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치님이 내 욕을 하셨다고?

믿을 수 없던 이야기

by 김슬기



내 간절한 태도가 보여서인지 코치님들은 감사하게도 나를 많이 챙겨주셨다.

주변에선 "레슨 일찍 받고 싶으면 슬기 앞 뒷타석에서 쳐. 그래야 레슨 빨리 받을 수 있어" 라며 농담반 진담반 섞인 소리를 할 정도였고, 그런 소리가 나올 정도로 연습이 시작되면, 많은 경우 나를 먼저, 또 오래 봐주시곤 했다.


이미 과정을 겪어본 분들이셔서 그래도 이런 나도 이해해 주시는 거라고 생각했고, 그에 감사한 마음이었다. 그래서 전혀 생각 못했던 일이었다.



스펙도 좋고 실력도 훌륭하신 데다 위트까지 겸비하신, 항상 웃는 얼굴로 봐주시던 코치님이 계셨다.

같은 캠프에 계셨던 코치님은 아니셨지만 가끔 모든 인원이 모일 때, 만나면 많은 이야기를 나눠보진 못했어도 항상 좋은 인상을 주셨다.


시간이 지나 그 코치님이 계신 캠프로 가게 되었을 때, 이제 함께 라운딩을 해볼 수 있게 됐다는 점에 기대가 됐다.


나는 그 코치님을 좋아했다(러브가 아니라, 리스펙 차원에서).

당시 이십 대 후반에, 노력파보다는 타고난 천재 같은 스타일이셨는데, 괴짜 같은 면도 있으셔서 간혹 시범을 보여주시거나, 같이 라운딩을 할 때면 '와.. 나도 저렇게 쉽게 치면서 저렇게 치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늘 생각했다.


그런 분이셨기 때문에 가끔 던져주시는 한마디에도 다 뜻이 담겨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소중하게 새겨들었다.


'저런 분의 사고를 배우면 나도 저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골프를 임할 수 있을지도 몰라'


당시에 난 너무나 절박하게 잘하고 싶었기 때문에, 공을 잘 칠 수만 있다면 뭐라도 하겠다는 각오로 가득 찬 상태였다. 잘 치는 사람들은 모두 우러러봤다.


같은 캠프에서 훈련이 끝나고 수개월이 지났을 때,

훈련이 끝나고 숙소에서 친한 언니와 이야기를 나누다 코치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OO캠프에 있을 때 박코치님하고 라운딩 했었는데 진짜 잘 치시더라. 신기하게 뭔가 되게 대충 툭, 툭 치시는 것 같은데도 다 (핀에) 붙던데?"

내가 말했다.


"그래?"


"응, 진짜 부러워.. 나는 물론 잘 치는 사람은 다 부럽지만 저렇게 연습도 별로 안 하고 그렇다고 매 샷 엄청 신중하지도 않은데 툭, 툭 놀듯이 치면서 잘 치는 사람들이 진짜 부러워.

왜 그런 사람들 있잖아. 막 연습장 오자마자 바로 쳐도 첫 공부터 잘 치는 사람들. 진짜 부러워"


"그래도 난 박코치님 별로.. "


"왜? 재밌고, 잘해주시지 않아?"


"... 너도 박코치님 너무 그렇게 좋게 보지 마..."


"? 왜? 무슨 일 있었어? 뭔데~"


".... 아.... 이거 말해서 너한테 상처받을 것 같아서 말 안 해주려고 했는데.."



'응?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거지?'



"그.. 우리 그 캠프에 있을 때, 코치님들 몇 분 끼리 회식하신 적이 있나 봐, 근데 그 자리에서 뭐 학생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나왔는데?"


"박코치님이 '아~ O슬기 진짜 ㅈㅇㅂㄹㄱ싶어. XX ㅈㄴ 징징거리는 거 짜증 나 죽겠어'라고 하셨었대. 문코치님이 말씀해 주셨어. 네가 그 코치님 속도 모르고 너무 잘 따르니까 아마 너랑 친한 나한테 언질을 주신 거 같아."

