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을 하면서, 빨래를 널면서 생각한다. 어떤 질문에 대해 간단명료하게 "네!"라고 답할 수 있는 명료한 삶은 어떤 것일까.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먼저 걱정하고, 입꼬리를 내리고, 미간을 찌푸리는 일 대신 하면 된다. 그리고 기다리면 된다. 순간에 최선을 다했으므로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제 기다림의 미학뿐. 손 떠난 일을 후련히, 개운하게 바라볼 수 있는 삶. 그 삶을 간절히 동경한다.
미루고 미루다 보면 이 찝찝함을 이루 말할 수 없다. 흔히 공공화장실에서 작은 볼일을 보고 휴지를 찾지만 이내 당황스러움과 함께 몇 번의 바운스로 마무리 짓고 속옷을 올려야 할 때의 기분이랄까. 찝찝한 속옷이 어서 마르기를 바라며 다른 일에 시선을 쏟지만, 그 찝찝함이 없어질 리 만무하다.
일단 하면 된다. 울린 알람을 다시 눌러 망설임의 몇 초에서 저울질하지 말고, 생각 따위 없이 박차고 일어나면 된다. 그리고 뇌의 시간을 허용치 않는다. 운동복을 입고, 일련의 준비물을 챙기고, 운동화를 신는다. 새벽 공기를 마시면 이제 오늘의 하루가 시작된다. 그리고 생각한다. '역시 나오길 잘했어.'
해서 후회 없는 일을 찾아보라 한다면, 단연코 운동이다. 뭐 운동에 대해 거창한 찬양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해냈다는 성취감이 이보다 큰일은 아직 내 삶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새벽 운동에 대해선 하루의 시작이 개운함을 그 무엇으로 대신할까. 적당한 심장박동을 느끼며 참을 수 있는 스트레스를 견디며 운동한다. '무엇보다 개운해!'라는 상큼한 웃음 따위는 나오지 않는다. 어찌 보면 태릉선수촌 선수들의 다부진 얼굴과도 같으리라. 나만의 찌질하게 거창한 목표를 되뇐다. 점핑 잭 100번. 일단 뛰어! 발을 벌리고 손을 올리며 얼굴과 엉덩이의 흔들림을 느낀다. 숨이 점차 차오르고 망아지의 꼬리같이 촐랑이는 머리를 바라보며 숫자를 카운팅한다. 절대 하나라도 더 할 수는 없다! 오로지 숫자만 떠올리며 반복적으로 오르내리는 팔과 어깨를 바라보며 소심한 운동이 시작된다. 서른 개를 마친 후 가뿐 숨을 몰아쉬며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한다. 하아- 한숨을 내쉬며 생각할 겨를을 주지 말고 두 번째 세트를 진행한다. 이번에는 뛰자마자 몇 번째에서 멈출 것인가 하는 안일한 생각 속에 다음 세트의 나를 위해 겨우 서른 개를 마친다. 하아 하아- 백 개까지 마친 후 바로 러닝머신으로 올라 음악을 귀에 꽂는다. 그리고 속도 6에 맞춰 조금 빠른 걸음으로 걷다 보면 점핑 잭 100개를 끝냈다는 가벼운 개운함이 몰려온다. 이제는 상상의 세계와 현실의 고민 속 시간 여행을 하면 된다. 40여 분간 진행되는 머릿속 여행은 때론 간결하게 정답이 내려지기도 때론 영원히 끝나지 않기도 한다. 상상 속 영화가 상영을 마치면 와이트 스쿼트나 옆으로 다리 올리기 등 꼼수를 가장한 간단한 근력 운동 후 숨을 고르고 스트레칭한다. 아, 끝났다.
운동이 끝남과 동시에 매몰차게 헬스장을 뒤돌아선다. 더 이상 너에게 볼일은 없다는 듯, 들어올 때보다 조금 더 빠른 걸음걸이로 바깥의 어두컴컴한 하늘을 바라본다. 뒤척이는 침대 대신 새벽의 공기를 들이마시자, 오늘의 후련함이 폐와 만나 하이 파이브를 건넨다. '역시, 나오길 잘했어.'
삶에 우선순위를 정한다는 것, 내 삶의 주인이 된다는 것. 인생의 주도권을 쥐고 내가 끌고 갈 수 있는 삶이란 과연 무엇일까. 부모로써 아이에게 바라는 가장 큰 점은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부모가 방향을 정해줄 수는 있어도 아이의 목표를 지정해 줄 순 없다. 자기 스스로 인생의 선택에 있어 우선순위를 정하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는 아이. 그런 아이를 키우기 위해 부모로써 본보기를 보여주는 삶을 살고 싶다. 부모보단 인생의 선배로서, 네 삶을 보다 윤택하게 만들 수 있는 인생의 선물을 만날 기회를 주고 싶다. 그런 삶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 그것을 위해 오늘도 따뜻한 보금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운동을 하고, 글을 쓰고, 책을 읽는다. 네 삶에 이와 비슷한 사람이 많기를 바라며. 네 인생의 등불이 되어 줄 선물들이 많기를 바라며. 그리고 무엇보다 그 선물을 오르지 못할 산이 아닌 귀한 가르침임을 알고 받아들일 수 있는 네가 되기를 바라며 말이다.
네 인생에 내가 없는 삶을 생각해 본다. 그 생각만으로도 눈물이 차오르며 가슴이 미어지지만, 언제나 우리가 함께할 수는 없기에 담담히 그려본다. 네가 힘들 때, 나침반을 알고 싶을 때, 네 곁에 좋은 성인이 있다면 난 참으로 반가울 것이다.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성인이 한 명이라도 곁에 있다면 내 삶에 마지막 미소를 지으며 평온히 눈 감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생이 녹록지 않음을 알기에, 네 곁에 책과 운동이라는 결코 너를 배신하지 않을 선물을 미리 전해주고 싶다. 우리와 함께한 시간을 되짚어보며 추억을 하나하나 꺼내 마음의 영혼이 위로받고 현실의 문제는 책과 운동이 안내해 주리라 믿는다. 나 역시 아직도 힘에 부치고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일이 우후죽순이지만, 그래도 펼칠 책이 있어 그 자체로 위로받는다. 그리고 답답할 때 걸음을 걸으며 생각한다. 앞으로 해결해야 할 작은 문제들을 어찌 넘겨봐야 할지, 혹여 지나친 과오는 없는지.
현명한 부모란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내 뒷모습을 보고 자랄 너를 위해. 오늘도 너의 안내자가 되어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내 하루를 조금 일찍 시작하며 본보기가 되어본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 딸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