지옥.
철저히 내가 만들고 내가 나를 이 지옥에 가두고 있다는 걸 알았다. 지금 나를 아프게 만드는 건 회사 사람도, 회사 일도, 주변 환경도 아닌 나 스스로때문이었다.
딱, 죽겠다 싶었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나를 그만 탓하고 싶은데 나를 탓하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그래서 난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심리상담소를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