문코치님은 그 언니 어머님과 오래전부터 알던 사이셔서 언니와 문코치님은 삼촌 조카처럼 가까운 사이였다.


"... 아... 진짜?...ㅈㅇㅂㄹㄱ싶다고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이런 상황에 나는 어떻게 했을까?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을 것 같은가?


1. 직접 가서 따진다?

2. 부모님께 전화한다?

3. 감독님께 가서 이야기한다?


모두 틀렸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우선,

당시 내 나이 17살. 살면서 그런 욕지거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살면서 남을 통해서든 직접적으로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들은 욕지거리다.

어안이 벙벙했다.


코치님이.. 나한테?.. 왜?...


게다가 친한 언니한테 그런 이야기를 전해 들었으니 당황스럽고 수치스럽기도 했다.


그때 나는 무슨 표정을 지었을까.

아무렇지 않은 척, 대수롭지 않은 척. 그러나 누가 봐도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맞닥뜨린 얼굴이었을 거다.


그러나 내가 아무런 행동도 취할 수 없었던 이유는


코치님을, 사실은 조금은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 나는 정말. 정말. 많이 울었다.


툭하면 울었다. 맞다. 실제로 나는 짜증 나는 울보였다.


레슨 하러 타석에 갈 때마다 울상에, 몇 마디 하다 보면 훈계한 것도 아닌데 '너무 안된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툭하면 울어버리고.

미스샷 한 타, 한 타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유난이었던 나.

짜증이 날 법도 하다.


그렇지만 나도 그런 내가 싫었다. 이렇게 약한 모습을 동네방네 보이고 싶은 사람이 어딨겠는가.


그러나 도대체 뭐 때문인지 늘 너무 쉽게 목이 메었다.


스윙을 했다가는, 이미 공이 안보일정도로 차버린 눈물이 떨어져 버릴 테니 잔뜩 흐린 시야로 타석에 선채 어떻게든 삼켜보려고 늘 애썼다. 그러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화장실로 달려가 한편에서 눈물을 훔쳤고 그러다 화장실 들어온 동료에게 들키기도 했다.

그래서 라운딩 땐 오히려 마음이 조금 편했다. 다음 샷을 치러 갈 땐 사람들과 멀어지니까. 몰래 눈물을 훔칠 수가 있었다.


하지만 애를 썼는데도 결국 그런 소리를 듣고 말다니..


그때의 난 연습하다가도 갑자기, 레슨 받다가도 갑자기, 라운딩 중에도 갑자기, 시합마다, 숙소로 귀가하다가.

매일같이 눈물이 났다.

열심히 하고 있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 남들보다 늦게 잠에 들었고, 정말 너무나 절실하게 잘하고 싶은데.

왜 이렇게 안될까. 왜 늘지가 않을까. 늘기는커녕 왜 계속 뒤로 가는 걸까. 왜 골프가 더 어려워지는 걸까.


그런 이유들로

나는 그 모욕적인 이야기를 듣고도 마냥 코치님을 미워하고 원망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이해하고 있었다.

마치 나도 그 코치님 편에서 같이 나를 흉보는 것 마냥


나는 어쩌다 짜증 나는 죽여버리고 싶은 울보가 돼버렸을까?

코치님이 그렇게 생각하실정도 라면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코치님만은 아니었겠지.


나는 누구도 괴롭힐 생각이 없었는데.

그냥 잘하고 싶었던 것뿐인데.


'다 내 잘못이야. 난 공도 못 치는데 주제파악도 못하고 맨날 쳐 울기나 해.'

그 일이 있고, 누군가에게 미움을 산 나 자신이 싫어졌고 내가 흘리는 눈물이 혐오스러워졌다.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를 욕한 남을 미워하는 것보다 그런 짓을 한 나를 미워하는 게 더 쉬웠다.


그렇게나 내가 나를 미워하던 시기가 있었다.


지금의 나는 상상할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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