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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미다 Jan 08. 2024

잠깐! 주말에 아프실 예정입니다.

    "죄송하지만 아직 주말이 안 됐으니 아프실 수 없습니다. 금요일 밤 방문하겠습니다."

    이상은 내 몸에 침투 예정인 '바이러스의 말' 되시겠다. 엄마이기 전, 아프고 싶으면 언제든 아파도 되었다. 사실 아프면 학교에 결석해야 하거나, 회사에 병가를 내는 절차가 있었을 뿐,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그리고 웬만큼 아파선 병원에 가지 않았다. 굳이 병원에 갈 정도까진 아니고, 아프더라도 병원까지 가는 길이 귀찮아서 지금 당장 따뜻한 전기장판 흐르는 침대로 들어가고 싶었다. 그렇게 푹- 마음 편히 한숨 자고 일어나면 엄마의 따뜻한 누룽지와 오렌지 주스가 있었고, 상큼하게 목 넘김을 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내가 엄마가 된 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아파도 함부로 아플 수 없었고, 쿡쿡 쑤시는 몸을 간신히 버텨가며 눈치 봐야 했다. 

'나, 지금 아파도 되는 거니?' 


© unsplash

   

     월요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아플 수 없었다. 한 주의 시작이거니와 주말 동안 어지럽힌 집안 꼴을 보고 있자면 감히, 어디 아프다는 말이 나와? 바이러스가 들어오려다 '아, 제가 잘못 방문 했습니다.' 슬며시 꼬리 내리고 뒷걸음질치기 바빴다. 바이러스도 누울 자릴 보고 뻗는 것인가.  

남편이 재직중인 회사는 월요일마다 회의가 소집되기 때문에 웬만한 간덩이가 아니고서야 빠질 수 없는 분위기다. 흡사 신학기가 시작되는 교무실의 풍경이 이럴까. 정치를 하고 싶지 않다면 눈치 없게 빠져도 될 터이지만, 내 자식 입에 밥풀 떨어지지 않으려면 월요일 출근은 해가 동쪽에서 뜬다는것과 같은 말이었다. 이는 곧 내 아픔의 결격 사유였다. 남편의 부재로 인해 온전히 육아를 전담해야 했기에 무엇보다 엄마의 건강은 필수명제가 되었다. 

    줄행랑친 바이러스 군사들이 슬며시 눈치 보며 입장 준비를 할 때쯤은 목요일 언저리가 되시겠다. 이쯤 되니 슬슬 방문 한 번 해볼까. 간간이 '쨉'을 던지다가 금요일 퇴근 시간 언저리, 강력한 '훅'이 한 방 들어왔다. 결과는? 당연, KO 패. 신랑의 도어락 누르는 소리가 들려오자 간신히 잡고 있던 정신 줄이 팽- 끊어졌다. 이내 와이프의 몰골을 확인한 남편은 "방에 들어가."라는 지상 최대 달콤한 말을 속삭여준다. 미리 켜둔 전기장판에 등짝을 붙이자마자 지금껏 어찌 버틴 건지 정신이 몽롱해진다. 그리곤 이내 잠에 빠져들어 뒤통수와 정수리 그 어딘가가 땀에 젖을 때쯤 슬며시 눈이 떠진다. 대략 새벽 3-4시경. 정말 어떻게 잠든 건지 알 수 없게 숙면했다가 목이 말라 물 한 모금 겨우 넘기고 생각한다. 이따 병원 오픈 시간에 맞춰 나가 수액을 맞아야겠다. 출산하고 온갖 영양제 다 때려 넣은 제일 비싼 영양제 못지않은 최신 특 비타민으로.


<맞아야, 산다>

    이제 웬만한 아픔은 약국 약으론 어림도 없다. 그분이 오실듯하다 싶으면 얼른 병원으로 달려가 온갖 엄살을 떨고 처방전을 받아와야 한다. 아침, 점심, 저녁 살뜰히 구분되어 있는 봉지를 챙겨 들며 한 알, 한 알 정성 들여 삼킨 후 카카오톡 선물 받기로 받은 비싼 비타민을 집어삼킨다. 엄마들은 안다. 이렇게 해야 그나마 하루 이틀 안으로 끝날 것이고, 질질 끌어봤자 결국 손해 보는 건 '엄마'라는 이름의 내가 될 것임을.

엄마가 아프면 집안 꼴이 피난처 저리가라다. 뒤집어 놓은 양말은 부엌 언저리에 하나, 소파 밑에 하나 나뒹굴고 있고, 각종 쓰레기봉투는 여태 터지지 않고 버틴 것이 용하다. 배달 음식으로 인한 재활용 박스는 더 이상 들어갈 곳이 없고, 빨랫감은 제 자리를 잃고 바둑알처럼 한데 뒤엉켜 있다. 이럴 거면 빨래 바구니를 흰색과 검은색으로 했지. 직관적으로 담을 수 있도록 말이야.




    이쯤 되니 조금 서럽다. 아프고 싶어서 아픈 것도 아니고, 간신히 버티다 그만 탈이 난 것인데 함부로 누워있을 수도 없다니. 지난 시간 동안 내 몸 하나 건사하면 그만이었는데, 이제는 아픈 것도 눈치 봐야 한다. 아이가 아파도 엄마는 쉴 새 없이 아이의 힘듦과 짜증을 받아내야 하지만 내가 아플 때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오죽했으면 차라리 혼자 코로나에 걸려 간절히 격리되고 싶다 했을까. 엄마들에게 격리 생활은 당당한 자유였다. 집안이라는 작은 사막과의 단절로 인해 오롯이 '쉼' 할 수 있는 나만의 오아시스 느낌이랄까. 

    이번엔 남편이 아프다. 수요일 아픈 몸을 이끌고 출근하더니 반나절 만에 조퇴하고 몸을 구겨 들어왔다. 보아하니 제법 많이 아픈듯한데 나도 모르게 짜증이 올라오는 건 어쩔 수 없다. 당당히 수요일부터 아플 수 있는 용기라니. 남편의 바이러스는 눈치 없게 주중에 방문하셨나 보다. 바이러스도 센스를 겸비해야 할 텐데 정말 큰 일이군. 그를 보며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밖에 없다. 

"전기장판 틀어놨어, 들어가." 그리고 "아빠 아프니깐 아무도 방에 들어가지 마!" 



좋겠다,남편아.
 너는 주중에 눈치 안보고 아플 수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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