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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미다 Jan 04. 2024

오늘도 협박하고 말았습니다.

"이럴 거면 차라리 그냥 학원에 가. 1-2월동안 제대로 안 하면 그땐, 학원 가는 거야. 알겠어??"


    옆집 할아버지는 들리실까. 현모양처 가면 쓴 옆집 아주머니가 오늘도 고함치는 소리를.

우리 집은 저녁 7시가 되기 전 무거운 침묵아래로 서로의 눈치싸움이 시작된다. 어서 설거지를 끝내고 책상에 앉으려는 엄마와 어떻게서든 저녁 공부를 미루려는 자의 실속 없는 눈알 굴리기. 그 사이로 나의 애씀이 아들의 얼굴을 재빠르게 스캔하며 오늘의 공부를 예상해 본다. 

'아, 쉽지 않겠군...."



    외벌이 가정으로 아이 둘 사교육비를 감당하기엔 부담이 크다. '엄마가 집에 있는데, 아직 미취학인데, 이제 1학년인데.' 갖가지 이유로 엄마표를 실행해야 할 것만 같은 부담감을 누가 쥐여주지도 않았는데 홀로 나서 둘러메고 있다. 레인보우 색 카메라 앱을 켜기만 하면 엄마표 인플루언서가 많기도 하고, 완벽한 슈퍼우먼이 한둘이 아니다. 엄마표로 해리포터 읽기, 엄마표로 수학 경시대회 나가기, 엄마표로 과학 실험하기, 엄마표로 몬테소리 하기. 그뿐이겠는가. 그 엄마들은 분신술을 쓰는지, 먼지 하나 없는 주방에 갖가지 신박템은 모두 준비돼 있고, 미술 놀이도 해주고 최신 시설 키즈카페와 단독 풀빌라로 여행도 간다. 그리곤 편집된 프로그램처럼 책상에 앉아 최상위 문제집을 풀고 있다. 어쩜 하나 같이 동그라미 행진인지. 저렇게 그림만 그려도 된다면 난 밤새 채점도 가능하고 사랑스러운 메모도 남겨놓을 것이다. '오늘도 수고했어! 우리 아들! ^^'


© pixabay


    엄마표로 진행 중이란 말을 감히 입에 올리지도 않는다. "그냥 집에서 간간이 봐주고 있어요." 이게 우리 집 저녁 7시 고함 포장지다. "아직 애들 나이도 어리고, 아이가 학원을 원하지 않아 학교 진도는 따라갈 수 있게 봐주고 있다." 교양 떨며 말하지만, 저녁 7시만 되면 아그리파 석고상 저리 가라 표정을 잃고 눈에서 레이저를 발사한다. '벌써 이럴 일인가, 이러다 시작도 전에 공부에 정떨어지는 거 아닌가' 생각도 들지만, 다시 레인보우 앱을 켜보니 이건 뭐 미취학용으로 쳐도 부족한 정도다. 대체 저 아이들은 이 모든 걸 어떻게 해내지? 엄마와 관계가 틀어지기는커녕 좋다 못해 꿀 떨어지는 모습에 한숨이 바닥에 들러붙어 떨어질 생각이 없다.




"일찍 안 자면 산타할아버지 안 온다!"

"농부 아저씨가 힘들게 농사지은 쌀인데 이렇게 남길 거야?"

"지금 아프리카 애들은 먹고 싶어도 못 먹고 있어!"

"이런 식으로 할 거면(많이 순화된 표현이다) 때려치워!"

"하지 마, 하지 마! 하기 싫은 애는 공부 안 시킬 거야."


그동안 얼마나 많은 협박으로 아이를 위협했을까. 시시각각 변하는 엄마의 계절을 몰라 날씨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아이는 얼마나 불안했을까. 따스한 봄 햇살을 기다리는 아이에게 영하 20도의 눈 폭풍을 몰아오고, 첨벙이는 물놀이를 기대하는 아이에게 쓰나미를 몰고 온 나를 아이는 어떤 마음으로 견뎠을까. 드센 날씨의 변덕을 막아 줄 우산이 되어야 했는데 모질게 뒤돌아버렸으니 얼마나 외로웠을까.

© pixabay


    어렸을 적 엄마의 모습이 흐릿한 사진으로 남겨진 장면이 있다. 빌라 맨 꼭대기 층에서 옥상으로 올라가는 길, 해맑게 웃고 있는 나를 엄하게 내려다보던 엄마의 모습. 지금 생각해 보면 뉴스에 나올 큰일도 아니었고, 단지 옥상을 꼭 올라가야겠다는 내 투정쯤으로 짐작한다. 하지만 엄마의 기다랗고 거대한 그림자가 똑바로 서 있는 모습은 가히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어렸을 적 심한 체벌이나 폭언을 당하지도 않았건만 엄마의 그 모습은 동치미로도 오이지로도 씻어지지 않는다. 그러면서 속으로 빌어본다. 제발, 우리 아이는 희미한 기억으로도 그림자를 마주치지 않기를. 

    엄마라는 자격으로 너에게 가했던 협박은 장미의 가시 같았어. 너에게 아름다운 꽃을 건네며 마음에 박힐지도 모를 '가시'를 함께 준 건 아닐지. 지금도 난 장미만을 기억해 주길 바라고 있지만 어쩌면 너에겐 꽃이 아니라 상처를 아물게 할 '여유'가, '적당한 분리'가 필요한 건 아닐까. 비록 너는 보지 못할 편지지만 언제가 네가 이 글을 읽게 되는 날이 온다면, 엄마의 정원에 아름다운 햇살이 너를 따뜻이 보듬어주고 있기를. 그리고 먼 발치 장미향이 드문드문 날아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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