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그러니까 바로 단독주택을 짓기로 결심했다.
집을 짓는다는 말을 들은 사람들은 꼭 이렇게 묻더라. “주택에 살아봤어?” 물론이지. 네다섯 살 무렵까지 마당과 다락이 있는 할머니 집에서 살았다. 워낙 어렸을 때라 어렴풋하지만. 진순이라는 진돗개의 등에 올라타 놀던 마당, 반 층 정도 낮은 주방과 좁고 어두운 계단을 올라가야 했던 온갖 물건으로 가득한 다락, 마당 한편의 장독들과 툇마루 위에 올려져 있던 요강. 세 살짜리 동생이 빠지는 바람에 온몸에 똥독이 올라 죽을 뻔했다는 푸세식 화장실도 기억난다. 가세가 기울 대로 기울어 주택에서 셋방살이를 해본 적도 있다. 하지만 단독주택에서 추위와 더위를 경험하고, 벌레에 기겁하고, 마당이며 옥상이며 직접 관리하는 번거로움을 겪어본 적이 있냐는 의미의 질문일 테니, 나는 답한다. 단독주택에 살아본 적이 없다고.
질문 다음엔 걱정인지 타박인지 애매모호한, 그래서 기분도 아리까리해지는 말이 날아온다. “안 살아봤으니 짓는다는 말이 나오지. 겁도 없다.” 그리고는 한마디 덧붙인다. “한 번 살아봐. 사람들이 다 아파트 살고 싶어 하는 데는 이유가 있어.” 평생 아파트에서만 살았던 사람들의 말이기에 크게 귀담아듣지는 않는다. 본가가 주택이거나 시골에서 자란 사람들의 말은 좀 귀 기울여 듣는데 그들도 결국 하는 말은 비슷하다. “주택 힘들다.” 아, 내 주변에는 왜 행복한 주택살이를 하는 이가 없는 것인가.
그런데 정작 나에겐 말리는 사람들을 설득할 만한 그럴듯한 사연이나 핑곗거리가 없긴 하다. 특별한 사건이나 계기가 있어서 집을 짓겠다고 결심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원래부터 땅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모아둔 돈도 없어 텅장이나 마찬가지라 겁도 없고 무모한 게 사실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집을 짓는다는 결심을 한 것인가.
우리 가족은 다섯이다. 서른 중후반 부부, 다섯 살 딸에 나이 먹은 고양이와 강아지가 한 마리씩. 높은 산이 보이는 아파트 7층에 햇수로 무려 10년째 살고 있다. 신혼집으로 들어온 이 아파트에서 한 번도 이사를 하지 않았으니, 반드시 주택이 아니더라도 이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이사를 가야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엄마 아빠 앞에 한참 뛰기 시작해 층간소음 걱정을 하게 하는 딸. 그리고 늘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는 강아지와 바깥세상이 무서운데 궁금하긴 해서 가끔 현관을 기웃거리는 고양이까지. 온 우주의 기운이 이사, 그것도 오래 꿈꿔왔던 주택으로 모였다.
2016년, 생전 처음으로 땅이 흔들릴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두 마리 동물을 챙겨 계단을 내달려 대피했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퇴근길이었던 남편이 도착한 후에 또 한 번 닥친 여진까지 겪고 나자 안 그래도 지병이 어지럼증인 나는 진동에 더욱 취약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우리 집을 둘러싼 어딘가 다른 집에서 쿵 소리가 나면 화들짝 놀라고, 남편은 “다른 집 문 닫는 소리인 듯.”, “지진 아이다.”라며 지진이 아님을 확인해 주는 일이 지금까지도 일어나고 있다. 작은 진동에도 예민해지고 나니 위, 아래, 양 옆의 벽 너머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이 갑자기 이상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주변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에 안심을 했던 것 같은데, 이제는 자려고 누워도 느껴지는 다른 집의 인기척이 거슬리기 시작한 거다. 그 이후로 남편과 나는 수시로 단독주택에서의 삶을 꿈꾸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당장 땅을 밟을 수 있는 곳을 원헀다. 마당의 크기, 방 개수, 주방의 형태, 창의 모양 등 로또당첨과도 비슷한 느낌으로 ‘만약에 주택에 살게 되면’이라는 대화를 수없이, 제법 진지하게 나눠왔다.
우리 집 베란다로 보이는 산은 영남 알프스로 제법 이름나있다. 바로 이 산이 우리가 살아갈 동네를 결정하는데 한몫을 했다. 늘상 보는 산이 너무나도 명산이다 보니 도심 속의 산은 언덕 정도로만 느껴졌다. 가끔 도심에 있는 아파트에 놀러 가게 되면 베란다로 산이 아닌 도시나 건물이 보이는 것이 낯설어졌다. 게다가 베란다를 통해 들어오는 빛이라고는 달빛뿐이고, 소음은 개구리와 가끔 고라니 소리 정도(라기에는 고라니 소리는 매우 시끄럽지만)인 곳에 살다 보니 밝디 밝은 빛과 시끌 거리는 외부 소음에도 적응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바로 저 산이 보이는 시골에서 계속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결정한 곳은 지금 사는 동네에서 별로 멀지 않아 익숙하면서도 모든 방향으로 산과 들이 보이는 면 소재지다. 면이긴 하지만 행정복지센터가 있는 중심지이고, 하나로마트와 편의점,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차로 5분 내로 다닐 수 있는 나름의 인프라도 갖춰진 곳이라 쉽게 마음을 정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이곳에 집을 짓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주택에 살아보는 경험을 먼저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월세, 전세, 매매까지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이미 지어진 주택을 찾아다녔다. 당근과 교차로, 네이버 부동산을 매일 열어보며 손품을 파는 것은 물론이고, 집에서 가까우니 주말마다 작은 마을들을 돌아다니고 부동산을 찾아가 보는 발품도 열심히 팔았다. 처음에 정했던 마을에서 동심원을 넓혀가며 찾아봤지만 그냥 집은 많은데, 오랜 로망이 철철 넘치는 우리가 살 집은 없었다.
그 와중에 ‘농촌주택개량사업’이라는 정부의 사업을 알게 되었다. 농촌 지역에 집을 새로 지을 경우 2억을 2프로의 낮은 금리로 빌려주는 사업이었다. 눈이 번쩍 뜨였다. “이거다!” 이미 선정이 모두 끝난 그 해의 사업 지침을 읽고 또 읽었다. 지어진 주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지으면 되는구나! 사업에 선정된 것도 아니고 심지어 준공 후 대출해 주는 방식이라 집을 짓는 동안 먼저 융통할 자금이 있어야 하는 걸 알면서도 이미 마음은 땅을 파고 집을 짓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지금은 마음에 드는 땅을 발견해 매입을 했고, 2025년 농촌주택개량사업에 선정되었고, 설계를 하고 있다. 건축주가 된 것이다. 첫 삽을 뜨기 전엔, 아니 매 단계마다 이 일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우리의 집짓기 과정을 기록해 본다. 10년 늙지 않는 당연한 만큼만 힘들고, 그 와중에도 즐거운 집 짓기가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