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히 탄 엘리베이터 속, 한 아주머니께서 밝은 인사를 건네셨다. 웃음 뒤에는 다소 높은 톤의 말이 뒤이어져 내 두 눈은 동그래지고 아이와 아주머니를 번갈아 봤다.
"아! 네가 걷는 뒷모습도 예쁜 아이구나! 몇 살이니? 아니, 뉘 집 자식이길래 저리 걷는 뒷모습도 예쁜가 했지! 우리 아까 만났지? 기억나니?"
아이는 살짝 미소를 머금으며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아!"하고 입꼬리를 더욱 올렸다. 둘만의 다정한 시그널이 오가고 인사를 한 뒤 문이 열렸다. 그리곤 "나 먼저 가 있을게!"하고 뛰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동안 보지 못한 '뒷모습마저 예쁘게 걷는 아이가' 내 눈에도 살포시 그리고 드디어 들어왔다.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그 사랑이 누군가의 명명으로 인해 내게 들어온 것이다.
'아, 이 아이는 뒷모습마저 사랑스러운 아이구나.'
아이의 얼굴만 바라봤던 내가 순간 무색해졌다. 앞모습밖에 볼 수 없었다. 먼저 앞서가며 손을 잡아 끌고 있었으므로. 루틴으로 만들어가는 삶이 뭣이 그리 중하기에, 난 내 아이의 사랑스러움을 미처 발견하지 못했을까. 길가에 피는 민들레꽃의 살랑거림에서도 사랑을 보았고, 빗방울이 맺혀있는 나뭇잎 끝에서도 사랑을 보았다. 길가에 떨어져 있는 낙엽에 애정을 담아 보냈고 초롬이 떠 있는 가냘픈 달빛마저 찬란한 눈길을 보냈다. 정작 내 옆의 아이에게는 그 눈길을 건네주지 못한 것이 유난히도 서글프고 애잔하게 느껴지는 하루임이 틀림없었다.
아이의 눈과 머리카락에 붙은 찰나의 다정함에 문득 아련해질때가 있다.
"엄마, 오늘 화장했어? 화장 안 했는데, 예쁜데?"
"엄마~~~ 난,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요구르트 아주머니,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근데 식사는 하셨어요?"
삶에 다정한 인사를 건넬 줄 아는 아이에게 문제집의 숫자들만 매몰차게 들이밀었다. 다 너를 위해서라는 흔하디흔해 빠진 레파토리를 건네며. 무엇이 진정한 너를 위함일까. 의미 없이 나열된 빨간 동그라미 속 그 어디에도 길가에 핀 민들레는 없었다. 비 내리는 오후, 찬란하게 소중한 예쁜 걸음걸이는 없었다.
오늘도 나는 흔들린다. 수많은 바람에 나 홀로 흔들리는 것에 못 이겨 너를 잡고 흔들거리고 있다. 너를 위한다는 위선에 내 잘난척의 명예와 자격지심이 조금이라도 섞이지 않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바람에 휘청거리며 너의 손을 잡고 흔들리는데.. 넌 그런 내 손을 참으로 따뜻하게 꼭 쥐고 있구나. 단단한 뿌리를 가진 부모를 만났다면, 네가 좀 더 고고하게 때론 자유롭게 너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을까. 내 종종거림이 전해져 너마저 불안한 생각에, 부족한 생각에 가두진 않았을까. 너를 위함이 무엇인지.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너에게 한껏 줘도 모자랄 내 사랑을 어찌 전 해야 할지, 시큰한 목의 따가움을 삼킬 뿐이다.
들꽃처럼 너를 애정하리라. 너의 수수하게 올곧은 아름다움을 지나치지 않으리라. 걸음걸이를 맞추고 네 곁의 살 내음을 맡으며 깊고 깊은 속삭임을 전해주리라. 비 오는 날, 물웅덩이의 찰랑거림을 사랑하는 너를, 눈 오는 날 폭신한 느낌을 사랑하는 너를 그 무엇보다 사랑하리라.
이런 마음을 꾹꾹 담아 너에게 보내는 나의 작은 편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