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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ngmin Lee Dec 31. 2020

저녁이 있는 연말을 보내며

코로나 2.5단계에 맞춘 재택 근무 기간이 길어지면서 집에서만 있는 일상에도 많이 익숙해졌다.


7년 간의 해외 생활, 2년 간의 제주 생활, 그리고 올해에도 여러 도시를 출장다니며 외박이 잦은 나에게

집이란 밤에 돌아와 잠자는 곳, 어쩌다 여유있는 주말에는 특히 하루 종일 잠 자며 쉬는 곳.

그러다 출장도, 미팅도 많이 줄어든 12월,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다보니 그 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거나 애써 하지 않아왔던 작은 취미들을 다시 시작하게 된다.


코로나가 사람들 라이프 스타일에 가장 크게 영향을 준 부분이 식(食)일텐데, 우리 집은 12월 연말이 되어서야 비로소 그 영향을 실감하게 된다. 엄마가 해주는 밥에 익숙했던 우리 가족들이 낮이며 저녁이며 요리해먹는 일이 점점 많아진다. 연말이면 사람들 만나기로 바쁠 아빠와 나는 집에 있고, 파트타이머인 엄마는 여전히 출근하고 오히려 바빠진 탓도 분명 있을테다.


이상하게도 우리들이 만드는 식사는 여전히 일상식이라기보다는 파티음식에 가까워서 크리스마스를 즈음해서 각자가 만들고 싶은 요리를 하나씩 해내고, 아빠가 모아놓은 코스트코 가성비 값 와인들을 열심히 비우며 저녁 식사를 한다.


준비 시간은 18시. 본격적인 식사는 20시에 시작하여 와인을 한병, 두병 마시다보면 시계는 어느새 23시를 가르키고 있다. 평소 남들과 비교해 꽤나 과격한 말투로 대화하는 우리 가족이지만, 알콜이 들어가면 다들 흥겹게 텐션을 올려 웃음꽃이 피우기 때문에, 음식을 많이 가리고 술도 먹지 않는 둘째는 도대체 몇시간 동안 먹고 마시는거냐며 스페인 사람들이냐며 핀잔을 준다.


코로나가 만연한 현재의 경제 상황을 전시(戦時)에 비교하여 설명하는 글들이 많이 있다. 아주 가까운 이들도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아 힘들고 고된 2020년을 보내고 있다. 그나마 재택근무를 하며 큰 문제 없이 한 해를 넘기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크리스마스가 빨간 날이 아니고, 구정도 세지 않는 일본은 1월 1일 신정을 기점으로 1주일 정도 연휴를 갖는다. 그런 일본의 연말연시 풍습의 하나가 섣달그믐에는 해넘이소바(年越し蕎麦・도시코시소바). 잘 끊어지는 속성에 비유해 한 해의 재해와 병, 악운을 끊고 신년의 기운을 북돋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2020년 12월 31일 가족들의 저녁식사는 밀페유 나베로 정했는데, 마무리 식사로 메밀국수 살짝 삶아 후르릅 먹으면서 2020년을 넘기려고 한다. 2021년, 모두의 건강과 성취를 기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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